마른 수건만 짜지 말고 협상을 공부하라
 
전 세계 모든 기업들이 생산품의 원가를 줄이고자 많은 노력을 한다. 대표적인 원가절감 구호 중에 “마른 수건도 다시 짜자”는 말이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짠 수건을 다시 짜자”는 말도 나왔다. 모두 원가절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회의적이다. 이미 ‘마른’ 수건에서 무슨 물이 나오겠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0.1~1.0% 정도일 것이다. 물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를 위해 전 직원을 몰아세우다니, 비효율적이다. 
 
해외에 있는 필자의 공장도 원가절감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원가절감 운동 1년이 지나자 효과가 미미했다. 몰론 전반적으로 낭비를 줄인다는 풍토를 조성하고, 나아가 품질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원가절감의 궁극적 목표는 이윤 확보다. 필자도 어떻게 하면 이윤을 높일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해 왔지만,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단지, 생산에서만 원가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협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
 
그러던 중 2008년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석사를 마친 지 10여 년이 흘러 세상이 바뀌었다는 생각에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논문을 작성할까를 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 때 지도교수님이셨던 박승락 교수께서 큰 도움을 주셨다. 도전해볼만 한 여러 분야에 관해 소개를 해 주셨는데, 그 중 협상에 관련된 과목 소개가 필자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필자가 협상 공부에 관심이 매우 크다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 공부를 같이 하여 보자고 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첫 수업부터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협상 전략들을 보고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느꼈을 정도였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들을 모르고 어떻게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하고 전 세계 거래처들과 일을 해 왔는지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른 한 편으로 후회가 밀려왔다.
 
필자는 협상을 공부하면서 그 속에서 많은 금은보화를 보았다. 나이가 있어 공부하기는 힘들었지만 수많은 협상 방법을 연구하여 보니 엘도라도(El Dorado)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만약 누군가 협상을 한다고 가정을 하면, 협상을 공부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사이에 전력 차이가 매우 클 것이다. 싸움(경쟁)을 해 보면 승부는 금방 날 것이다. 헤비급(79.39kg 이상)과 플라이급(50.80kg 이하) 권투 선수들의 펀치 강도만큼의 차이일 테니까.
 
▲가장 까다로웠던 도미니카 공화국의 협상자들. 모두 경영 2세들이며 70여 년 된 기업의 CEO다. [사진=필자 제공]
협상 잘하면 나의 이익 + 상대 만족
 
대다수 회사들은 종이 한 장, 볼펜 한 자루, 원료 1그램이라도 절감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것은 꼭 필요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판매를 할 때 협상을 잘하면 1~2%는 어렵지 않게 가격을 더 받을 수 있다. 바이어와 접점을 찾으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오랜 기간 경험해 왔다. 구매에서도 마찬가지다. 은행과 대출금리 협상도 가능하다. 1~2% 정도는 깎을 수 있다.
 
필자는 이런 협상의 기술이 나의 이익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만족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오랜 경험에서 깨달았다. 혹자는 바이어 입장에서 가격을 더 주고 어떻게 만족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지만, 그렇게 만족하도록 하는 것이 협상이다. 물론 고도의 협상전략이 전제된다. 아무튼 협상을 공부한 이후 필자 회사의 경영상태가 매우 호전됐는데, 필자는 이런 협상전략을 잘 구사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협상은 국가를 구하기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 성종 때 거란족이 침입하여 왔을 때 서희장군이 협상으로 강동6주를 얻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쿠바미사일 위기 때 미국이 보여준 협상력은 전쟁을 막았다.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동유럽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했다. 근래에는 미국과 북한의 핵무기 협상이 있었고,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과 러시아 간 협상이 진행 중이다. 협상의 전략에 따라 희비가 갈린다.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역시 국가경제의 명암을 바꿀 수 있는 매우 큰 협상이다. 
 
뉴욕 비즈니스맨의 25%는 상습적인 거짓말쟁이(Persistent Liars)라고 한다. 외교관이란 국가를 위해 이익이 된다면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해야 하는 해외에 파견된 정직한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협상에서는 거짓말도 필요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가 협상이라고 한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협상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협상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협상에서 좋은 성과를 잘 이루려면 첫째, 협상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무엇을 얻기 위해 협상을 하는지, 상대방에게 무엇을 어떤 전략으로 주장할 것인지 등이다. 
 
둘째, 협상력이 중요하다. 협상자의 지위나 시간 제약 등에 따라 협상력은 차이가 난다. 최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셋째, 관계(Relationship)를 잘 파악해야 한다. 관계에 따라 호혜적 관계인지, 거래적 관계인지, 적대적 관계인지에 따라 협상 전략이 달라진다. 
 
넷째, ‘바트나(BATNA)’를 준비하는 것이다. 바트나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택할 수 있는 다른 좋은 대안인데, 대안들이 많다면 협상이 잘 이루어진다. 협상을 그만두거나 상대 협상자를 바꾸는 일 따위도 포함된다. 
 
다섯째, 정확한 정보(Information)를 확보하는 것이다. 협상 상대방에 대한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협상전략이 바뀔 것이다. 
 
대기업을 상대로 펀치를 날린 S사
 
필자가 존경하는 S사 대표는 대기업을 상대로 멋진 펀치를 날린 분이다. 이 분은 과거 대기업으로부터 매달 원자재인 화학원료를 대량 구매해야 했는데, 국제원유 가격이 떨어져도 그 대기업에서는 인하 폭만큼 가격을 내려 주지 않았고, 반면 국제시세가 약간만 올라도 무리하게 큰 폭의 인상을 단행해 경영에 애로가 많았다. 이는 S사가 다른 나라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수출기업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였다. 
 
그 당시 화학 관련 동종업계 중소기업들의 취약점은 대기업과 같은 대형 액체탱크 저장소가 없으므로 매달 구입해 사용해야 했고, 해외에서의 구매도 불가능한 실정이었다. 그러므로 가격 협상력에서 매우 취약했다. 
 
S사는 이런 악순환을 제거하기 위하여 원자재를 2년 이상 보관할 수 있는 액체탱크 저장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최대 한 달 물량만 보관하던 S사가 2년 간 사용할 수 있는 대형 저장소를 설립을 하게 된 후 협상력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강력한 가격 협상력은 공급자인 무소불위 대기업이 아니라 S사의 것이 되었고, 언제든 국제시세에 맞추어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S사 성공의 핵심 배경은 장기간 충분히 보관할 수 있는 대형 액체탱크 저장소로 인하여 2년간 여유 있는 협상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과 해외의 유수기업들과 언제든 직접 거래가 가능해졌다는 점에 있다. 결국 S사는 동종업계보다 항상 최저의 가격으로 원자재 구매를 할 수 있었고 당연히 수출단가 경쟁에서도 우위에 서게 됐다. 
 
S사는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좋은 바트나가 언제든 위기에서 탈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강력한 경쟁력으로 전환하는 동기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뱃 가이(Bad Guy)와 굿 가이(Good Guy)’ 전략
 
필자의 회사에서 수출협상을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략은 ‘뱃 가이(Bad Guy)와 굿 가이(Good Guy)’다. 나쁜 역할과 좋은 역할을 나누어 협상하는 전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역할을 하고 싶어 하고 악한 역할을 피하게 된다. 그러나 협상에서는 이런 역할을 전략적으로 나누어서 한다. 회사 대표가 악한 역할을 하게 되면, 직원들에게 일부러 선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A사가 제품의 목표 가격을 미화 1달러로 강력히 요청했을 때, 우리 회사 대표가 절대불가를 외치며 미화 1달러 10센트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 협상은 결렬까지 갈 수 있다. 이때에 담당직원이 A사 바이어에게 연락해, 대표를 강력히 설득해 미화 1달러 5센트로 A사의 목표 가격에 맞춰주겠다고 하면, 보통은 바이어도 만족하고 받아들인다. 바이어 입장에서 상대의 벼랑 끝 전술에서 마지노선이 미화 1달러 10센트임을 확인했으므로 1달러 5센트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가격이 되기 때문이다. 
 
협상은 상대방의 파이(이윤)를 빼앗아 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상대방과 좋은 거래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으로 서로 ‘윈윈(WIN & WIN)’ 하도록 하는 하나의 프로세싱이다. 협상은 되도록 상대방이 만족해야 한다. 그래야 차후 재협상에서 안 좋은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항공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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