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회수의 적, 해킹은 있다
한국센서주식회사_신경원 대표
전류센서
우리 회사는 전류 센서를 생산하는 중소 제조업체이다. 회사 설립 이래 내수에만 치중했으나, 몇 년 전 내수 시장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만 매출도 늘릴 수 있고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출을 하겠다는 결심 하에 해외시장을 노크하게 되었다.
전류센서의 해외 영업을 하기 위하여 바이어를 만나러 가게 되면 정작 바이어와의 미팅에 대한 어려움보다 무역지원 기관의 직원이나 바이어를 연결해 주는 분들에게 우리 회사 제품을 소개하는 어려움이 더 많다. 우리 제품은 이처럼 제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비된다. 또 한 가지의 어려운 점은 우리 같은 소기업에서 수출이라는 큰 목표 아래 무역을 전문으로 하는 직원을 들여서 해외 영업을 하고자 투자하기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역전문 인력도 없는 상태이다.
제품 소개가 어려운 전류센서 수출의 시작
수출을 하자는 마음은 먹었지만 정작 이런저런 애로에 직면해 있을 때 한국무역협회에서 여러 차례 중소기업인이 무역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무역 전공자는 아니지만 매일 바쁜 와중에도 교육에 참석하여 열심히 수업을 들으며 공부한 결과 무역에 대해서 어느 정도 돌아가는 내용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수출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아는 수준이지 수출 업무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판단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판단 능력은 부족했다.
그때 한국무역협회 무역현장 자문위원 R씨를 소개받게 되었다. R 자문위원은 전화 또는 이메일 등으로 우리 회사 무역 업무를 도와주고, 시간이 될 때는 직접 회사를 방문하여 수출 서류작성, 무역실무 진행 등을 지원해주었다. R 위원과 함께 일하면서 일어난 특별한 경험담 한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경험은 무역과 관련된 업무를 하시는 분들과, 앞으로 무역을 하게 될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고대하던 일본 수출 성사
수출에 뜻을 둔 후 지난 몇 년 동안 시장개척단과 해외전시회 등에서 만난 해외 바이어들과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 계약 또는 에이전트(Agent) 계약을 체결하여서 상당한 수출 실적도 거두었지만 일본에서는 이렇다 할 수출 실적을 낸 적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바이어와의 수출계약이 성사되었다. 너무 기뻤다. 일본과의 거래는 중국의 단가를 요구하면서 품질은 훨씬 높은 수준을 요구하여 난감한 점이 많이 있었지만 여러모로 노력한 결과 크게 문제되지 않고 원하는 단가로 납품할 수 있게 되었다. 선적하기 일주일 전에 수출대금 전액을 선 입금 받는 조건이었다.
선 입금을 해 주지 않으면 상품을 보내지 않는 조건이었기에 입금 확인이 안 되면 선적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일본 측에서 팩스로 당사 은행 계좌번호 확인 요청 공문과 아울러 회사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문의 전화가 왔었던 것이다.
우리는 팩스와 전화를 받고 무슨 영문인지를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었다. 우리 회사에서 갑자기 일본의 바이어에게 결제할 은행계좌자료를 변경하여 변경된 계좌로 송금할 것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왜 갑자기 계좌를 변경하였으며, 변경한 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물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이어에게 은행계좌 번호를 변경한다는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대금결제 혼선…알고 보니 이메일 해킹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해외의 해커가 일본 바이어 업체의 회사 컴퓨터를 해킹하였으며 나아가 자문위원의 컴퓨터도 동시에 해킹하고, 그러면서 우리 회사 이메일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해킹했던 것이다. 그리고 회사의 계좌번호가 변경되었으니 변경된 계좌번호로 대금을 송금하라는 이메일을 우리 회사에서 보낸 것인 양 우리 회사 이메일 주소와 발송인 서명을 넣어서 진짜인 것처럼 발송한 것이었다. 일본의 바이어는 그 해킹한 자의 거짓 이메일 통지를 믿고, 엔달러화 환전을 한 뒤 변경된 그 계좌로 송금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결제 은행명과 계좌번호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쌍방 간에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계약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채 일본 바이어는 의문을 가지지 않고 그대로 해커가 보내준 변경된 계좌번호로 은행에 송금을 하고자 의뢰하였다.
변경된 계좌가 문제 있는 계좌로 밝혀져 송금이 제대로 되지 않자 바이어는 우리에게 확인하기 위해 급히 연락을 해온것이었다.
해커의 집요한 방해
바이어는 우리 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이메일 접촉을 계속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해커가 이메일을 삭제하는 바람에 우리 회사와 자문위원에게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메일로는 연락이 닿지 않자 바이어는 우리 회사에 전화를 걸어왔다. 다행히 전화는 문제가 없어서 전화와 팩스로 서로의 결제은행관련 내용을 확인했고 계약서에 있는 원래의 계좌번호로 제대로 송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해킹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한 뒤 결제를 받고 화물을 선적하였다. 처음 송금을 위하여 은행에서 엔화를 달러로 환전한 시점부터 문제 해결 후 재송금까지의 며칠 사이의 환차손에 대해서는 우리 회사가 물어주는 방법으로 거래를 마무리하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하다. 만약 해커가 보내라고 준 변경된 계좌로 대금이 제대로 송금이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큰일 날 뻔 한 사건이었다. 그 후 회사 컴퓨터와 무역협회 자문위원의 컴퓨터를 교체하고 이메일 주소까지 다시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바이어가 입은 며칠 동안의 환차손은 책임 소재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으나 전화와 팩스로 연락을 하여 원만하게 해결하였다.
환차손 부담으로 순조롭게 해결
일본의 바이어는 무역 경험이 많지 않은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일본의 바이어가 무역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물품대금을 결제할 우리 회사 은행 계좌번호를 해커가 변경해서 통지해 온다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바뀐 계좌번호로 송금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역 경험이 많았다면 “수취인 은행 계좌번호를 변경하는 것은 조금 이상한데”라고 의문을 가지고 송금을 시도하기 전에 우리 회사에 계좌번호 변경에 대해서 문의를 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회사는 이 일이 일어난 뒤 오고 가는 이메일은 아무리 간단한 내용이라도 반드시 한 번 더 확인하고 있다. 2012년의 일본 첫 수출 2만 620 달러는 일본시장에서 처음으로 수출실적을 얻었다는 감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무역협회의 교육을 받았기에 이 위기를 잘 넘기고 첫 일본 수출을 이룰 수 있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거래이며 해킹이라는 위험천만한 사건으로부터도 큰 손해 없이 해결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하는 사건이었다.
KITA 자문위원은 우리 회사의 직원
나는 시장개척단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몇몇 국가를 방문하였다. 그렇게 많은 나라를 방문한 것은 아니어서 전부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청이나 한국무역협회 등을 통하여 업계의 무역실무 능력 향상을 지원해 주는 나라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교육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무역현장 자문위원을 동원하여 무역실무를 진행하도록 지원해주고, 통·번역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중소기업인 입장에서 무역협회 무역현장 자문위원은 회사 직원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의 회사 직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든든하다.
중소기업이 수출을 하기 위해서 제품을 기획하여 개발하고 수출하기 까지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무역을 전담할 직원을 따로 두기란 쉽지가 않다. 작은 기업에게도 수출을 할 수 있게 도움을 계속 주고 있는 한국무역협회의 보이지 않는 지원은 중소기업인의 답답한 마음을 헤아려서 시원히 해결해주는 지팡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보다 많은 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해외시장을 안방인 것처럼 누비고 다닐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