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BOM 작성이 원산지 판정의 기본
제품의 원산지가 ‘역내산’임을 증빙하기 위해 세관에 제출하는 자료 중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는 원산지소명서(Statement of origin)와 소요부품 자재명세서(BOM, Bill of Material), 제조공정도(Manufacturing Process)다.
사실 원산지소명서에는 주요 생산공정과 원재료명세서를 작성하는 란이 있으므로 원산지소명서만 작성해도 원산지증명서의 작성과 발급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BOM과 제조공정도를 별도 작성하는 것은 원산지소명서에서 다 채울 수 없는 사항을 좀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함이다.
완성 품목을 ‘요리’라고 한다면, BOM과 제조공정도는 요리를 만드는 재료와 방법을 적은 ‘레시피’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원산지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서류는 BOM과 제조공정도이며, 이 가운데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BOM이다.
특허 등록 독자 기술의 공기정화 제품 특화
J사는 2009년 설립 이후 공기정화·살균 기술 개발에 집중해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프리미엄 공기정화 살균기를 개발해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J사가 독자 개발해 특허를 등록한 ‘메탈폼 다중 나노촉매기술’은 이산화티타늄과 특수 촉매가 코팅된 등방성(等方性) 구조의 니켈 메탈폼에 자외선을 쬐면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의 유기물이 분해된다. 한국산업기술원 평가 결과 이 기술을 적용한 공기살균기는 60㎥당 바이러스 살균율이 97% 수준으로 경쟁사들보다 월등하다고 한다. J사는 이 기술로 작은방, 차량, 벽걸이·스탠드 겸용, 빌트인용, 대용량 스탠드용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제품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수출도 진행하고 있던 J사는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방역과 살균이 관심사로 대두되면서 중동과 유럽,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인도 등에서 구매를 희망하는 바이어들이 몰려들었다. J사는 이번 기회에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세번변경 기준 미충족, FTA 수혜 못 받을 위기
J사는 전 직원이 10명인 중소기업이다. 대부분이 R&D(연구·개발) 인력이라 회사 운영을 위한 실무는 창업자이자 CEO(최고경영자)가 담당하고 있다. 수출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혼자서 모든 범위의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전문성 부족과 효율 저하 문제에 부닥쳤다. FTA(자유무역협정) 원산지 지식 부족도 그 중 하나였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어로부터 수입제품에 대해 한-아세안 FTA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공기청정기의 HS코드는 제8421.39호다. 한-아세안 FTA에서 이 품목의 원산지 기준(PSR)은 ▷다른 호에 해당하는 재료로부터 생산된 것(CTH) ▷40% 이상의 역내부가가치가 발생한 것(RVC 40)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면 된다.
CEO는 이 가운데 CTH를 충족하는 쪽으로 판정을 받기로 하고 관련 서류를 작성해 세관에 제출했으나 반려됐다. 부분품으로 들어가는 필터의 HS코드(제8421.99호)가 완제품과 4단위 세번이 같아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했던 일이 막히면서 당황한 CEO와 직원들은 당면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고, 더불어 이번 기회를 통해 수출과 FTA 업무를 정확히 배우고자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OK FTA 컨설팅’을 신청했다.
OK FTA 컨설팅은 중소·중견기업이 자유로운 FTA를 위해 품목분류에서부터 원산지판정 및 사후검증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인 원산지관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종합 컨설팅 서비스다.
담당 관세사가 J사를 찾아가서 CEO와 논의를 한 뒤 본격적인 컨설팅을 시작할 때쯤, 이번에는 독일 바이어가 J사에 인증수출자 번호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J사가 ‘원산지인증수출자 인증’을 취득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원산지인증수출자는 관세 당국이 원산지증명 능력이 있다고 인증한 수출자에게 원산지증명서 발급 절차 또는 첨부서류 제출 간소화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또한, 한-EU FTA에서는 6000유로가 초과되는 수출입물품에 대해서는 인증수출자번호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FTA 체결국가가 증가함에 따라 원산지증명서 발급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도입했다. EU는 이미 1975년부터 제도를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 컨설턴트는 이에 대해서도 업무를 지원키로 했다.
BOM은 원산지 판정 위한 ‘레시피’
컨설턴트는 먼저 FTA 기본교육 및 사후검증 대응 방안을 교육하고, FTA 전반에 대한 이론, 실무교육을 진행했다. 이어 J사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했다. 공기청정기제품의 원산지판정을 위해 BOM과 제조공정도를 다시 작성했다, CEO가 해당 서류의 작성 방법을 제대로 몰라서였을 것이라는 추측에서다.
대부분의 협정에서 품목별 원산지 판정 기준으로 세번변경기준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수출 물품에 대한 세번변경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BOM은 꼭 필요한 서류다. 또한, 부가가치기준 적용 시 직접재료비 산출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역시 필요하다.
BOM은 법적 양식이 아니므로 기업이 자유롭게 작성하면 된다.
대부분의 BOM에 들어가는 정보는 ▷원재료 명세(품목별) ▷기능 및 용도(재질) ▷HS코드 ▷소요량 ▷단위 ▷단가 ▷가격 ▷원산지 ▷근거서류 ▷구매처 등이다. 필요에 따라 원재료의 사전정보, 구매처의 전화번호, 사업자는 담당자명, 회사에서 따로 부여한 원재료 코드, 원재료의 품목분류 근거의 정보도 들어가기도 한다.
일반적인 기업의 경우 수출 물품의 BOM은 기업 내에서 작성된 구매원장과 원재료수불부를 근거자료로 실제 생산 BOM을 작성한다.
BOM에는 수출 물품을 제조할 때, 실제 구입했거나 수입한 모든 원재료를 기입해야 한다. 수출 물품의 제조 시 특정 부품을 자체 생산하여 결합하는 경우에는 중간재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한, 특정 부품을 생산 시 구입, 수입한 모든 원재료 또한 같이 기입해야 한다.
BOM 양식상의 품명은 거래된 원재료의 일반적인 상품명을 작성한다. 단, 원재료 거래 시 발행된 거래명세서 등의 서류의 상품, 거래 물품의 명칭과 BOM상의 상품명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한다.
원산지 판정 시 BOM은 BOM을 구성하는 모든 원재료에 대해 HS코드(최소 6단위)를 설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원재료에 대한 BOM은 기업 스스로 판정해야 하지만 실무적으로 판정하기 매우 어려울 때는 관세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HS코드를 분류하는 것이 좋다,
‘역내산’ 증빙 위해 제조공정도 필수
제조공정도는 실질적으로 제조하는 전체 라인의 공정들을 서식화한 것이다. 법적 양식이 있는 게 아니라 기업이 자율적으로 작성하면 된다. 제조업체 처지에서는 제품 생산에 필요한 중요공정을 표기할 수 있으므로 제공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해당 수출 물품의 FTA 원산지판정을 위한 필수서류이기 때문에 제조공정도가 없으면 FTA 원산지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
제조공정도의 일반적인 작성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제품명과 모델규격을 적는다. 제품명은 일반적으로 영어로 기재하며, 모델규격은 해당 품목의 모델명을 적는다.
공정 설명은 제조할 때 모든 공정을 순서대로 적는데 통상 원재료 입고 단계에서 큰 공정만 추려 간략히 적는다. 또한, 각 공정에는 사진을 첨부한다. 사진첨부는 필수는 아니지만, 원산지 검증 시 대부분 디테일한 자료를 만들기 위해 사진을 삽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진 아래에는 해당 공정에 대한 세부설명을 기재한다. 해당 공정이 외주가공일 경우에는 외주가공임을 표시하고, 해당 공정을 수행하는 업체명을 기재해야 한다. 이러면 외주가공계약서, 작업지시서 등의 서류를 첨부해야 하며, 국내제조(포괄)확인서도 작성한다.
해당 공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투입하는 원재료에 대한 내역을 작성한다. BOM과의 통일성을 위해 원재료명 등을 일치시키는 것이 좋다. 모든 공정을 기재한 후 완제품 사진을 삽입해 준다. 작성을 완료한 뒤에는 제조공정도를 작성한 업체명, 작성자 등을 기재한다.
협력사 원산지확인서 수취 ‘RVC 40’ 충족
BOM, 제조공정도를 새로 작성한 뒤 원산지판정을 위한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CTH 적용 시 부분품으로 분류되는 필터 및 바디케이스의 경우 4단위 세번이 같아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에 상담사는 원산지 기준의 또 다른 조건인 ‘RVC 40’에 부합시켜 보기로 했다. 이러려면 필터와 바디케이스를 생산한 협력업체로부터 원산지(포괄)확인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원산지(포괄)확인서’는 생산자와 수출자가 다른 경우 생산자가 제조한 수출 물품이 협정과 법령에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원산지물품임을 확인하는 서류로서 원산지증명서의 작성 등을 위해 생산자가 작성·서명하여 수출자에게 제공한다.
컨설턴트는 J사와 함께 두 협력업체를 찾아가 이러한 문제를 설명하고, 원산지 제도에 대해 컨설팅을 한 뒤 ‘역내산’임을 입증하는 원산지(포괄)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RVC 40은 완제품의 FOB 가격에서 비원산지재료를 뺀 가격을 완제품의 FOB 가격으로 나눠 100을 곱해준 뒤 나온 수치(%)가 40% 이상이면 충족한다. 핵심 부분품인 필터가 역내산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J사의 공기청정기 제품은 최종적으로 ‘국내산’ 판정을 얻었다.
이와 함께 컨설턴트는 J사 CEO가 요청한 한-아세안 FTA, 한- EU FTA의 품목별 원산지 인증수출자 인증을 지원해 역시 광주세관으로부터 인증을 획득했다.
FTA 특혜 제공 가능, 경쟁력 커져
J사의 컨설팅 품목인 공기청정기(가정형)는 한-아세안 FTA 협정을 적용하는 경우 기준세율 대비 6.5%의 절감효과가, 한-EU 및 한-터키 FTA 적용시 각각 1.7%의 경제적 실익이 있어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보통 용량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되며 원화로 환산 시 평균 수출금액이 100만 원인 것을 고려하여 각각 7만 원, 2만 원 정도의 절세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J사는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와 관련해 자사 물품의 특징인 UV(자외선) 램프를 통한 살균 효과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코로나19가 진행 중인 여러 국가에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또한, 이번 컨설팅 효과를 통해 더욱더 많은 수출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 FTA활용정책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