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활용 성공 사례 플라스틱 시트파일

kimswed 2021.07.23 07:22 조회 수 : 8872

품목분류 사전심사로 ‘민감품목’ 멍에 벗기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하면 체결국끼리는 관세가 철폐되어 경제적으로 단일국가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든 품목의 관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별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산업이 생산하는 품목은 수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관세를 낮추거나, 아예 양허대상에서 제외한다. 이렇게 지정된 품목을 ‘민감품목(Sensitive List 또는 High Sensitive List)’이라고 부른다. HS코드 상 민감품목에 해당하면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관세청은 수출입 제품의 정확한 HS코드 판정을 위해 전문가들로 구성된 ‘품목분류 사전심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기업이 자체 판정한 HS코드의 정확성이 의심이 간다면 품목분류 사전심사 제도를 통해 확실한 판정을 받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해서 민감품목이 아닌 양허 품목으로 인정받으면, 새로운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할 수 있다. D사가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처해 수출기업으로 도약했다.
 
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제공
 
국내 최초 폐플라스틱 시트파일 개발
 
1996년 설립한 D사는 부지환경평가, 오염정화 및 관련 장비 제조 판매 등 토양·지하수 환경 분야의 선도기업이다. 극동 아시아지역의 미군기지 환경사업을 비롯해 휴·폐광산 광해방지사업, 석면 조사·제거사업, 수처리 및 대기 환경사업, 토양침식방지사업 등 토목·산업환경산업 분야의 국내·외 환경산업 전반에 진출하여 명실공히 종합환경전문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D사가 독자기술로 개발한 제품은 ‘플라스틱 시트파일(PSP, Plastic Sheet Pile)’이다, ‘비닐 시트 파일(VSP, Vinyl Sheet Pile)’이라고도 불리는데, 제방보호, 토양유실 보호벽 등에 사용하던 강재 시트 파일(SSP, Steel Sheet Pile)이나 콘크리트 벽 등을 대체하기 위한 제품이다, 이 제품의 특징은 폐플라스틱(PVC)을 재활용해 여러 가지 개선제를 첨가해서 내화학성, 내풍화성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2015년 11월부터 창호, 창틀 등 PVC 소재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토목·건축·환경용 시트 파일을 생산하는 기술을 국내기업들 가운데 최초로 국산화했다.
 
D사의 제품은 총 중량대비 창호, 창틀 등 PVC 사용 비율이 91%로 재활용률이 매우 높고, 강제 시트 파일보다 재료비가 30% 이상 저렴하며, 상대적으로 가벼워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이 제품은 2017년 9월 21일 H건설에서 주관한 기술대전에서 은상을 받아 토목, 건축,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음을 인정받았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시험 분석결과, 자연 상태의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유해물질이 전혀 용출되지 않았으며 강제 시트 파일과 비교 시 제조 및 운반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 발생량을 약 94% 줄일 수 있었다. 2018년 3월에는 환경부로부터 환경마크를 획득했다.
 
‘민감품목’ HS코드로 입찰서 밀려 
 
D사는 PSP 수출을 위해 인도네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국가의 기술자들과 접촉하며 기술과 제품을 소개해 왔다. 2017년에는 미얀마 교통부 산하 수자원국(DWIR)의 초청을 받아 본 제품을 소개했고, 2018년 1월 19일에는 DWIR의 추천을 받아 현지 건설사와 미얀마 트완테강의 호안 침식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미화 7만2600달러의 수출 계약을 국내 최초로 성사시켰다.
 
첫 수출은 성공적이었으나 아쉬움이 남았다. 이 계약은 DWIR의 공개입찰을 기업들이 응찰해 최저가격을 써낸 기업이 선정되는 방식이었고, D사 이외에도 유럽의 P사, 미국의 T사 등이 참여했다. D사는 미얀마가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이라는 점에서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희망했으나, 제품의 HS코드를 PSP 제품에 일반적으로 적용했던 3921.90호(미얀마 정부 HS코드 3921.90.4010)로 적용하다 보니 5%의 관세가 부과되었다. 미얀마 정부가 이 품목을 한-아세안 FTA 협정을 통해 3921.90호를 ‘일반 민감품목(SL)’에 배치한 데 따른 것이었다. 
 
한-아세안 FTA 협정문은 미얀마는 캄보디아, 라오스와 함께 모든 관세품목의 10%를 민감품목군에 배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반 민감품목에 배치한 관세품목의 최혜국대우 실행관세율을 2020년 1월 1일까지 20%로 인하하며, 이러한 관세율은 2024년 1월 1일까지 이어서 0~5%로 인하된다고 명시해 놓았다.
 
입찰 결과, 유럽의 P사 제품이 최저가로 선정되었고 D사는 차순위 업체에 머물렀다. 다행히 P사가 납기 문제로 물량 공백이 생기자, D사가 일부를 납품할 기회를 얻은 것이 첫 수출 계약이었다. 당시 전체 발주 규모는 약 1,500만 달러였는데, P사는 70%에 달하는 물량을 공급했고, D사는 30% 정도를 가져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정부조달과 같은 G2B(정부와 기업 간) 사업은 최저가격이 수주의 성패를 가른다. 수익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만큼 낮춰야 하므로, 한-아세안 FTA의 관세 혜택을 활용할 수 있다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수출의 물꼬를 튼 미얀마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으려고 했으나 민감품목군에 배치된 3921.90호로는 D사는 사업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D사는 ○○지역FTA활용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 FTA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FTA 업무 프로세스를 익히면서 전문가에게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러자 센터의 전문가는 ‘품목분류 사전심사 제도’를 이용해 보자고 제안했다. 
 
 
품목분류 사전심사 이용해 HS 변경
 
제3921호는 제3918호·제3919호·제3920호나 제54류에 해당하는 것 이외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판·시트(sheet)·필름·박(箔, foil)·스트립(strip)을 분류한다. 따라서 이 호에는 셀룰러(cellular)의 물품이나 그 밖의 재료로 보강·적층·지지하거나 이와 유사하게 결합한 것만을 분류한다. 즉, 제3921호는 D사의 토목 공사용 PSP는 물론 일반적으로 플라스틱으로 품목을 모두 포함한다. 품목분류 범위가 넓으므로 민감품목군에 배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에 D사와 전문가는 제3925호의 적용 가능성을 타진했다. 제3925호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건축용품(따로 분류되지 않은 것으로 한정한다)’으로 건축용품이라는 단어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D사의 PSP 제품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제3925호는 한-아세안 FTA 양허대상 품목에 포함되어 FTA 원산지 기준에 맞으면 관세가 ‘0’이 된다. 품목분류 사전심사 결과 의도대로 ‘3925.90.0000’의 HS코드를 부여받았다.
 
한편 3925.90호의 미얀마 정부의 원산지 기준(PSR)은 ▷수출 당사국의 영역에서 완전생산된 것 ▷다른 호에 해당하는 재료로부터 생산된 것 또는 40퍼센트 이상의 역내 부가가치가 발생한 것 중 하나를 해당하면 된다. D사는 협력사들의 협조를 받아 관련 서류를 검토해 ‘역내산’ 판정을 받았다.
 
미얀마 누적수출 2100만 달러, 아세안 회원국으로 확대 FTA를 활용해 D사의 PSP 제품 경쟁력 수준이 단숨에 상승했다. 유럽이나 미국 회사보다 차별화된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서 이후 진행한 DWIR의 발주 사업은 모두 D사가 수주했다.
 
2018년 4월 12일 현지 전문 건설사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D사는 6월 15일부터 17일간 미얀마 양곤에서 개최한 국제 플라스틱 전시회인 ‘Complast Myanmar 2018’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 활동도 진행했다. 또한, 그해 12월 제55회 무역의 날에는 ‘백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백만불 수출의 탑은 수출 초보기업이 처음 받는 상으로, 본격적인 수출기업으로의 발돋움을 시작했다는 점에 서 의미가 있다.
 
정부조달사업에 이어 미얀마 건설사와 꾸준히 추가 계약을 진행해온 D사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수출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2020년 3월 25일 추가계약에 성공했고 그 결과 미얀마 발주 사업에서만 약 21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미얀마 수출을 위해 재활용된 PVC의 양은 약 900t에 달한다.
 
한-아세안 FTA를 통해 미얀마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D사는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 국가의 유력 기업과 대리점 계약을 체결했으며, 라오스 사업을 위해 한 국내기업과 MOU를 협의하는 등 수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D사 관계자는 “한-아세안 FTA를 통한 수출주도 사업은 비단 국내의 폐기물을 재활용하여 아세안 국가에 수출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수하고 상대적으로 값싼 제품의 공급으로 인해 홍수, 토양침식, 해수면 범람으로 인해 고통받는 열악한 아세안 국가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데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면서, “향후 ODA(공적개발원조),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등 국가 원조 사업과도 연계해 한국 위상과 이미지 제고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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