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제조확인서로 FTA 원산지 특혜 받아
경기도 고양시에 소재한 P사는 1998년 설립 이래 초기 10년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를 공급받아 메모리카드와 같은 완성품을 만들어 왔으나, 2005년부터 메모리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경영난에 시달렸다. 이에 P사는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특수필름’과 같은 소재산업에 눈을 돌렸다.
매출 효자품목 ‘사생활 보호필름’
통신기기에 사용되는 ‘특수필름’의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는 회사의 결정은 맞아떨어졌다. 현재 회사의 주력 상품은 다른 사람이 디스플레이 화면을 훔쳐볼 수 없도록 하는 ‘사생활 보호필름’이다.
사생활 보호필름이 쓰이는 곳은 스마트폰 외에도 다양하다. 노트북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물론 여객기 탑승객용 모니터에도 P사가 제작한 필름이 쓰인다. 현재는 보험회사, 은행, 증권사, 보안업체 등 주로 고객 정보를 다루는 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국내 사생활 보호필름 시장의 70%를 P사가 점유하고 있으며,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보호필름이 차지한다.
특수용 필름은 제조공정이 까다로워 경쟁사의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며, 국내에서 일정 품질 이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다. P사의 경쟁력은 ‘좁은 각도’다. 경쟁사 제품은 보는 각도가 좌우 30도를 넘어가야 화면이 보이지 않지만, P사 제품은 좌우 25도를 벗어나면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보안용 필름 세계 1위인 3M에도 지지 않을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P사는 청색광 차단 기능과 항균 기능, 자외선 차단 기능까지 갖춘 신제품도 개발해 새로운 ‘캐시카우’상품으로 성장시켰다. 노트북 전문기업 휴렛팩커드(HP)와 세계 최대 노트북 가방 제조업체 타거스를 통해 24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P사는 자체 상표 ‘뉴플러스’를 론칭하고 해외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시행해 수출국 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잘못된 HS코드로 인증수출자 취득
P사는 이미 여러 국가에 수출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처음 제품을 수출할 때부터 HS코드(품목분류)를 잘못 판정해, 잘못된 HS코드로 품목별 원산지 인증수출자 인증을 취득하고 수출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품목분류는 관세·FTA 업무 중에서 그 파급효과가 매우 넓은 핵심 업무다. HS코드에 따라 수입 관세, 요건 확인, 원산지 결정기준 및 표시 방법, 간이정액 환급액 등 중요사항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동시다발적인 FTA 발효로 그 어느 때보다 품목분류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FTA에서 원산지 결정기준과 FTA 협정관세율은 HS코드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품목분류가 먼저 정확하게 되어야 품목별 원산지 결정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잘못된 HS코드에 의해 FTA 원산지증명 업무를 한다면, 원산지 사후검증을 통해 사후 추징, 협정관세 적용 배제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유의해야 한다.
관세행정의 핵심은 정확한 품목분류에 있는 만큼 관세행정의 수요자는 가능한 자신이 생산, 수출 또는 수입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반드시 권한 있는 당국으로부터 확인을 받아둘 필요가 있다. 세관 공무원이나 관세사의 의견은 법률적인 효력을 갖지 않는 조언일 뿐이므로 품목분류 사전심사 제도를 이용하여 품목분류 유권해석을 받아두는 것이 안전하다.
품목분류 사전심사 신청에 의한 결정 통지문은 법적인 효력을 가지는 유권해석으로, 추후 수출입통관뿐만 아니라 사후 심사, FTA 원산지 검증 시에도 유용한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
‘OK FTA 현장방문 컨설팅’ 도움받아
P사는 수입자와 수입국 세관으로부터 HS코드 불일치 문제로 연락이 잦아져 검토해 본 결과, 품목분류 상 문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P사가 처음에는 정확한 HS코드를 찾아 직접 해결해보고자 했지만,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경기북서부FTA통상진흥센터에 ‘OK FTA 현장방문 컨설팅’을 요청했다.
이에, 전문 컨설턴트가 P사를 방문하여 애로 사항을 청취해 보니, 예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일단 전문 컨설턴트가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세관의 지원을 받아 정확한 품목분류를 한 결과, 수출품목의 HS코드는 ‘제3926.90호’와 ‘제9001.90호’로 확인되었다.
이제까지 P사는 해당 품목을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 회원국인 베트남과 중국,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독일 등에 수출하면서 한-아세안·한-중·한-EU FTA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같은 관세협정을 활용해 왔다. 분석해 본 결과, 이러한 FTA 하에서 재판정한 HS코드 ‘제3926.90호’와 ‘제9001.90호’는 원산지 결정기준만 충족한다면 관세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원산지 결정기준을 충족해 ‘한국산’으로 원산지를 판정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났다. P사는 90% 이상 완성된 제품을 국내 기업에서 구매해 단순 절단과 포장 작업만 한 뒤 수출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회사가 자체적으로 인증수출자 신청을 하려 했으나, 충분한 가공공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한국산으로 판정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제품을 공급하는 국내 공급업체가 수행하고 있는 제조공정을 확인한 결과, 국내 공정 요건을 충족시키는 공정임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담당 컨설턴트는 P사 담당 직원에게 ‘국내제조(포괄)확인서(Declaration of Inward Processing)’ 발급을 요청하였다.
국내제조(포괄)확인서는 수출품의 생산에 사용되는 재료를 생산하거나 공급하는 자가 생산자 또는 수출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해당 재료가 국내에서 제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발급하는 서류를 말한다. 원산지(포괄)확인서를 발행할 수 없는 경우(원산지 결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도 포함), 이를 보완해 국내에서 이뤄진 생산공정의 누적에 대한 입증과 동시에 원산지 결정기준이 충족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원재료 생산자가 원산지 결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원재료를 공급하는 경우 국내제조(포괄)확인서를 발급하면 해당 서류에 표시된 공급가격에서 비원산지 재료비를 제외한 나머지 역내 부가가치를 최종제품의 원산지판정 시 역내 가치로 계상할 수 있다.
국내제조(포괄)확인서는 원산지(포괄)확인서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생산공정의 누적과 같은 사항을 서류로 입증할 수 있어 원산지 결정기준 확인을 용이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역외산 원면을 사용해 한국의 A사가 면사를 제조한 후, 한국 B사가 면직물을 생산하여 미국으로 수출한 경우, A사가 발급한 국내제조(포괄)확인서가 있다면 B사는 A사의 생산공정의 누적 규정을 적용받아 FTA 특혜적용이 가능하다. 누적 규정은 해당 물품이 역내국 생산자에 의해 생산된 경우 전 단계 생산자가 수행한 공정을 최종 생산자가 수행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협력업체 도움받아 ‘한국산’ 입증
원재료 생산자의 제품이 원산지 결정기준을 충족할 수 없다면 공급받는 자 또한 해당 원재료를 역외산 재료로 판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재료 생산업자가 원산지 결정기준을‘미충족’한 원재료에 대하여 수출품 생산업자에게 국내제조(포괄)확인서를 발급하여 주면, 그 서류에 표시된 공급가액에서 비원산지 재료비를 제외한 나머지가 국내 부가가치로 인정될 수 있다.
이러한 전문 컨설턴트의 상담과 지원 덕분에, P사는 국내 공급업체가 수행한 공정은 충분한 공정임을 확인해 해당 업체로부터 ‘국내제조(포괄)확인서’를 수취해 국내에서 충분한 공정이 수행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한국산으로 인정받아 FTA 인증수출자까지 취득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기존 수입자와 지속해서 FTA를 활용하여 거래를 해왔음에도 잘못된 HS코드 및 신규 인증수출자 취득의 어려움으로 FTA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할 수도 있던 상황에서 전문 컨설턴트의 오류 수정과 업무 지원으로 FTA 인증수출자 인증을 취득하여 기존 수입자와 신뢰에 기반한 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잠깐] 품목분류
품목분류는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각종 물품을 세계관세기구(WCO)가 정한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HS)에 따라 하나의 품목번호에 분류하는 것으로, 이는 관세, 무역통계, 운송, 보험 등과 같은 다양한 목적에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다목적 상품분류제도다. HS는 상품분류 체계의 통일을 기하여 원활한 국제무역 거래와 관세율 적용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국제통일상품분류체계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Harmonized Commodity Description and Coding System)에 따라 체약국은 동 협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품목분류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설정한 HS코드는 4단위(1244개), 6단위(5225개), 10단위(1만1261개)로 이뤄져 있다.
한국무역협회 FTA활용정책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