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남미에 방문했을 때 일이다. 브라질 이과수폭포에서 한 부모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한국인이신가요?”
필자가 캐나다 국적이지만 한국계라고 대답하자, 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BTS의 나라에서 왔다고요? 혹시 저희 아이와 사진을 같이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조금 놀랐지만 BTS나 K-팝이 이렇게까지 강력한 글로벌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후 남미에 체류하면서 한류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흐름으로 만들어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남미에서 법인 운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남미에 와보니 언론에서 듣던 왜곡된 시각과 전혀 다른 실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 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높았고 시장은 아직 성장할 여지가 많아 보였다.
특히 북미에서 겪는 여러 한계를 효율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인구가 많고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시장. 이곳에 꼭 진출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2020년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필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형성 시장이자 무한한 가능성의 시장
당시 남미를 주목한 이유는 진행하고 있던 사업의 시장 확장이 아니라 무한한 성장 가능성 때문이었다. 또한 마케팅 비용이 높은 북미와 달리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장점도 컸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이미 형성된 시장에서 경쟁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듯이 이미 있는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미는 달랐다. 아직 형성되지 않은 시장이자, 기회가 남아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남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필자는 콜롬비아, 멕시코 등 라틴계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남미인들의 성향과 문화를 가까이에서 경험해 왔다.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롭진 않았지만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았으며 항상 즐겁고 에너지가 넘쳤다.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남미인들의 개방적이고 열정적인 성향은 K-팝의 글로벌 확장과도 맞닿아 있어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랜덤 플레이 댄스(Random Play Dance, RPD)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함께 즐기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이 문화적 특성이 K-팝의 강력한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유럽에서 만난 라틴 문화… ‘대안 시장’ 남미
필자는 최근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방문해 K-팝 행사 메인 스폰서로 참여했다. 여기에서 유럽 내 라틴계의 영향력을 직접 체감할 기회를 가졌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유럽인들의 삶은 어떨까? 남미와 얼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라틴 문화는 자연스럽게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글로벌 흐름이었다. 흔히 남미는 먼 시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멕시코와 미국을 통해 북미와 연결되고, 그 흐름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통해 유럽까지 확산되는 강력한 연결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팬덤이 아니라, 진정한 문화적 교류와 시장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미 형성된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경쟁에 집중한다. 미국 아마존에서의 경쟁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이미 자리 잡은 플랫폼 안에서 브랜드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주목을 받으려 애쓴다. 하지만 결국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플랫폼 자체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면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효율적이고 확장성 있는 대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미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남미를 직접 경험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으며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단순한 모험이 아니다. 직접 경험하고 분석하며 가능성을 탐색해야 하는 과정이다. 필자가 남미에서 본 것은 단순한 K-팝 유행이 아니었다. 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성장의 기회였다. 물론, 새로운 시장 개척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정보 부족, 인프라 미흡, 초기 투자비용 등 여러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고 직접 경험하는 과정 없이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없다.
“블루오션은 모든 산업에 존재한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직접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선택일까.
필자는 여전히 남미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라틴 시장과의 연결을 단순한 실험이 아닌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도전한 자만이 새로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분명 지금의 모험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결국 미래를 바꾸는 가장 값진 과정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알렌 정
ALC21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