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베트남 국경근처 캄보디아 시골 구석진 절에 살던 한 용감한 젊은이가 군대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고 나라를 적으로부터 구해냈다. 그는 물위를 걷고, 불을 뿜는 용들을 자신의 맘대로 부릴 만큼 비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달리는 말을 탄 채 활시위에 네 개의 화살을 올려 동시에 쏠 수 있을 만큼 전투력도 탁월했으며, 누구보다 용맹했다.
16세기 ‘스데잇 칸’ 이라 불리던 캄보디아의 전설적인 인물에 관한 설명이다.
(‘스데잇’은 크메르어로 왕이란 뜻이며, ‘칸’은 이름이다. 현지어 발음으로는 ‘스데잇 칸’ 이란 발음 대신 현지에선 ‘스테잇 꼬온’ 이란 발음으로도 불리는데, 여기선 편의상 ‘스데잇 칸’으로 통일하겠다.)
그는 최초의 캄보디아 화폐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300년 전쯤 이미 사회계급의 기본 개념을 정리한 선구자적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수도였던 이 지역 사원에서 발견된 금화는 현재 기념화폐로 제작돼 캄보디아국립은행에서 42불에 팔리고 있다.)
그는 평범하다 못해 매우 가난한 출신으로 태어났지만, 군대를 이끌고 왕을 내몬 뒤, 절대 권력을 손에 쥔 인물이란 점에서 이 나라 최고 권력자인 훈센총리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심지어 태어나고 자란 고향도 같다. 당시 이 지역 수도였던 프레이 노코르 크눙 지역과 여기에 딸린 불교사원은 훈센 총리의 고향인 캄퐁참주에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변경으로 지금은 트봉 크몸주에 위치). 스데잇 칸이 어린 시절 절에서 일하던 하인 출신이었다는 점도 훈센 총리의 어릴 적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훈센총리는 크메르루즈 게릴라군에 자원하기 직전까지 절에서 생활했다. 이후 알려진 바와 같이 목숨을 걸고 베트남으로 넘어가 군지휘관이 되었고, 1979년 베트남이 크메르루주지도부를 쫒아내는데 기여한 후 33살 젊은 나이에 절대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어찌보면, 전설속 스데잇 칸 이야기의 현대판(?)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 공통점 때문인지 탓인지 몰라도, 훈센 총리는 스데잇 칸이란 전설 속 인물이 자신과 비유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심지어 총리는 지난해 한 연설에서 스데잇 칸과 자신이 같은 ‘용띠’임을 강조한 적도 있다. (미신적인 요소에 대한 믿음과 집착이 강한 불교국가인지라, 이런 유사성이나 공통점은 이 나라 국민들에게는 나름 어필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스데잇 칸이란 인물에 대해 역사적 고증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실존인물이 아닐 수도 있으며, 설령 실존인물이라 하더라도, 그의 업적이 지나치게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문제쯤은 훈센 총리 입장에선 크게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총리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친정부성향의 어용 역사학자들을 다수 끌어들여 스테잇 칸이란 인물의 영웅적 삶을 미화하고 신격화하는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그 사이 스데잇 칸이란 인물의 동상도 전국에 7군데나 세워졌다. 5번 국도 우동가는 방면 길 삼거리 메콩강 옆 우측도로변에서도 스데잇 칸이 활을 쥔 채 말을 탄 동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 동상 얼굴을 자세히 보면 훈센 총리와 외모 면에서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현지국민들도 이점은 인정하며 웃곤 한다. 동상 제작 당시 훈센 총리의 의중이 반영되었거나, 어쩌면 두뇌 회전이 매우 빠른 영악한 예술가가 아부하기 위해 그런 천부적(?) 솜씨를 발휘했을지도 모른다. (웃음)
총리는 당시 수도였던 프레이 노코르 크농 지역 중심에 있던 사원터 복원작업에도 많은 자금을 투입했다. 이미 수 백 년 전 사라진 절터 위에 새 절을 다시 짓게 하고, 주변에 새 불교식 조형물들을 연달아 세웠다. 그뿐 아니다. 약 9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2개의 힌두교식 전탑 근처에 거대한 와불상을 건립하는가 하면, 화려한 금색과 흰색으로 치장한 데바신과 아수라신들이 나가 몸통을 움켜진 동상들도 사원을 둘러싸게끔 만들어 웅장함을 과시하도록 만들었다. 이곳의 성지화를 통해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계획도 세웠음이 분명하다.
사원 옆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이름은 훈센 총리를 이름을 따 훈센초등학교다. 시간이 없어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 학교 교정에도 스데잇 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환상의 조합(?)인 셈이다.
다만, 기대만큼 관광객들이 몰려들지 않아서인지, 새로 지은 사원은 수년 사이 관리소홀로 방치된 오래된 유원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 새로 만든 호랑이와 말 동상 등 조형물의 뜨거운 햇볕을 견디지 못해 페인트칠이 벗겨져 흉물처럼 되고 만 상태였다. 화장실도 청소를 하지 않아 지저분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새로 지어졌을 당시 모습을 연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훈센 총리는 이 전설적인 인물에 관한 책을 발간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후원금으로 낸 적도 있다. 지난 2006년 발행된 이 책의 서문까지 직접 쓰는 등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총리는 스데잇 칸의 영웅적 삶과 일대기를 소재로 한 영화제작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왕권을 찬탈한 인물에 대한 스토리라 왕실이 불편해할 것이 뻔해 선뜻 총리가 영화제작지원에 나서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 사이눈치 빠른 공보부 현직 차관이자 영화감독인 마오 야윳이 지난해 메가폰을 잡고 나섰다.
‘스데잇 칸 국왕 각하’(His Royal Highness Sdech Kan)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제작비만 무려 100만 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영화산업에서 이처럼 큰 자금 투입된 적은 영화산업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다. 영화산업계에서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과연 누가 그런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는지 검색해봤다. ‘리용팟’ 현 집권당 상원의원이자 재벌로 유명한 인물의 이름이 떠올랐다. 코콩주의 왕으로 불리며,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와 비호를 받아온, 훈센 총리와 가장 친한 재벌 유력인사들 중 한 명이다. 단언컨대, 훈센 총리가 제작비와 관련해 분명 옆구리를 찔렀음(?)이 틀림없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리용팟 회장 소유의 PNN방송이 이 영화홍보에 열을 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난해 8월 개봉했지만, 본전도 못 건진 채 흥행에서 대참패하고 말았다. 300명이 넘는 배역캐스팅과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스토리 구성이 엉성하고, 영화 완성도도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7~80년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급한 애니메이션 기술로 인해 전투신과 당시 모습을 재현한 일부 장면은 그야말로 안습(?) 그 자체였다. 최첨단 영상기술이 집대성한 미국 헐리우드영화에 이미 익숙해진 현지영화 팬들은 대부분 이 영화를 외면했다.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실패쯤은 훈센 총리의 안중에는 없는 듯 싶다. 총리는 여전히 왕의 권력을 빼앗은 뒤로는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자유를 주고 권력을 나눠준 자애로운 대신 정적에 대해서 무차별 보복을 서슴치 않았던 스데잇 칸을 롤모델로 삼는 모습이다.
훈센 총리는 지난해 11월 야당 해산 판결 이후 오갈 데가 없어진 야당 정치인들에게 정치적 전향을 회유하는 동시에 만약 불응 시 정치 활동을 금지시키는 등 이에 상응한 댓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협박한 적이 있다. 과거 스데잇 칸이 자신의 정적들에게 썼던 방식 그대로다. 실제로 총리는 이를 실행에 옮겼고, 절반 이상 야당의원들은 구속을 피해 해외로 도주했고, 일부는 전향을 선택했다.
총리는 더 나아가 스데잇 칸의 환생이란 이미지가 국민들 사이에 각인되길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 대해, 일각에선 총리가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노로돔 시하누크 전국왕의 비서를 지낸 시소왓 토미쪼 왕자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훈센 총리가 스데잇 칸과 같은 역사 속 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의도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과거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토미쪼 왕자가 그 같은 반응을 보인 이유에 대해 나름 이해가 갈 수도 있다. 과거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스데잇 칸이 1512년, 왕을 폐위시키고, 절대 권력을 잡았지만, 13년 후인 1525년 자신이 죽인 왕의 친동생에게 보복살해를 당하며,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훈센 총리가 스스로를 스데잇 칸의 환생쯤으로 포장하거나, 자신의 우상 혹은 롤모델로 삼기에는 결말이 썩 좋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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