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의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녘, 한적한 올림픽스타디움 공터로 배낭을 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서로도 어색한 캄보디아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멋쩍게 서있는 한국인이 하나 서 있었다. 짧은 크메르어로 인사를 건내니,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까지 돌아왔다. 다행이다, 외롭지 않은 여행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6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62번, 64번 도로를 옮겨 타고 도착한 지역은 스텅뜨렝 주, 라오스와 메콩강으로 연결된 국경지역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다양한 생물종들이 서식하며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수변지역을 람사르 습지라는 이름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데, 이곳 스텅뜨렝 람사르 습지는 그 중 하나로, 다양한 어류, 조류가 서식하고, 민물에서 서식하는 이라와디 돌고래의 몇 안되는 출몰지역이다.
열댓명을 태운 승합차는 오스바이 마을(O’Svay commune) 강변에 멈춰 섰고, 기우뚱 거리는 긴 보트에 올라타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메콩강을 가르며 출발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국도를 따라 스텅뜨렝 까지 올라오던 풍경은 빛바랜 초록잎이 앙상하기까지 한 나무들로 ‘지금 캄보디아는 건기’라고 말해주었지만, 보트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하루종일 눈에 담은 풍경이 무색하게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수위가 낮아져 강물 아래 세상(?)들을 드러내며, 이곳 역시 건기 중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 한가운데로, 많은 나무들이 우뚝, 아니 기우뚱 하지만 굳건하게 서 있었다. 뿌리인지 가지인지 알 수 없지만, 오랜 세월 우기와 건기, 물아래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거센 물살을 따라 팔을 늘어뜨린 고목들이 줄지어져 있었고, 그 기이한 형상에 감탄하며, 또 그 무한한 생명력을 상상하며 20여분을 달려 2박3일 동안의 캠핑사이트가 될 섬, 코 푸따브(Koh Puthav)에 도착했다.
섬의 전체는 고운 백사장이었다. 우리는 낮은 언덕 위, 평평한 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섬의 이곳저곳 이름 모를, 나무와 수풀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더 깊숙한 자락에는 아직 다 빠져나가지 못한 강물이 시내를 이루며 유유히 흘러나가고 있었고, 그 물들이 깎아놓은 모래층을 맨발로 무너뜨리면 젖은 모래반죽이 발목까지 덮어 올랐다. 바람이 만들었을 사구를 오를 때는 종아리까지 다리를 삼키는 듯 간지러운 모래가루가 가득했다.
섬에서 자라는 나무 위쪽 가지에는 비슷한 높이쯤에, 물결 방향을 따라 마른 수풀들이 층을 지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우기에는 그곳까지 강물에 잠겨있었구나 알 수 있었다. 내가 밟고 있는 모래밭 위로, 얼마 전 까지는 물고기가 수초 뜯으러 내려왔겠구나 상상력을 더해보았다. 건기에만 나타나는 섬. 오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생각하니 이 여행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하루 종일 중천에 있던 해가, 나무 사이로 붉게 내려와 비치기 시작했고, 우리는 둥글게 반원을 이루도록 텐트를 치고, 더운 날씨에 땀으로 젖은 몸을 강물에 뛰어 들어가 헹궈냈다. 프놈펜에서 본 강물은, 도심 골목에서 본 냄새나는 오물 행군물을 모아놓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상류의 메콩강은 파릇한 주변 풍경과 함께 생동감 있는 거센 물살이 어우러져, 들어가도 괜찮아 보이는 살아있는 강물로 느껴졌다.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물은 아니었지만 여느 강물의 비릿한 냄새조차 없이 쾌적한 목욕을 마쳤다. 해질녘 물에서 나온 몸에서는 한기가 느껴졌고, 텐트로 돌아가 보니 사이트 한 가운데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따닥거리는 불 가로 모여들어 몸을 말리며, 나는 다 알아듣지 못할 크메르어로 웃고 떠들며, 나도 그냥 그 분위기가 재밌어 함께 웃는 사이에, 강 저편에서부터 보트엔진 소리와 불빛 하나가 다가왔고, 지역 순찰 겸, 두 밤 동안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줄 지역 레인저들이 도착했다. 이들은 이 지역일대 자연자원 보존을 위해 지역주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정부의 지원으로 순찰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고 한다. 그럴듯한 밀리터리 유니폼에 라이플총을 메고서 숲에서는 불법벌목을 단속하고, 강에서는 폭약을 사용하는 불법어업을 단속한다.
이들이 섬으로 들어오며 저녁거리를 가져다주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준비해준 음식이었다. 메콩강에서 잡아올린 작은 물고기 튀김과 함께 곁을여 먹는 망고절임샐러드, 그리고 재료를 알 수 없는 따뜻한 국물이었다.
프놈펜에서는 쳐다만 보았던 길거리 음식이었지만, 이곳에 오니, 지역 특산물이다. 찾아먹기도 힘들 그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빈 그릇을 정리하고 넓게 핀 돗자리에 혹은 맨 모래사장 위에 삼삼오오 모여 누웠다. 그리고 이 여행의 황홀함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 날의 밤 하늘에서는 별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모든 별이 다 밝아서 북두칠성조차 찾기 어려웠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안보이던 별빛들도 눈에 들어왔고 조금씩 반짝거렸다. 조용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몇몇이 동시에 탄성을 지를 때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떨어지는 별똥별마다 달아놓은 소원들이 다 이뤄졌다면, 나는 지금 20대 끝자락에 생을 마감해도 아쉬움 하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별들이 별보다 더 빛나는 자취를 ‘반짝’ 그어줬다.
우리는 밤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날 밤은 서로를 보는 시간이었다. 한 곳을 바라보며 자정을 넘기도록 나눈 대화는, 오늘 처음만난 사이, 국적조차 다른 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알아가며 친구가 되게 했다. 각각 다른 분야,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공부하고, 일하는 캄보디아 친구들과의 만남은 이 나라와 사람들을 내 마음에 더 가까이에 두게 만들었다. (2편에 이어집니다.)
이규호 / 2018년 농촌진흥청 코피아 연구원으로 파견되어 캄보디아 농업기술개발을 위한 원조사업의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