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캄보디아 스떵뜨라엥 여행기

kimswed 2019.06.17 06:10 조회 수 : 18240

누구의 보챔이나 기상알람도 없이, 텐트 밖의 새소리와 머지막한 웃음소리에 스스륵 잠이 깨었다. 강가로 하나 둘씩 나가 간단한(?) 메콩강 입수로 남은 졸음을 씻어보내고, 지난밤 이야기, 함께 찍은 사진, 혹 누군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담아둔 일출사진을 공유하며 둘째날을 시작했다.

오늘 일정에 대해서는 섬에서 육지로 다시 나가서 트레킹을 한다는 것 정도였다. 우리를 이곳에 내려줬던 보트가 다시 섬으로 들어왔고, 우리를 데려왔던 상류쪽이 아닌, 물결을 타고 하류쪽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어제 섬에 들어올 때는 거센 강물의 흐름에 순응하며 기울게 서있던 고목들이 눈에 띄었다면, 오늘은 강변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그물을 정리하는 어부들과, 벌거벗고 물놀이 하고 있는 아이들까지 보였다. 한 아이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다가 엄마에게 호되게 매를 맞는 모습도 보였다. 아직 외부사람들에게 배타적인 곳인가 싶기도 했지만, 어떤 섬에서는 우리처럼 캠핑을 하는 듯 보이는 텐트촌도 있었고, 마주 지나가는 한 보트에서는 백인 부부가 여유롭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조금씩 밖으로 알려지며 우리처럼 호기심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트가 드디어 속도를 늦추더니 강변에 닿았고, 우리는 언덕을 올라 숲길을 오 분 정도 걸어, 보은센 마을(Voeun Sean)에 도착했다.

사진을 찍으며 늦장을 부리다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나는, 다소 당황스러운 풍경을 목격했다. 앞서 도착한 일행들이 몇몇은 신을 벗고 터벅터벅 2층 목재가옥으로 올라갔고, 한 명은 장대를 들고 마을 한가운데 타마린 열매를 털기 시작했다. 또 몇몇은 이집 저집 해먹에 드러누웠다. 다들 지금 뭐하는거야? 다들… 여기가 고향이야? 알고 보니 서로 이웃사촌이었니? 우리네 시골 고향집에서나 볼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사정을 듣고 보니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시골은 어디든지, 누구에게나 고향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래, 도시에서 온 너희들이 그렇게 느끼는건 이해한다 치고, 이 지역 분들도 너희들이 그렇게 조카 같으신거야? 의문이 들 때, 어르신들은 음료를 내오시고, 타마린 찍어먹을 양념을 내오시고, 한 아저씨는 직접 나무에 올라가 타마린을 털어주셨다. 캄보디아 시골인심 리스펙!

 

그렇게 처음 맛보는, 새콤한 곶감 같은 맛이 나는 타마린의 콩깍지를 열심히 벗겨먹다가 문득 우리는 왜 간다는 트레킹을 출발하지 않는가, 잊혀졌던 행선의 목적이 떠올랐다. 그 질문에 친구들은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코윤이라고 부르는 ‘영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어떤 교통수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일정은 한없이 늦어졌지만 마음을 서두르거나 불평할 이유는 없었다. 다음 일정이 빡빡하게 줄서있는 여행도 아니었고, 어차피 2박3일 이곳에 붓기로 한 내 시간 안에서, 시골 어르신들과 타마린 까먹는 이 시간도 새로운 여행의 일부였다. 이렇게 생각을 되내이며 이 시간이 즐거웠던 나와는 다르게, 친구들은 그냥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누구도 언제 출발하냐고 보채지 않았다. 캄보디아 행복지수 리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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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말했던 코윤이 도착했다. 나도 이 교통수단을 잘 안다. 경.운.기. 우리는 오늘 이 친숙한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아주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것… 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산길은 아주 험하고 좁았다. 우리나라처럼 험준한 산악지대는 아니었고 다소 평평하게 고도가 이어졌지만, 길이 좁고 수풀과 가지들이 길 안쪽까지 뻗쳐있어서, 밖으로 걸터앉아 내놓은 무릎이 굵은 가지에 치이지 않게 조심해야했고, 통통거리는 차체로부터 내 몸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잘 버텨내야 했다. 차라리 걷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수풀 없이 교목만 시원하게 서있는, 길이 넓게 트인 지대에 들어섰고, 우리의 경운기는 속도를 높여 힘차게 숲을 가로질렀다.

방심한 탓일까, 앞서가던 경운기에 문제가 생겼다. 큰 그루터기를 보지 못한 채 질주를 계속 하다 그 위를 올라탔고, 바퀴하나가 빠져버렸다. 다행이 다친 사람은 없었다. 현지 경운기 기사님께서는 휴대전화로 누군가에게 분주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계신 듯 했다. 마침 목적지가 바로 앞이라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곧 숲의 한가운데 쁘락산 동굴(Phnom Prak Cave)에 도착했다.

 

이 동굴은 조금 특별했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한 동굴은 아니었고, 암석지대 위로, 흐르는 물로 깎인, 수로에 가까운 Open Cave였다. 이 뚜껑열린 동굴은 위에서 보이는 폭보다 더 넓고 깊게 기괴한 형상으로 공간이 이어져 있었다. 폴짝 뛰어 내려가 허리를 바짝 숙이고, 나름의 동굴탐사를 시작했다. 석회동굴의 종유석은 없었지만, 덜 깎여 툭 튀어나온 굴곡의 형상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무언가 튀어나올듯한 신비로운 어둠은 없었지만, 동굴의 끝자락 유일하게 뚜껑있는 낮은 공간을 기어 나가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큰 물웅덩이가 비밀의 화원처럼 숨어있었다. 검은 암석이 건기에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열을 그대로 품고 있어, 혹시 이 동굴은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든게 아닌지 싶을 정도로 주변은 열기로 가득했다.

드론샷을 마지막으로 동굴탐사를 마치고, 경운기로 돌아왔다. 수리를 마치지 못한 경운기 한 대는 숲속에 남겨두고, 일행의 반은 마을까지 진짜 트레킹을 시작했다. 경운기 속도에서는 보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이 비로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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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탄 자리 위에 축구공만한 솔방울이 그슬려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소철이 불에 탄 것이었다. 화려한 잎을 잃고 가운데 머리만 남은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면 이놈은 다시 무한한 생명력을 이어나가 새 잎을 뻗어낼 것이다. 친구 한 놈이 관엽식물의 통통한 하트 모양잎을 주어오더니 ‘사랑해’ 라며 건내줬다. 이 친구가 아는 한국말은 ‘사랑해’ 뿐이었다. 소중한 ‘사랑해 잎’을 돌려주며 “니 여친한테나 줘라” 했더니, “응 그럴거야, 그냥 보여준거야” 라고 했다. 응. 여친 있는 너는 좋겠구나.

한 시간 정도를 걸어 마을로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열심히 펌프질로 끌어올려준 물로 더위를 식히고, 우리의 캠핑사이트로 돌아가기 위해 보트에 다시 올라탔다. 어제 처음 섬에 들어갈 때처럼 해가 뉘엿뉘엿 불그스레 내려오고 있던 풍경은 기억이 나지만, 우리 대부분 그 이후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보여준 사진 한 장이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서로를 기대 잠들어 버렸다. 누가 보면 단체로 기절시켜서 보트로 납치해가는줄 알았을거다. 그 상태로 강물에 빠지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었다.

섬에서는 마지막 만찬이 거하게 차려졌다. 이 외딴섬에서 휴대용 가스버너까지 등장하더니, 민물고기 샤브샤브가 펼쳐졌다. 그래도 날생선은 불안하다 싶어 육수에 푹 담가 익혔다. 오랬동안 익혀도 살점 하나 흐드러지지 않을 정도로 쫄깃한, 야생의 육질이었다. 매콤한 육수에 모닝글로리와 미나리종류 야채도 듬뿍 들어가고, 당연 고수향도 물씬 풍겼다. 샤브샤브의 마지막은 라면이라는 것을 이분들도 알고있나보다. 배우신분들이 추가해 넣은 인스턴트 누들로 낮에 소모한 칼로리를 두 배 채워 넣었다. 두 번째 생선파티가 바로 이어졌다. 메콩강에서 잡아올린 팔뚝만한 생선이 꼬챙이에 끼워져 모닥불 옆에 세워졌다. 프놈펜에서 오신 아주머니는 어릴 때 먹던 생선이라며, 요즘은 프놈펜 시장에도 잘 안나온다며 연신 사진을 찍으셨다. 뭔지는 몰라도 아주 귀하고 맛있는 생선인가보다 했는데, 역시나 양념하나 하지 않은 생선에서 단맛이 났다. 비린맛에 민감한 미각과 후각인데도, 왜 자꾸 강물에서도 생선에서도 비린내가 안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비린내가 안났다.

어젯밤처럼 느긋하게 밤하늘이나 보고 싶던 내 기대와는 다르게, 큼지막한 스피커가 등장하고, 맥주가 가득담긴 아이스박스가 꺼내졌다. 아마 캄보디아 국민가요정도 되는 선곡들 이었나보다. 모두가 떼창을 했고,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어려운 스텝을 폴짝폴짝 일사분란하게 밟고 있었다. 간혹 젊은 친구들이 선곡한 트렌디한 팝송도 나왔다. 기대하지 못했던 뜨거운 분위기였지만 함께 흥에 취해가고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기어코 날 너무 위해준 나머지 케이팝을 선곡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주가 시작된, 케이팝을 글로벌 반열에 올린 그 곡!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도 못하고 강남도 몇 번 가본 적 없는 촌놈이지만, 비교적 그들보다 한국어 가사에 익숙하고, 강남을 가본 적이 있어서 마이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이후로 이들에게서 내 이름은 사라지고 Oppa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광란의 밤이 끝나간다. 벌써 내일이면 섬을 나가 프놈펜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 매연 가득한 도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의 크기만큼 밤하늘에서는 눈을, 돗자리에서는 등을 떼지 못하는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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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Preh Rumkel (Preah Rumkel Community-Based Ecotourism Site) / Sopheak Mit Waterfall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새소리와 푸르른 풍경들을 눈과 귀에 더 담고 싶어서일까, 지난밤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다 잠들었는데도 일찍 잠에서 깨었다. 혼자 섬 안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아침해는 나왔지만 아직 섬 깊숙한 곳까지 닿지 않아 곳곳에 새벽의 서늘함이 남아있었다. 고맙게도 새소리는 도망가지 않고 더 가까워졌다. 이곳을 두 밤 만에 떠나기엔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그래도 가장 기다리던 일정이 남아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접으며 떠날 채비를 마치고, 보트에 다시 우리 짐을 옮겨 싣고 출발했다. 아침은 이동하는 보트위에서 먹었다. 메콩강 체류 삼일이면 달리는 보트위에서의 식사정도는 멀미 없이도 거뜬하다. 보트는 우리가 첫날 출발했던 곳을 지나 북쪽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드디어 한 강변에 보트가 멈춰섰고, ‘여기가 어디야?’ 라는 내 물음에 ‘여기는 라오스야’ 라고 했다. 저기, 잠깐만 나 여권도 안가져왔는데? 우리 원래 이런 일정이 있었나? 난 그냥 보트에 있어야 하는건가?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출입국 검사라거나, 비자발급 따위를 처리할 것처럼 보이는 건물도, 철조망 비슷한 것도 없는 그냥 작은 섬마을처럼 보였다. 널려있는 그물이 보였고, 좌판에서는 여기가 라오스라고 알려주듯 라오스 국민맥주도 진열되어 있었다. 이 지역은 옛적부터 라오스와 캄보디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이주하며 지내고 있는 곳이라 했다. 한때는 영토분쟁이 심하기도 했고, 한 때, 각 정부에서는 타 지역 주민들을 강제이주 시켜 터전을 지켜야 했을 정도였지만, 현재, 국경은 국경대로 정해져있고 사람들은 이렇게 자유롭게 넘나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곳 사람들은 라오스어와 크메르어 모두 사용할 줄 알았고, 상점에서 달러는 물론, 캄보디아 화폐 크메르리엘도 통용되었다. 캄보디아와 다를 것도,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조용한 마을에서 목을 축이며 잠시 휴식을 갖고 다시 보트에 올라탔다.

라오스 마을을 지나 큰 섬을 끼고 돌아, 섬의 반대쪽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강변에 조그맣게 꽂혀있는 캄보디아 국기들을 보고, 다시 캄보디아로 내려왔구나 알 수 있었다. 괜히 마음이 편안했다. 라오스마을에서 왠지 불법체류하는 기분이었다. 조금 내려가다가 드디어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 프렉룸켈(Preh Rumkel)마을에 도착했다. 텐트를 비롯한 모든 짐을 내려준 보트와 드라이버는 다시 오스바이 마을로 돌아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승합차에 짐을 모두 싣고 난 후에, 주변을 둘러보니 민둥하고 길쭉한 돌고래 동상이 하나 보였다. 이곳이 이라와디 돌고래가 출몰하는 바로 그 마을이구나!

이라와디 돌고래는 해수 연안과 담수에서도 서식하는 돌고래이다. 메콩강지류의 동남아시아 일대와 인도양 연안과 호주 북부 연안에서도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특유의 입모양 덕분에 ‘웃는돌고래’로도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메콩강 지류에서는 두 곳이 이라와디 돌고래 서식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 스텅뜨렝주의 프렉룸켈 마을이고, 다른 한곳은 끄라체 주에 위치해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 귀여운 ‘웃는상’ 돌고래는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해있는데, 특히 이곳에서는 베트남전쟁당시 미군의 메콩강 폭격으로 크게 줄었고, 고기와 기름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 후에도 지역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계속 포획되어왔다. 지금은 많은 국제기구와, NGO를 비롯해 캄보디아 당국에서도 보호지역으로 관리하는 등 애쓰고 있지만, 그 개체 수는 계속 줄어, 현재 이곳 스텅뜨렝에서는 10마리도 채 남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마을대표어르신이 나오셨고, 어르신 주변으로 둥글게 모여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라와디 돌고래에 대한 전설이었는데, 요약하자면 옛날에 이 마을에 무자비하게 이유 없이 주민들을 학대하고 죽이는 나쁜사람이 있었는데, 날로 그 악행이 더해져 어느 날은 스님들까지 무차별하게 죽이기 시작했다. 이에 분노한 신이 이 악인을 저주해 물속 짐승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 짐승이 바로 이라와디 돌고래라는 전설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증거가 바로 돌고래는 다른 어류와 다르게 사람처럼 알이 아닌 새끼를 한 마리씩만 낳고, 젖을 물린다는 돌고래의 포유류로써의 특징들이었다. 귀여운 웃는상 돌고래의 기원이 선인이 아닌 악인이라는 것도 참 이례적이다 라는 생각과, 현시대 진화론의 증거로 읊어지는 고래와 돌고래의 포유류로써의 특징들이 지역 전설의 증거로 등장한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운 스토리였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는 요즘 돌고래들이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고, 우리도 결국 돌고래를 만나지 못했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내가 캄보디아에 머무르는 동안 너를 만나러 다시 꼭 오겠다고 마음속에 새겨놓았다.

이제부터는 육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프놈펜으로 돌아가기엔 아직 이르다. 지도를 보니 메콩강을 우편에 끼고 라오스와의 국경을 따라, 북서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폭포를 보러 간다고 했다. 하지만 지도상에서 우리가 가는 방향에는 산이 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모름지기 폭포라 함은, 설악산의 토왕산 폭포처럼, 여름철에 피서가는 계곡의 폭포처럼, 험준한 산 중턱 계곡에서 나타는 것이니 산이 있는 곳이어야 폭포가 있을 거라 생각을 했다. 허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산속이 아닌 강가였고, 차에서 내리니 세차게 부숴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서니 대자연이 그곳에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폭포를 본적이 있다, 영화에서. 아마존이나 어떤 정글에서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이 강물에 떨어지고 가까스로 통나무를 붙잡고 물에 빠져죽지 않았지만 곧이어 유속이 빨라지며, 저 멀리 물길의 끝이 보이고, 그 끝에 그들이 떨어질 폭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본 듯한 그런 폭포였다. 사실 과장을 좀 더했다. 우리가 만난 소페악밋폭포(Sopheakmit waterfall)의 높이는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다. 하지만 저 아래 떨어져 부숴지는 물을 보고 있자면, 무인들이 폭포아래 도를 닦는 그런 산속의 폭포는 귀여운 수준으로 비교된다. 라오스쪽에서 넓직한 강폭을 따라 흘러 내려오던 강물이, 우리 눈앞에서 바위사이로 갈라져 점점 빠르게 흐르다가 몇 층의 낙차에 걸쳐 아래로 또 아래로 물거품으로 부숴지며 떨어진다. 떨어진 물은 우리가 서있는 높은 지대 사이의 물길로 다시 유유히 흘러내려간다. 이지대 암석의 단면은 겹겹이 쌓인 지층을 비스듬히 드러내고 있다. 검은 화산암일지, 암회색의 석회암인지 모르겠지만 강물의 옥빛, 그 위 흰 물거품과 함께 어우러져 진하고 묵직한 유채화의 인상을 남겨준다. 빠르게 흘러가던 메콩의 강물은 내 모든 잡념과 걱정을 씻어주는 듯 상쾌했지만, 이 폭포의 부숴지는 물거품은 내 모든 걱정을 더 작게, 더 미세하게 부수고 분해해서 멀리 사라지게 해주는 통쾌한 기분이었다. 옆 친구의 말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 큰 물소리에 갇혀있으니,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오늘 아침 코따브섬의 고요함과 같게 느껴졌다.

마지막 장소에서의 단체사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제 프놈펜으로 돌아간다. 아쉬움? 이 순간들을 자주 만끽 할 수 없다는 아쉬움, 또 다시 찾아온다 해도 오늘과 같을 수는 없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여행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세차게 하루하루 개발되어가는 캄보디아에서, 아직은 그 손길이 다 헤집어 놓지 못한 채 남아있는 자연을 경험하는 여행이 이정도로 완벽할 수 있었을까?

 

여행에서 돌아오고 며칠 동안 사진공유로만 활발할 것이라 생각했던 단체채팅방은 아직까지도 시끄럽다. 크메르어로 무슨 말들을 하는건지 모르겠지만 매일 사진과 메시지가 올라온다. 며칠 전엔 나도 보라는 듯 영어로 메시지를 올렸길래 읽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뒷풀이라고 말하는 저녁약속이 잡혔다. 유학중 휴가로 잠깐 와있던 친구 몇몇은 다시 학업을 위해 출국했고, 금요일 야근을 피할 수 없었던 친구들도 아쉽지만 함께하지 못했다. 한식당은 아니지만 코리안BBQ 식당으로 장소를 정했다고 한다. 계란찜부터 상추겉절이까지 나름 잘 흉내낸 식당이었다. 참 배려깊은 친구들을 위해 한국 회식자리에서 고기 굽던 솜씨로 가위와 집게를 잡아 보답했다.

또 얼마 전 들려온 반가운 소식은 새끼 이라와디 돌고래가 발견되었다는 뉴스였다. 우리가 갔던 스텅뜨렝이 아닌 끄라체 지역이었지만. 날로 방해 받고 있는 환경속에서도 굳건하게 대를 이어가는 모습에 꼭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았으면 하는 응원을 더해주었다. 다시 꼭 만나러 가겠다는 약속은 아마 끄라체에서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규호 / 2018년 농촌진흥청 코피아 연구원으로 파견되어 캄보디아 농업기술개발을 위한 원조사업의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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