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병원 문을 열고 두어 달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저녁에 퇴근을 했다가 병원에 볼 일이 있어 밤 9시 경에 다시 돌아오니, 삼 십여 명이 병원 문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 밤에 웬 사람들이지?’ 궁금해졌습니다. 지금이야 프놈펜이 많이 발전하면서 공항 근처인 헤브론병원 주변도 동네가 북적이게 되었지만, 지금부터 11년 전의 헤브론병원 근처는 집들도 별로 없었고, 해가 지면 온통 어두움으로 가득 차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요즈음도 매일 밤 헤브론병원 앞에서는 일상생활처럼 벌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환자 대기실을 새로 지었습니다. 전에 사용하던 곳의 천장이 함석으로 되어 있어서 낮에는 너무 더웠기 때문입니다. 마침 새로운 단열재가 나왔다고 해서 천장을 교체하기로 했고, 바닥도 타일로 깨끗하게 깔았습니다. 그랬더니 밤에 찾아오는 환자들이 전보다 더 많아졌고, 그분들은 새로 마련된 대기실에서 잠을 자며 아침 진료를 기다립니다.
캄보디아에 여러 번 방문하는 분들은 프놈펜이 정말 놀랍게 변하고 발전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의료 환경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병원 문턱이 높기만 합니다. 11년 전에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의료 환경이 열악했었습니다. 헤브론병원은 가난하여 질병을 진단받고 치료받기 어려운 캄보디아 환자들을 돕기 위해 몇 명의 한국 의료진이 연합하여 세워진 병원입니다.
환자들을 진료하고 실력 있는 의료인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마치 120년 전, 어려운 시절 한국을 찾았던 서양의 의료선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캄보디아에서 그렇게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난한 분들은 대부분 도시 변두리나 시골 지역에 거주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찾아오기 쉬운 지역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프놈펜공항 근처라 찾아오기는 쉬웠습니다. 자리를 잡고 보니 시골에서 수 십 명이 타고 오는 승합차들이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는 이점이 있어 보였습니다.
병원이 문을 열자 가난한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왔습니다. 그 분들 중에는 간단한 수술을 받으면 좋아질 분들도 있었고, 며칠 입원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분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수술실과 입원실을 지어보자고 생각하고 마음을 모으면서 병원 규모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술을 하고 입원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차차 한국과 미국 등지에 헤브론병원이 알려지게 되면서 많은 의료 봉사팀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분들과의 협력을 통해 헤브론병원은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내과, 외과, 소아과 한국 의사가 상주를 하고, 캄보디아 의사 20여 명이 같이 일하는 중형급의 병원이 되었고, 매일 300여 명의 외래환자와 입원 수술 환자들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병실이 부족해 병원 건물을 증축 중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검사가 거의 가능하고 초음파, 내시경, 복강경, 관절경, CT, 심혈관조영장치, 영상 전송장비, 수술실, 중환자실 등이 갖추어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수술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4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일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제 기준에 맞는 실력 있는 간호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4년제 간호대학이 문을 열었고, 캄보디아 의사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레지던트 수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유독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원래 선천성 심장병은 선진국이나 후진국을 막론하고 발생하는 빈도가 동일하다고 되어있는데, 캄보디아에서는 그동안 치료와 수술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더 많아 보였던 것입니다. 수술이 성공만 하면 거의 정상인처럼 살 수 있는 아이들이 쓰러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그동안 심장병 아이들에게 많이 매달렸습니다. 한국의 병원 여러 곳을 연결하여 수술을 받게 하기 위해 많은 아이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일을 하게 되었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헤브론병원에 심장센터를 만들고 직접 심장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헤브론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은 아이들과 어른 환자를 합하면 300여 명이 되어갑니다.
작년 성탄절 전야에 한국의 KBS방송에서는 ‘어꾼 헤브론’이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헤브론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은 조그만 아이들이 어떻게 병원을 찾아왔고, 수술 후에 어떻게 회복하는 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방송은 병원을 찾은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이들의 부모와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헤브론병원 식구들은 오히려 귀한 생명을 헤브론병원에 맡긴 그분들께 감사를 드리는 마음입니다. 이 다큐 프로그램은 얼마 전 캄보디아 국영방송에서도 캄보디아어로 번역되어 방영이 되었습니다.
벌써 여러 해 전입니다. 한국 교민 한 분이 헤브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식도암이 전신에 다 퍼진 상태라 음식물을 전혀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분이 캄보디아에서 오래 살면서 한국과의 모든 인연이 끊겼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으로 가기 위한 행정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입원실에서 하루종일 책만 보고 있는 그 분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얼마 후 그 분은 한국에 돌아갔고, 고향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들었습니다.
가난한 캄보디아 환자들을 위해 헤브론병원이 시작되고 활동이 확대되어 왔지만, 더불어 캄보디아에 머무는 한국 교민들과 방문객들의 진료와 의료 상담도 헤브론병원의 몫입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헤브론병원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계기 중 한 가지는 11년 전 깜폿 지역 산속 밀림에 한국인들이 여러 명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헤브론병원의 의료진들은 추락 현장에 들어갔고, 혹시 한 사람이라도 생존자가 있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헤브론병원의 한국 의료진이 항상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 생기는 한국 교민들의 모든 의료적인 수요에 부응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10주년을 지내면서 헤브론병원은 비전과 미션을 새로이 정리를 했으며 새로운 10년을 어떻게 준비하며 나아가야 할지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비전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사람을 세워가는 병원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앞서가는 큰 대형병원이 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분야, 특별히 암 진단과 수술과 치료에 관한 것과 심장 수술에 관한 것과 안과 수술에 관한 분야에서는 앞서가는 특화된 병원으로 나아가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헤브론병원의 앞으로의 모습을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웹사이트 : http://www.hebronmc.com/
ㅇ 주소 : #102, St.68K, Phum Prey Salar, Sankat Kakab, Khan Porsenchey, Phnom Penh
ㅇ 전화 : +855-(0)23-6336-119
ㅇ 이메일 : woojungp@hanmail.net
ㅇ 진료시간 : 월-금/ 오전 8:30~12:00, 오후 2:00~5:00 (수요일은 오전시간에만 진료)
ㅇ 오시는방법(시내에서 올 때) : 프놈펜 공항앞 신호등에서 우회전, 1Km 지점의 프사 땅까상에서 좌회전 후 150M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