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캄보디아의 향기로운 꽃나무

kimswed 2023.01.03 07:32 조회 수 : 14054

처음 캄보디아에 왔을 때 이 나라는 꽃(캄보디아말 ‘프까’)이 없는 나라라고 함부로 생각했다. 한국의 때가 많았고 우월감에 젖어서 캄보디아의 산천초목은 한국의 사계절에서 보이는 다채로운 칼라가 없어서 눈이 심심했다. 그래서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 출신자가 여기서 오래 살다가는 미적 감각이 후퇴할 거라는 건가 싶었다. 이처럼 툴툴댔더니 동료가 “캄보디아에도 꽃 많던데”라고 받아치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주위에 망고나 잭푸릇 같은 과실수 외에도 생소하게 생긴 꽃송이를 매달고 향을 발산하는 꽃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❶ 프까 롬두얼(학명: Sphaerocoryne affinis)

 

8-12m의 나무에서 피는 롬두얼 꽃은 세 개의 황백색 꽃받침이 세 쪽의 꽃방울을 받치고 있다. 늦은 오후와 저녁에 매력적인 향을 발산해서 멀리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서 아로마 테라피 오일과 에센셜 오일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버찌처럼 생긴 열매는 식용이 가능해서 농가의 소득자원이 된다. 물론 자세히 봐야 피었는지 알 만큼 소박하고 단순해서 크고 화려한 꽃에 비하면 눈길을 끌지 못하지만 특유의 발랄함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듯하다. 롬두얼 꽃은 캄보디아 문학과 예술에서 아름다운 캄보디아 여성을 상징한다. 2005년에 노로돔 시하모니 현 국왕은 롬두얼 꽃을 캄보디아의 국화로 지정했다.

 

여러 해가 지났어도 가슴 속의 아픔은 여전하네

그날의 이야기는 흐릿해도 숨쉴 때마다 떠오르지

바탐방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는 꽃이 만발했었고

 

썽까에 강에서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고 환했어

조그맣고 둥근 뺨에 빛나던 눈과 싱그럽던 손,

흩날리던 검은 머리카락과 향기에 반해버렸지

 

어떤 화가도 세상에 그런 여자를 그려내지 못하리

오직 썽까에 강에 핀 롬두얼 꽃만이 그녀에 견주리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의 사랑을 잊을 수 없으리

 

꽃 피는 계절이 되어 가슴 속 아픔이 되살아나네

강한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듯 그녀는 떠나버렸고

마지막 편지는 내가 죽어도 무덤에서 함께 하리니

 

- 씬씨싸못(1933-1976), “썽까에 강의 롬두얼 꽃”

 

❷ 프까 쩜뻐이(학명: Plumeria 또는 Frangipani)

 

쩜뻐이 꽃은 주로 6m의 나무에서 피는 하얀색 꽃으로 가운데에 노란색 물감이 번진 것처럼 피어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서식하는 관목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기 캄보디아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논란은 있다. 주로 대로변과 관공서나 대학교, 사원 등에서 정원수로 흔하게 있다. 만개했을 때 특히 밤중에 사방에 진하고 달큰하게 꽃내음이 퍼질 만큼 강하다. 이러한 향기로 인해서 힌두교 및 불교 사원에서 신에게 바치는 용도로 쓰인다. 이밖에도 압사라춤 무용수의 머리 장식이나 행사의 목걸이, 화환 등에서 두루 사용된다.

캄보디아에서 전하는 전설에서 쩜뻐이 꽃나무는 연인을 잃은 슬픔으로 따라 죽은 여인의 화신이다. 그녀가 쩜뻐이 나무가 되어서 사랑하는 이의 무덤 위에 꽃송이를 떨어트리며 지킨다고 한다. 그래서 사원과 매장지에서 많이 발견되고 쩜뻐이 꽃은 ‘헌신적인 사랑이나 충성심’을 의미한다. 또한 나무의 밑둥치가 없이 한동안 방치해도 꽃을 피워내고 잎이 자라는 생명력으로 인해 ‘불멸’을 상징한다. 꽃잎이 4장이거나 6장이면 행운이 있을 거라는 속설도 전하니 길에 떨어진 것도 예사로 보지 말아야겠다. 쩜뻐이 꽃은 인접국 라오스의 국화이다.

❸ 프까 말리(학명: Arabian jasmine 또는 Jasminum sambac)

 

말리 꽃은 높이가 0.5~3m까지 자라는 작은 관목 또는 덩굴에서 피며 열대 아시아에서 재배되는 하얀색 자스민 종이다. 매력적이고 달콤한 향이 나서 향수와 자스민 차의 향기 성분으로 사용된다. 꽃잎은 저녁 6-8시쯤 별처럼 개화하고 아침부터 12-20시간 동안 다물고 있다. 사원 근처나 길거리를 운전하다가 꽃봉오리로 만든 제품 판매상을 만날 수 있다. 개화하기 전의 어린 꽃송이를 꼬지로 꿰거나 실로 이은 장식물이나 목걸이를 사원에 진상하거나 차량 방향제 등으로 소비한다. ‘신의 선물’이라는 어원답게 불교 행사나 압사라춤 공연에서 스님이나 무용수가 물에 적신 말리 꽃송이를 중생들에게 듬뿍 뿌리는 용도로도 쓰인다.

▲ 쩜뻐이 꽃으로 귀를 장식하고 왼쪽 손목에는 말리 꽃팔찌를 한 압사라춤 무용수. 참고로 쩜뻐이 꽃을 오른쪽 귀에 장식하면 미혼, 왼쪽 귀에 장식하면 기혼임을 표시

 

 

글 이영심

왕립프놈펜대학교 한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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