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들은 더 많은 팁을 받기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베트남 택시기사들은 이러한 ‘팁’에 대한 영업능력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탁월한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한 후 내가 탄 택시가 숙소 근처에 도착할 때쯤 택시기사는 나에게 팁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20만 동의 요금이 나오는 거리를 빨리 가주는 조건으로 이미 30만 동을 지급한 상태. 그런데도 택시기사는 어려운 처지의 가족들 얘기까지 곁들여가며 집요하게 추가 팁을 요구했다. 나는 아주 단호하게 거절하고 가방과 짐을 챙겨서 내렸다. 나는 이 일로 앞으로 베트남에서 살면서 어떻게 택시기사를 다루어야 할 것인가를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숙소이자 근무할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베트남 호치민 7군에 있는 <라이프플라자>라는 교민잡지사에서 근무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날아왔던 것이다. 생활하게 될 숙소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쾌적했다. 짐을 다 풀고 정리를 끝낸 후 식사를 위해 푸미흥의 번화가로 향했다. 푸미흥은 한국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복잡했다. 그 복잡한 푸미흥에 많은 한국인들과 베트남인들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몹시 이질적이면서도 어딘가 조화로워 보였다.
푸미흥에 대한 첫인상을 뒤로 한 채 기숙사로 복귀해 잠이 든 나는 쌀쌀한 기운을 느끼며 잠을 깼다. 2시간의 짧은 시차 덕분인지 여행의 피로에도 컨디션은 괜찮았다. 호치민에서 처음 맞은 아침은 생각보다 무척 시원했다. 이 상쾌한 날씨가 호치민에서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 산책 겸 식사를 위하여 나선 길에서 만난 베트남 동료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주의점을 알려주었다. 베트남에서는 휴대폰을 잘 관리해서 분실하지 않게 늘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을 강조해서 얘기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약 7년 전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황망하게 휴대폰을 도둑 맞은 사건이 생각났다. 그 후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지갑과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잠시 그때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조그마한 손가방을 챙겨 푸미흥 거리로 나섰다. 간단한 식사거리를 찾던 나는 베트남 편의점을 발견하곤 호기심에 들어가 살펴보았다. 인근 국가인 태국 편의점에서 흥미로운 것을 많이 봤던 터라 내심 기대가 컸다. 그러나 예상 밖의 형편 없는 구성에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 잔뜩 실망한 나는 밖으로 나와 길가 노점상에서 파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편의점에 가졌던 실망은 단숨에 사라졌다. 맛과 향이 강한 커피. 오랜만에 느끼는 맛이었다. 진한 향과 씁쓸한 뒷맛 담백한 맛까지 완벽했다. 단맛이 전혀 없고 불필요한 잡내 또한 없어 한국의 비싸고 맛없는 커피와 비교가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프랑스 식민시대 때문에 로스팅 기술이 발달한 것인가? 아니면 더운 날씨 때문에 맛있다고 느껴지는 것인가?’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으로, 베트남 커피의 역사는 19세기 프랑스의 주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7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베트남에 처음 커피나무가 들어왔고 당시 그 희소성으로 인해 프랑스인들과 당시 베트남의 왕조였던 응웬 가문(Nhà Nguyễn)의 일원들밖에 맛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일반 서민은 물론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에서조차 커피는 맛보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는데 이들이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는 족제비의 배설물에 남겨진 커피 원두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족제비의 배설물에서 찾아낸 커피를 맛본 이들은 그것의 맛과 향이 감미롭고 씁쓸함도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족제비들이 좋은 원두를 고르는 능력까지 갖추었음이 알려진 뒤 족제비가 선별해 섭취하고 배설한 커피 원두는 최상급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한참 커피를 맛보며 스마트폰으로 한참 베트남 역사를 찾아보던 순간 빗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배가 고파진 나는 온라인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방문했다. 메뉴판을 보며 몰라 꽃게 그림이 그려진 ‘bánh canh ghẹ’란 국수와 한국에서 접했던 월남쌈을 생각하고 ‘gỏi cuốn’란 메뉴를 주문했다.
국물을 맛 보는 순간 훅 들어온 고수 향에 포기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베트남에 왔으니 이 나라 음식을 경험해보자 다짐하고 국수와 게살을 한입 더 입에 넣었다. 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퍼지는 고수향 때문에 몸서리가 쳐졌다. 쌈을 한입 베어 문 순간, 쌈 안의 고수 향이 발끝까지 전해졌다. 난 바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음식에서 고수를 제거해달라는 말을 번역기로 찾아봤다. 이렇게 베트남어를 하나 더 익혔다.
출근 전 다사다난했던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첫 출근을 하게 됐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간단한 면담을 한 후 인수인계와 교육을 받게 되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한 남성이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바로 함께 동고동락하며 생활하게 된 ‘미스터 박’이었다. 그는 검게 그을린 피부에 약간은 느린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어색해하는 그에게서 뭔가 순하고 사람 냄새가 느껴졌다. 서로 통성명을 한 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베트남에서 1년동안 거주하며 여러 가지를 경험해 봤다고 했다. 그의 자신 있는 말투에서 왠지 모를 든든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라이프플라자의 첫 번째 멤버이자 나의 룸메이트와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