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안주인, 즉 노이뜨응 (Noi Tuong- 이 단어는 베트남 국어사전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으로 통하는 베트남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조그만 왕국에서 실제로 수많은 무소불위 (?)의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흔히 베트남 남성들로부터 가정의 여황제 (Nu Hoang)이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한 가정의 주인, 쭈야딘 (Chu Gia Dinh)이라는 이름은 허울만 좋을 뿐 실질적인 권한은 거의 모두 아내가 독차지하고 있는 셈. 쭈야딘은 노이뜨응과 모든 일을 일일이 상의하고 사전에 허락을 맡아야 할 정도다. 하지만 베트남 남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결코 불만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없다. 오히려 여성들은 자신의 남편들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심지어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자 하나가 남자 둘보다 낫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로 베트남 여성들이 가정 내 실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까. 베트남 학자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약소국가였던 베트남은 수천 년간 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남편들이 전쟁터에 나가버리면 결국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문제 등을 비롯한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아내들이 도맡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녀들은 남편들이 병신이나 불구의 몸이 되어 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도 기꺼이 남편을 돌보기까지 했다. 이런 베트남의 독특한 사회현실을 고려할 때 어떻게 부녀자들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여성들이 집안에서 실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데는 그 역사가 수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민족이 베트남 땅으로 무자비하게 침략해 들어오던 그 옛날 하이바쯩 (Hai Ba Trung, 여기서 ‘하이’는 둘, ‘바쯩’이란 쯩 부인 란 뜻) 자매는 베트남 민족 최초의 여장군으로서 도탄에 빠진 나라를 살려내고 민심을 수습하여 하나로 묶은 전설적인 인물로 서기 39년, 베트남 민족의 여황제로 등극하기가지 했다.
그 외에도 바찌우 (ba Trieu, 찌우 부인), 바부이티쑤언 (ba Bui Thi Xuan, 부이티쑤언 부인), 윙티양 (Nguyen Thi Giang), 호쑤언흥 (Ho Xuzn Huong), 도안티디임 (Doan Thi Diem) 등 나라를 건국하던 초창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타고난 각자의 영웅적 기질과 희생정신, 그리고 탁월한 재능으로 베트남을 이끌어온 여성들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그 옛날 쩡 (Tran) 왕조 시절에는 (1225~1400) 공주들이 세금을 거두고 장군으로 전투에 참여하는 등 그 활약이 대단했다. 또한 13세기에 편찬된 홍득 (Hong Duc)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한 법전으로도 유명하다. 이 정도의 내용이라면 여성의 동등권을 인정하는 지금의 서구 현대법전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 (베트남 여성들은 가정을 이룰 때도 결코 남성의 성을 따르지 않는다.)
‘남존여비’, 물러가라! 남녀평등이란 면에서 본다면 베트남은 동아시아 각국과 비교해볼 때 상당히 독특한 면이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오면서 남존여비 (Trong Nam Khinh Nu) 사상이 베트남 사회문화에 깊이 침투해 들어와 여성의 사회생활을 제한하고 그들을 남성보다 못한 열등한 존재로 비하하는 이런 사상이 아직도 저변에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 한계요소들을 뛰어 넘어 베트남이 지금과 같은 남녀평등을 실현할 수 있게 된 주원인 세 가지는
a) 전통적인 남녀 평등사상, b)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모든 가정의 대소사를 여성들이 떠맡아야 했던 시대적 배경 c) 애국애민, 희생정신, 용맹성 등 베트남 여성들의 선천적인 기본 성품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여성들은 현재도 교육을 비롯하여 의학, 자선, 예술, 체육, 학문, 무역, 심지어 군사 영역 등에서 눈부신 활약상을 통해 각종 편견과 차별을 극복해나가며 자신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나가고 있다. 이런 상태라면 조만간 베트남이 남녀평등을 가장 먼저 이룩했다는 서구 여러 나라들을 능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여성상위국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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