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단신
최근들어 이혼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있지만 55세 이상의 황혼이혼과 결혼 4년이하 신혼부부들의 이혼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18일 발표한 '2006년 이혼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이혼한 부부는 12만5천쌍으로 하루 평균 342쌍의 부부가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천명당 이혼건수인 조이혼율은 2.6으로 전년과 같고 배우자가 있는 사람 1천명당 이혼건수인 유배우 이혼율은 5.3건으로 부부 100쌍당 1.06쌍이 이혼한 셈이다.
이는 2005년보다는 이혼건수는 2.7% 줄어든 것으로 지난 2003년까지 지속되던 이혼 증가세가 배우자가 있는 연령층의 감소와 이혼숙려기간 시범도입 등으로 2004년부터는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연령별로는 남성의 경우 30~40대(73.4%), 여성은 30대(41.4%)가 가장 많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5세 이상 연령층의 이혼 증가율이 지난해 남성이 7.8%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면서 10년 사이 3.5배나 증가했고 여성도 10년 전보다 5.1배나 늘어나는 등 황혼이혼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에따라 20년이상 동거부부의 이혼이 전체 이혼의 5분의 1(19.2%)을 차지했다. 또 결혼 4년이하 신혼부부의 이혼도 늘어나 전체 이혼의 26.5%를 차지했다. 신혼부부의 이혼은 그동안 감소세를 보여왔지만 지난 2004년 이후 외국인, 특히 베트남 처와의 이혼이 급증하며 다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인과 외국인 부부의 이혼은 지난해 6,280건으로 1년 사이 46.8%나 급증하면서 전체 이혼의 5%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결혼 4년 이내의 이혼비중이 80%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고, 특히 한국인 남편과 베트남 처와의 이혼이 111%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혼 부부의 평균 동거기간은 11.4년으로 10년 전보다 1.8년이 늘어났다. 또 평균 이혼연령은 남자 42.6세, 여자 39.3세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이혼사유로는 성격차이가 49.7%, 경제문제 14.6% 순으로 전체 이혼의 64.3%를 차지했고 이혼종류는 협의이혼 86.7%, 재판이혼이 13.1%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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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인 기업인 A씨는 최근 운전중 접촉사고를 당했다. 가해자인 베트남인은 차에서 나와 웃음을 지으며 말을 했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A씨는 사고를 당한 것도 화가 나는데 가해자가 차에서 나와 웃음을 짓자 더더욱 화가 났다.
A씨는 나중에 가해자의 웃음이 미안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말을 현지인으로부터 듣고서야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인구 8400만명으로 아시아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그들과의 상거래에서 웃음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코트라(KOTRA)는 22일 베트남에서 우리 기업인이 사업할 때 유의해야 할 요령을 소개했다.
코트라는 베트남인이 당황스러운 상황이나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웃음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즉 베트남 바이어들이 한국 기업인의 설명을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경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함에도 그렇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베트남 바이어가 웃음을 지을 경우엔 반드시 내용을 확인하고 의사전달이 명확히 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베트남에서 당하는 무역사기의 90%이상이 외상거래와 언더밸류(계약서상 가격 다운거래)에 있는 만큼 이같은 관행을 피해야 한다고 코트라는 덧붙였다.
한국의 B사는 베트남 바이어와 중고자동차 계약을 체결했다. 수입관세 절감을 위해 베트남 바이어가 요청한 대로 실제 계약금액의 50%는 전신환송금(T/T)또는 신용장(L/C)으로, 나머지는 제품을 모두 인도한 뒤 현금으로 받기로 했다.
하지만 이 베트남 바이어는 거래 대금의 50%만 준 뒤 “제품이 아직 판매되지 않았다”,“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대금지급을 계속 미뤘다. 결국 B사는 베트남을 방문,법적인 해결을 모색했지만 언더밸류 거래 자체가 베트남 무역법 및 관세법을 위반한 사안이라 전혀 보호 받을 수 없었다.
코트라는 이밖에도 베트남 기업과 거래에서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외국인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많은 만큼 계약서,노동계약서,내규,협약서 등 무역 및 투자부문의 모든 부분에서 문서화를 해둘 것을 권고했다. 또 베트남 국내법과 각종 법률자료 등은 항상 수집하고 번역해 놓을 것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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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총국,호텔 등 관광인프라 절대부족 베트남을 찾는 관광객들이 해마다 늘고있으 나 한번 방문한 관광객은 다시 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관광총국은 최근 호찌민에서 있은 `국제관광객 유치방안`이란 주제의 자 체회의에서 관광객의 85% 이상이 베트남을 다시 찾지않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 다.
관광총국은 이 회의에서 2010년 관광객 600만명을 목표로 하고있지만 현재와 같 은 추세로는 목표달성이 어렵다고 보고 획기적인 관광자원 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관 계기관에 지시했다.
관계자들은 관광객들이 베트남을 다시 찾지않는 이유로는 호텔 구하기가 어렵고 특별히 내놓을만한 관광상품이 없으며 교통이 불편해 이동거리가 먼 것 등을 지적했다.
베트남은 지난 1990년대 말 동아시아에 불어닥친 국제금융 위기로 인해 호텔 등 에 대한 투자를 중단해 관광객이 묵을 만한 일급호텔 이상이 손에 꼽을 정도다.
더구나 최근들어 경제활성화로 전세계의 비즈니스 맨들이 몰려들자 관광객들은 장급 호텔도 구하기가 어려워 지저분한 변두리 호텔이나 여관으로 밀려나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또 도로망은 제대로 갖춰지지않아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를 가는데만 3시간에서 3 시간30분이 걸리는 등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않았다.
또 하노이에는 하롱베이를 보고나면 마땅히 다른 볼 장소가 없어 관광객들은 아 예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로 떠난다.
이러한 현상은 남부 경제대도시 호찌민도 마찬가지. 메콩델타를 잠깐 구경하고 구찌터널을 보고나면 끝이다.
이에따라 관광총국은 현재 예정돼있는 특급호텔의 신축을 가급적 앞당기는 등 관광 인프라 개발에 치중하도록 종용하고있다.
2010년 정도 1천년을 맞는 하노이의 경우는 올들어 한국업체를 포함해 10여개의 호텔이 인가를 받아 준비중에 있는데 늦어도 2009년 하반기까지 완공하는 것이 조건으로 되어있다.
베트남 정부는 신축호텔만을 기다릴 수가 없어 소규모 호텔들을 리모델링해서 관광객을 유치하도록 하는 등 비상대책도 마련하고있다.
회의 참가자들은 또 정부가 확실한 관광 마스터플랜을 마련해 과감한 투자를 해 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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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경찰이 최근 불법 또는 편법 영업을 하고있는 한국 가이드들의 여권을 압수하는 등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대사 김의기)과 현지 업계에 따르면 최근 베트남 경찰은 편법 영업을 하고 있는 한국 여행가이드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출국을 종용하고있으며 서울에 본사를 두고 현지에서 사무소를 운영하고있는 기업과 개인 영업자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영업 여부를 조사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대사관은 최근 하노이 한인회가 주최한 ’한인 발전을 위한 포럼’에서 오는 20일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경찰의 사회기강 확립을 위한 각종 조치가 예상되니 주의해 줄것을 당부했었다.
베트남 경찰은 이미 1-2개월 전부터 500명 내외로 추정되는 한국 관광 가이드들을 타깃으로 집중 단속을 시작했는데 150여명의 가이드들이 단속에 걸려 여권을 압수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에서는 원칙적으로 베트남인 가이드들만이 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나 최근 베트남 붐을 타고 관광객이 늘어나고 한국말을 제대로 하는 베트남 가이드가 많지않아 500명에 이르는 한국 여행가이드들이 인근 국가에서 몰려들어 편법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단속이 강화되자 일부 가이드들은 아예 베트남을 떠났고 일부는 직접 나서지 않고 베트남 가이드를 내세워 영업을 하고있다.
경찰은 또 현지에서 개인 영업을 하거나 본사를 한국에 두고 현지에서 사무소를 운영하는 기업에 대해서도 탈세 여부와 규정준수 여부를 조사하는 등 단속을 하고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하노이에서 사무소를 운영하고있는 일부 한국기업들이 베트남 경찰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경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현지업체의 이름을 빌어 편법으로 잡지를 발간해 공익 목적이 아닌 영업행위를 하는 업체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공안은 마약과 매춘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베트남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나이트클럽 뉴센츄리를 급습해 1천여명을 연행하는가 하면 포튜나호텔 가라오케 등 하노이의 대표적인 매춘업소들까지 단속을 강화하고있다.
뉴센츄리의 단속에서는 절반이 넘는 인원이 마약을 하고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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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를 끌고있는 베트남 관광에 빨간 불이 켜졌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인 관광안내원에 대한 집중단속을 펼치고 있어서 안내원도 없이 관광을 해야할 지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밤 늦은 시간 하노이 국제공항, 한국에서 오는 여객기가 도착할 시간이지만 한국인 관광안내원들이 공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차장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베트남 경찰의 단속 때문이다. 베트남에서는 규정상 현지인만 관광안내원을 할 수 있게 있다.
단속 때문에 공항에 못나가고 이동중에 차에 올라타 관광객들을 만나거나 하고있는 실정이다. 베트남 당국은 지난 4월 부터 한국인 관광안내원들에 대한 집중단속에 나서 지금까지 약 2백명의 여권을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한국 관광객들은 낯 선 베트남에 도착해서 한국인 안내원도 없이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있다. 베트남 당국의 이번 단속은 사실 우리 여행업계가 자초한 것이기도 한다.
베트남이 새로운 인기관광지로 떠오르면서 한꺼번에 몰려든 우리 여행사들이 고질적인 문제를 그대로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과열경쟁을 벌이면서 일부 여행사들은 덤핑으로 관광객을 유치한 뒤 바가지를 씌우거나 심지어는 매춘까지 알선하다 베트남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한국업체의 무분별한 과열경쟁은 결국 베트남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기 때문 일부 허가업체를 대상으로 자격증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재 베트남에는 백 여개의 한국 여행사가 난립해있지만 베트남 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업체는 두 군데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 여행업계의 무분별한 행태가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은데다 나라 망신까지 시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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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이른바 '섹스관광'을 한 혐의로 한국관광객이 또다시 적발됐다.
베트남 현지 언론들은 최근 하롱베이 관광에 나선 한국 관광객 8명이 관광 안내인들의 소개로 한국 유흥주점에 들른 뒤, 여자 종업원들과 인근 호텔에 들렀다가 단속 경찰에 적발됐다고 보도했다.
이들 관광객들은 상당액의 벌금을 물고 추방 형식으로 석방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유흥주점 관리인은 현재 관할 경찰서에 구금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유흥주점이 안내인들과 짜고 한국 관광객들을 받아들여 상습적으로 '섹스관광'을 해 온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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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빅뱅 한국어과 졸업생 단연 최고
베트남에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한국어 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영어, 일어보다도 인기가 높다. 한국어과 경쟁률은 영어, 일어의 1.5~2배 정도 된다.
영어, 일어를 전공하고 졸업한 대학생들은 월 150~200달러를 받는다. 한국어 전공자가 한국 기업에 들어가면 보통 월급이 300~400달러다. 통역 등으로 최고 1000달러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보통 공장 노동자 월급이 50~100달러니까 상당한 금액이다.
10년 전과 영 딴판이다. 현재 일선에서 한참 활동하고 있는 한국어과 출신들은 1990년대 후반 학번이다. 이들이 '한국어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한국어과가 처음 개설됐을 때는 정원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1996년에 호찌민대학 한국어과 2기생으로 입학한 응웬 땅 끄엉씨(32)는 "집이 가난해서 장학금을 많이 준다는 말에 한국어과에 갔다"며 "당시에는 주위에서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선망의 대상이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한국어 열풍은 절대적인 공급 부족 때문이다. 영어, 일어는 오랫동안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어 인력 공급이 충분했지만 한국어 교육과정이 처음 생긴 것은 기껏해야 10여년전이다.
최근 호찌민과 하노이에는 사설 한국어학원도 생겼다. 호찌민대학은 한국어과 정원을 60명에서 120명으로 늘렸다.
한류 열풍도 인기요인 중 하나다. 한국 제품이 고급으로 인식돼 있고, '대장금' '풀하우스' 등 드라마와 한국영화들도 베트남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올초에는 가수 '비'가 베트남 현지 공연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한국어 열풍이 불면서 베트남의 한국어 특수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베트남에서 만난 두 사람을 소개한다.
◇ 응웬 땅 끄엉. 1976년생, 32세.=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중부지방 퀸휀 출신이다. 형 6명, 누나 2명인 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1996년 호찌민대학 한국어학과에 입학했다. 삼성의 베트남 현지법인인 '삼성 비나', 코오롱에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녔다. 베트남에서는 법대나 의대보다 외국어 관련 학과가 인기가 높다. 변호사, 의사 등의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대학교 같은 과에서 현재 아내를 만나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그는 유학원을 운영한다. 매년 수십명의 베트남 학생들을 한국으로 유학보낸다. 지난해에는 80명을 보냈다. 아내는 한국 관련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다.
가끔 한국 관련 통역 일을 하는 게 큰 수입원이다. 하루에 100달러 정도를 받는다. 지난해에는 호찌민 근처의 동나이성과 경상남도의 자매결연 행사 때문에 통역으로 부산에 다녀오기도 했다.
대학 친구나 선후배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다. "우선 한국 기업에 들어가서 3~4년 동안 돈을 모으면 개인 사업을 한다"고 했다. 무역을 많이 하고, 유학원 여행사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베트남은 아직 사업 기회가 많아 대부분 성공한다. 한국어과 졸업생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정보를 나누며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끄엉 씨는 "돈을 벌면, 열심히 모아서 부동산 투자를 한다"며 "사회생활 4~5년 동안 4000달러 정도를 모아 탄손낫 공항으로 가는 길 근처에 땅을 샀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인에 대한 거부감은 없을까. 그는 "한국 사람들이 돈 벌기 위해 미국에 떠밀려 참전한 것을 알고 있다"며 "베트남이 승리한 전쟁이기 때문에 다 용서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끄엉 씨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다"고 덧붙였다. 끄엉 씨는 오는 9월 한국에 유학을 갈 예정이다.
000씨. 27세, 부산외국어대 베트남어학과 2001학번.= 현재 하노이 교육대 문학과 교환학생 자격으로 베트남에 왔다. 베트남 생활 2년째, 베트남어에 능숙하다.
이 씨는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이나 무역진흥공사(KOTRA) 하노이 무역관, 또는 한국업체들이 참가하는 행사에서 통역 일을 많이 한다. 한달에 4~5회, 약 15일 정도를 일한다. 통역 일을 했다는 공문을 받아가면 수업에 출석한 것으로 처리해 준다.
통역 일로만 한달에 1500~2000달러 정도를 번다. "하노이에서 월 수입 상위 10%에 들어갈 것"이라고 자랑이다. 집세를 포함해 생활비로 한달에 500~600달러를 쓴다. 나머지는 저축한다. 향후 베트남에서 개인사업을 하기 위한 자금이다. "스티커 사진처럼 한국에서는 한물 갔지만 베트남에서는 얼마든지 돈되는 사업이 널려 있다"고 말한다.
돈도 벌고, 대학도 다니고, 통역 경험도 쌓고, 향후 사업 계획도 세우고... 1석4조다.
그에게는 한국 기업들의 진출 양상이 바뀌어 가는 게 눈에 보인다. 예전에는 섬유, 봉제, 자동차부품, 건설 등과 중소기업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대기업도 많아졌고 정보기술(IT), 게임, 농기계 쪽으로 분야가 다양해졌다. "며칠 전에는 농기계 조합에서 한국 농기계를 시연, 소개만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거래가 되더라"며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씨는 베트남에서 한국어의 위상에 대해 "베트남어를 하는 한국인이 드물고, 한국어를 하는 베트남인도 별로 없다"며 "절대적으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에 베트남 친구가 한국으로의 국비 유학생 선발에 지원했다"며 "베트남 전체에서 1~2명 뽑는데 그 친구가 너무 한국어를 잘 해서 '넌 되겠다' 했더니 '한국어 교사까지 지원했다'면서 낙담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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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이 순조롭게 통과될 경우 2008년부터 외국인도 부동산을 소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 이 정책이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어느 정도 기여할 촉진책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상태
최근 건설부가 정부에 제안한 외국인 주택구매 허용 정책 (2008년 경부터 실시 예정)과 그들로 하여금 부동산영업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상당수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을 통해 베트남에 새로운 부동산 붐이 일어날 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먼저 현재 베트남에 투자하고 있는 81.000명의 외국인 가운데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단지 21,000명만 주택을 구매할 조건을 갖추었을 뿐인데다 실제로 주택을 구매할 수 있기 위해 정부가 내건 조건과 세부사항들이 상당히 까다롭다.
윙만하 (Nguyen Manh Ha) 건설부 주택관리국 실장은 이와 관련하여 “이는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은 상황에서 투기를 억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방책”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또한 CBRE의 Richard Leech 회장 역시 “예전에 베트남 교포들에게 주택구입을 허용할 때도 관련문서, 안내서, 통지 등과 관련된 실질적인 시행세칙 마련이 지체되어 실제 구매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예로 2006년 7월 1일 발동된 주택법은 베트남 교포 들의 주택소유를 허용하고 있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실재로 그 혜택을 본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또한 지난 2001년에도 정부는 시행령 80조를 발동 하여 베트남 교포들의 주택소유를 허락했지만 이후 6년 새에 100명 이하만 그 혜택을 보았다. 당시도 전문가들은 이 법안으로 인해 10만명 이상이 부동산을 구매할 것이고 그에 따른 부동산 시장규모는 100억$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 외에 아직 베트남 주택법, 토지법 등이 외국인의 부동산 소유를 허락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관계규정을 개정하기 위해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사안이 복잡하다. 따라서 이모든 점들을 고려해 볼 때 비록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택 소유욕구가 아무리 높다 해도 그것이 짧은 시일 내에 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붐을 몰고 올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 보통 쓸만한 주택 20-30만불짜리를 사려면 아무리 외국인이라도 은행융자가 원활하지 않고서 는 힘들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최신 주택관리국자료에 의하면 현재 하노이에는 1,300세대 (220,000sq.m)의 임대주택군이 호앙낌, 따이호 , 바딘 군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호찌민 시의 경우도 약 4천여 세대 (660,000sq.m)가 푸미흥 과 1,2,3,5군, 그리고 푸뉴언 군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은 고급 아파트나 단독주택을 선호 하며 가격은 위치와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하노이는 평균 700-1,000$ / (1개월)선이고 호찌민 시의 경우 는1,000-15,00$ / (1개월)수준이다
*******호치민 역사
Original Khmer name
The city was known by its original Khmer inhabitants as Prey Nokor (). Prey Nokor means "forest city", or "forest land" in Khmer (Prey = "forest"; Nokor = "city, land", from Sanskrit nagara). The name Prey Nokor is still the name used in Cambodia today, as well as the name used by the Khmer Krom minority living in the delta of the Mekong.
Traditional Vietnamese name
After Prey Nokor was settled by Vietnamese refugees from the north, in time it became known as Sài Gòn. There is much debate about the origins of the Vietnamese name Sài Gòn, whose etymology is analyzed below.
It should be noted, however, that before the French colonization, the official Vietnamese name of Saigon was Gia Định (chu nom: 嘉定). In 1862, the French discarded this official name and adopted the name "Saigon", which had always been the popular name.
From an orthographic point of view, the Vietnamese name Sài Gòn is written in two words, which is the traditional convention in Vietnamese spelling. Some people, however, write the name of the city as SàiGòn or Sàigòn in order to save space or give it a more westernized look.
Sino-Vietnamese etymology
A frequently heard etymology is that Sài is a Chinese loan word (Chinese: 柴, pronounced chái in Mandarin) meaning "firewood, lops, twigs; palisade", while Gòn is another Chinese loan word (Chinese: 棍, pronounced gùn in Mandarin) meaning "stick, pole, bole", and whose meaning evolved into "cotton" in Vietnamese (bông gòn, literally "cotton stick", i.e. "cotton plant", then shortened to gòn).
Some people say that this name originated from the many cotton plants that the Khmer people had planted around Prey Nokor, and which can still be seen at Cây Mai temple and surrounding areas.[1]
Another explanation is that the etymological meaning "twigs" (sài) and "boles" (gòn) refers to the dense and tall forest that onc��e existed around the city, a forest to which the Khmer name Prey Nokor already referred.
Chinese people in Vietnam and in China do not use the name 柴棍; (pronounced Chaai-Gwan in Cantonese and Cháigùn in Mandarin), although etymologically speaking it is the Chinese name from which the Vietnamese name Sài Gòn is derived (if the theory here is correct). Instead, they call the city 西貢; (pronounced Sai-Gung in Cantonese and Xīgòng in Mandarin), which is a mere phonetic transliteration of the name "Saigon."
Khmer etymology
Another etymology often proposed is that "Saigon" comes from "Sai Con", which would be the transliteration of the Khmer word prey kor () meaning "forest of kapok trees" (prey = forest; kor = kapok tree). The Khmer word prey kor should not be confused with the Khmer name "Prey Nokor" discussed above (kor is a Khmer word meaning "kapok tree", while nokor is a Khmer word of Sanskrit origin meaning "city, land").
This Khmer etymology theory is quite interesting given the Khmer context that existed when the first Vietnamese settlers arrived in the region. However, it fails to completely explain how Khmer "prey" led to Vietnamese "Sài", since these two syllables appear phonetically quite distinct.
Cantonese etymology
A less likely etymology was offered by Vunng Hung Son, a Vietnamese scholar in the early 20th century, who asserted that Sài Gòn had its origins in the Cantonese name of Cholon (Vietnamese: quoc ngu Cho Lon; chu nom ) , the Chinese district of Saigon. The Cantonese (and original) name of Cholon is "Tai-Ngon" (堤岸), which means "embankment" (French: quais). The theory posits that "Sài Gòn" derives from "Tai-Ngon".
Current Vietnamese name
On May 1, 1975, after the fall of South Vietnam, the now ruling communist government renamed the city after the alias of their leader Ho Chi Minh (chu nom: 胡志明). The official name is now Thành phu HoChí Minh (Thành phu means "city"), often abbreviated TPHCM. In English this is translated as Ho Chi Minh City, abbreviated HCMC, and in French it is translated as Hô Chi Minh Ville (the circumflex is sometimes omitted), abbreviated HCMV. Still, the old name Sài Gòn/Saigon is widely used by Vietnamese and is found in company names, book titles and sometimes on airport departure boards (the code for Tan Son Nhat International Airport is SGN). The district 1 (downtown) is still called Saigon.
History
Ho Chi Minh City began as a small fishing village known as Prey Nokor. The area that the city now occupies was originally swampland, and was inhabited by Khmer people for centuries before the arrival of the Vietnamese.
In 1623, King Chey Chettha II of Cambodia (1618-1628) allowed Vietnamese refugees fleeing the Trinh-Nguyen civil war in Vietnam to settle in the area of Prey Nokor, and to set up a custom house at Prey Nokor. Increasing waves of Vietnamese settlers, which the Cambodian kingdom, weakened because of war with Thailand, could not impede, slowly Vietnamized the area. In time, Prey Nokor became known as Saigon.
In 1698, Nguyen Huu Canh, a Vietnamese noble, was sent by the Nguyen rulers of Hue to establish Vietnamese administrative structures in the area, thus detaching the area from Cambodia, which was not strong enough to intervene. He is often credited with the expansion of Saigon into a significant settlement. A large Vauban citadel called Gia Dinh has been built, which was later destroyed by the French over the Battle of Chi Hoa.
Conquered by France in 1859, the city was influenced by the French during their colonial occupation of Vietnam, and a number of classical Western-style buildings in the city reflect this, so much so that Saigon was called "the Pearl of the Far East" (Hòn ngoc Vihn Đông) or "Paris in the Orient" (Paris Phoung Đông).
In 1954, the French were defeated by the Communist Viet Minh in the Battle of Đihn Biên Phu, and withdrew from Vietnam. Rather than recognizing the Communists as the new government, they gave their backing to a government established by Emperor Bao Đi. Bao Đi had set up Saigon as his capital in 1950. At that time Saigon and the city of Cholon (Cho Lon), which was inhabited primarily by Vietnamese Chinese, were combined into one�� administrative unit, called the Capital of Saigon (Đô Thành Sài Gòn in Vietnamese). When Vietnam was officially partitioned into North Vietnam (the 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 and South Vietnam (the Republic of Vietnam), the southern government, led by President Ngô Đình Dim, retained Saigon as its capital.
At the conclusion of the American War/Vietnam War, on April 30, 1975, the city came under the control of the Vietnam People's Army. In the U.S. this event is commonly called the "Fall of Saigon," while the communist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call it the "Liberation of Saigon."
In 1976, upon the establishment of the unified communist Socialist Republic of Vietnam, the city of Saigon (including Cholon), the province of Gia Ðinh and 2 suburban districts of two other nearby provinces were combined to create Ho Chí Minh City in honour of the late communist leader HoChí Minh. The former name Saigon is still widely used by many Vietnamese, especially in informal contexts. Generally, the term Saigon refers onl��y to the urban districts of Ho Chí Minh City. The word "Saigon" can also be found on shop signs all over the country, even in Hanoi.
Today, the city's core is still adorned with wide elegant boulevards and historic French colonial buildings. The most prominent structures in the city center are Reunification Hall (Dinh Thing Nhat), City Hall (Uy ban Nhan dan Thanh pho), City Theater (Nha hat Thanh pho), City Post Office (Buu dien Thanh pho), Revolutionary Museum (Bao tang Cach mang), State Bank Office (Ngan hang Nha nuoc), City People's Court (Toa an Nhan dan Thanh pho) and Notre-Dame Cathedral (Nhà the Đoc Bà).
Ho Chi Minh City is home to a well-established ethnic Chinese population. Cholon, now known as District 5 and the parts of Districts 6, 10 and 11, serves as its Chinatown.
With a population now exceeding 7 million (registered residents plus migrant workers), Ho Chi Minh City is in need of vast increase in public infrastructure. To meet this need, the city and central governments have embarked on an effort to develop new urban centers. The two most prominent projects are the Thu Thiem city center in District 2 and the Phu My Hung New City Center in District 7 (as part of the Saigon South project) where various international schools such as Saigon South International (The American School), the Japanese school, Australia's 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the Taiwan and Korea schools are located).
Geography and climate
Ho Chi Minh City is located at 10°45'N, 106°40'E in the southeastern region of Vietnam, 1,760 km (1,094 miles) south of Hanoi. The average elevation is 19 meters (63 feet) above sea level. It borders Tay Ninh and Binh Duong provinces to the north, Dong Nai and Ba Ria-Vung Tau provinces to the east, Long An Province to the west and the South China Sea to the south with a coast of 15 km in length. The city covers an area of 2,095 km² (809 sq mi) (0.63% of the surface of Vietnam), extending up to Cu Chi (12mi/20 km from the Cambodian border), and down to Can Gio on the East Sea coast. The distance from the northernmost point (Phu My Hung Commune, Cu Chi District) to the southernmost one�� (Long Hoa Commune, Can Gio District) is 102 kilometers (63 mi), and from the easternmost point (Long Binh Ward, District Nine) to the westernmost one�� (Binh Chanh Commune, Binh Chanh District) is 47 kilometers (29 mi).
The city has a tropical climate, with an average humidity of 75%. A year is divided into 2 distinct seasons: The rainy season with an average rainfall of about 1,800 millimetres (71 in) annually (about 150 rainy days per year), which usually begins in May and ends in late November. The dry season lasts from December to April. The average temperature is 28 °C (82 °F), the highest temperature sometimes reaches 39 °C (102 °F) around noon in late April, while the lowest may fall below 16 °C (61 °F) in the early mornings of late December.
Political and administrative system
Reunification Palace
Ho Chi Minh City HallHy Chí Minh City is a municipality that exists at the same level as Vietnam's provinces. As such, it has a similar political structure to its provinces, with a People's Council of 95 elected deputies, and a People's Committee of 13 members chosen by the council, being the principal local governmental entities. The People's Council Chairman is the top governmental official while the People's Committee Chairman is the top executive of the city, instead of a single mayor position as in other cities in the world. The Communist Party of Vietnam (CPV) leads all political-economic-social activities in the country, therefore the CPV HCMC Committee Secretary is really the highest ranking leader of the city.
The municipality has been divided into twenty-four administrative divisions since December 2003. Five of these {Area: 1,601 km²} are designated as suburban districts ("Huyun" in Vietnamese), covering the urbanized - farmland around the city which is included in the municipality's official boundaries. These districts are named Nhà Bè, Con Gia, Hóc Môn, Cu Chi, and Bình Chánh. The remaining nineteen divisions {Area: 494 km²} are found in the city itself. Onl��y seven of these nineteen inner districts ("Qunon" in Vietnamese) have names (Tân Bình, Bình Thanh, Phú Nhun, Thu Duc, Bình Tân, Tân Phú and Gò Vap) - the remainder are simply numbered from one�� to twelve. Each inner district is sub-divided into many wards ("Phong" in Vietnamese), while a suburban district usually consists of many communes and townships ("Xã" and "Thetran" in Vietnamese). Since December 2006, Ho Chi Minh City has had 259 wards, 58 communes and 5 townships (see List of HCMC administrative units be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