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군의 크기는 호찌민 시 전체 면적의 1/400정도로 24 군현 가운데 가장 작다. (면적 5.72 SQ.KM, 인구 238,799 명에 불과) 하지만 콩알 보다 쬐끔 더 큰 이 지역은 시 중심가인 1군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만한 가까운 거리 (오토바이로 5분)에 있을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주변 1군 (동), 군 (북), 떵빈 군(북서), 5군 (남), 11군 (북) 한 가운데 있어 이들 주변지역을 상호 연결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10군은 동서남북 각 지역으로 가는 지름길이자 황금루트다. 그래서 그런지 10군 인민위원장 나으리, 10군을 별 특징 없는 그렇고 그런 동네쯤으로 보면 상당히 섭섭하단다. 10군의 특징은 . . . 첫째, 10군에는 4거리, 5거리, 6거리, 심지어 7거리 등 각종 크고 작은 로타리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오전 러시아워 시간대는 물론, 새벽부터 자정 무렵까지 오토바이와 각종 차량의 물결이 끊이질 않는 곳, 유동인구, 물동량 전국최고인 지역이 바로 이 동네다. 10군의 지리적 위치 어느 지역이든 그 위치를 단박에 알수 있는 방법은 시 중심가인 1군을 기준으로 여타 지역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구글 지도를 이용해 위에서 보면 10군은 1군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전체 지도상으로는 시의 제일 가운데 부분이 바로 10군, 이 지역은 북서쪽의 터줏대감인 떵빈 군 등을 마주하고 북쪽의 3군 과는 깟망탕땀 거리를 경계삼아 머리를 맞대고 있는 형상이다. 10 군의 역사 10 군의 역사는 19 세기 초 민망 황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명장 레방유잇의 양자인 레방코이가 조정에 반기를 들자 당시 민망 황제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고 바로 그 무렵 수천여구의 의병들의 시체가 바로 이곳에 묻혔다. 당시 주민들은 황제를 두려워 하여 이 지역을 마위 (Mả Ngụy), 즉 ‘귀신이 출몰하는 무덤’이라고 불렀다. 한편 프랑스인들이 사이공을 통치할 때는 이곳을 말 목축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10 군의 거리와 명소들 10 군의 대표적인 명소로는 찌호아 정자 (đình Chí Hoà), 엉광 (chùa Ấn Quang), 베트남 국뜨 (chùa Việt Nam Quốc Tự), 끼호아 (Kỳ Hoà) 관광단지, 호아빈 (Hoà Bình) 극장, 레티링 (Lê Thị Riên) 공원, 호찌민 백과대학교 (Trường Đại học Bách Khoa) 등이 있고 그 외에 바탕하이, 리트응 끼엣, 깟망탕땀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크고 작은 거리가 있다. |
백호 승천, 9군 호찌민 시의 우백호 |
서울로 치면 ‘강동구’ 쯤 되는 9 군은 지도상 시 동쪽에 위치한, 호찌민 시의 우백호 9 군은 좌청룡 투득 (Thủ Đức) 군과 함께 지난 97년 투득 ‘현’에서 분리되어 ‘군’으로 승격, 요사이 하루가 다르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신도시 지역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현’차원의 보잘 것 없는 외곽 지역이 ‘군’이라는 ‘큰 별’을 달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동서 지역의 균형 있는 발전’을 강력하게 주장해 온 몇몇 현명한 시당국자들의 선견지명 때문이었다. 서쪽 떵빈 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한 동쪽지역 (현재의 9 군)의 개발은 이들에게는 임기 중 완수해야 할 일종의 숙원과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 게다가 이미 21세기 국제사회에 걸맞는 초거대 도시 (서울 시 면적의 최소 3배)를 구상하고 있던 통 크신 ‘윗분’들의 눈에 볼 때도 이곳은 9 군으로 승격될 만 한 충분한 명분이 있는 지역이었다. 이후부터 정부는 한국, 일본 등 국외 투자자들에게 갖가지 매력적인 조건을 내걸어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이 지역 개발을 유도함으로써 전기, 도로, 교량, 급수 등 갖가지 인프라와 초첨단 하이테크 공단 등을 조성, 현재의 눈부신 발전을 가능케 했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눈독을 들이는, 노후 보장용 금싸라기 땅, 하지만 9 군 시당국자 왈, “투기꾼들은 제발 사양”이란다.
9 군의 청사진은 . . . 시 중심가에서 사이공 교를 건너 하노이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2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커다란 사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에는 투득, 오른 쪽에는 9군이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시계탑이 보인다. 바로 이 사거리에서 대형할인매장을 끼고 오른 쪽으로 쭉쭉 뻗은 길이 바로 9군의 ‘대동맥’ 레방빗 거리로 5km 가량 이어진 이 거리를 따라 대형 할인매장이 둘, 인민위원회 청사, 초첨단 하이테크 공단 등이 차례로 나온다. 한편 투득 사거리에서 계속 하노이 고속도로를 따라 20여분 정도 직진하면 호찌민 시민들의 주말 명소 수이띠엔 공원과 투득 골프장이 나온다. 그 외 동나이 강변 주변지역은 아직도 개발이 덜 된 시골길에 가깝다. 9 군의 역사 9군의 역사는 1698년, 윙(Nguyễn) 왕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윙 왕조는 윙흐우깐 (Nguyễn Hữu Cảnh) 옹을 야딘 (Gia Định, 지금의 사이공) 지역으로 보내 이곳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20년대까지만 해도 야딘 (Gia Định; 사이공의 옛 지명) 성은 투득 (Thủ Đức), 학몽 (Hóc Môn), 고법 (Gò Vấp), 냐배 (Nhà Bè)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으로 당시 9 군은 야딘 (Gia Định) 성, 투득 (Thủ Đức) 현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1997년 경 투득 ‘현’이 ‘군’으로 승격되고, 투득 군에서 다시 하노이 국로를 경계로 오른쪽 지역이 9 군으로 새롭게 편성된 것이다. 호찌민-롱탄-여우야이 하노이 고속도로를 따라 10여 km 달리다 보면전방에 수직으로 난 고가도로가 보이는데 이 길이 바로 ‘호찌민-롱탄-여우야이’ 고속도로다. 이 도로 (54km)가 개통됨으로써 호찌민에서 붕따우 지역으로 가는 시간이 30분 이상 (20km) 단축되었다. 이 길은 조만간 태동할 롱탄 (Long Thành) 국제공항, 티바이 (Thị Vải) 항, 까이맵 (Cái Mép) 항 등과 연계된 거대한 물류운송 시스템의 일부이기도 하다. 딘퐁푸 (Đình Phong Phú) St.
윙씽 (Nguyễn Xiển St. 동나이 강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10 km 가까이 이어지는 도로. 주변은 아직까지 논과 야자수가 즐비하다. 참고로 윙씽 옹 (1907–1997)은 응에안 (Nghệ An) 성 유교집안 출신으로 프랑스 Toulouse 대학에서 공부한 후 베트남 기상대 총 책임자 (1960 - 1976년)와 국가과학기술위 부주석 베트남 사회당 서기장 (1956–1988)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도쑤엉헙 (Đỗ Xuân Hợp, 1906-1985)St. 레방빗 거리 중간에서 갈라져 아래쪽으로 난 곁길. 도쑤엉헙 옹은 하노이 출신의 의학박사로 8월 혁명 이전 의사로 근무하다 베트남 의학협회 부회장, 베트남 적십자사 부주석 역임한 혁명영웅이다. 1985년 12월 79세로 별세 하노이 마이짓 (Mai Dịch Hà Nội) 열사의 묘에 안치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