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재조명

kimswed 2012.03.09 08:07 조회 수 : 2242 추천:332



월남전 속으로 (2)

지엠은 남베트남에서 본격적인 공산세력 제거 활동을 전개했다. 월맹은 이에 맞서 남베트남 내에 민족해방전선이라는 이른바 무장 게릴라 조직인 베트콩(Viet Cong)’을 결성하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어떠한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고 하던 케네디()정부는 베트남 주둔 미군 증강과 남베트남 군 병력에 대한 무기, 전술 지원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유층과 군부, 경찰 세력을 기반으로 강력한 반공 정치를 펼치던 지엠은 독재와 부정부패, 불교탄압,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 발포로 민심을 잃고 결국, 미국의 암시적 승인 하에 1963즈엉반민(Duong Van Minh)’ 장군이 이끄는 군부 쿠데타 병력에 의해 총살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3주 후 케네디또한 댈러스에서 암살되면서 베트남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지엠의 축출을 조장한 미국정부는 그 이후 쿠데타가 여덟 차례나 잇달아 발생하는 등, 오히려 베트남의 정세가 더욱 불안해지고, 공산화 위협이 증폭되자 베트남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더욱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482통킹만()’에서 순찰 중이던 미국의 구축함 매독스(Maddox)’호가 월맹의 어뢰정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자 존슨 대통령은 군사력 사용을 허용하는 결의안 채택을 의회에 요청했고, 의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드디어 19652, 수 일 간에 걸친 공군의 북폭(北爆)3, 해병대의 상륙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월남전의 서막이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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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일한 패전


베트콩에 포로가 된 미군 병사

미국의 유일한 굴욕적 패전으로 기록된 월남전은 개전 당시 프로 군대집단과 아마추어 준()군사집단의 전쟁이라고도 일컬어졌다. 초강대국 미국은 최신형 무기와 군사조직을 대량 투입했으나, 원시적이고 빈약한 무장 세력의 저항의지를 꺾지 못했다. 정글의 장애를 제거하려고 소이(燒夷)작전, 고엽작전, 전략폭격을 무차별적으로 강행했으나, 베트콩의 거점을 제거하지 못했고 베트콩의 강인한 투쟁 에너지와 신출귀몰한 게릴라 전술은 끊임없이 미군을 괴롭혔다. 미국은 10여 년 동안 전개되었던 이 전쟁에 약 300만 명의 병력과 약 1600억 달러의 전비(戰費)를 쏟아 부었으나 58천여 명의 전사자와 전상자 36만 여명의 피해를 입고 철수했다. 무기의 개발과 실험의 전장이기도 했던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1600만 톤의 포탄을 쏟아 부었으며, 이 과정에서 약 200만 명의 베트남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베트남의 국토는 초토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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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의 아픔을 공유한 한국과 베트남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한국군

월남전은 우리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전쟁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주한 미군 2개 사단도 베트남으로 이동할지 모른다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불안과 한 나라가 공산화되면 인접 나라들도 차례로 공산화 된다는 미국의 도미노 이론에 심각한 위기를 느꼈다. 월남은 우리 편, 월맹은 북한 편이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전은 국가안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자유 우방인 월남을 공산세력의 도전으로부터 구한다는 도의적 의무와 경제적 실리를 명분으로 파병을 결정했다. 19649월부터 19733월 완전 철수 시까지 86개월 동안 총 312853명의 국군이 참전했던 이 전쟁에서 4624명이 전사하고, 1962명이 부상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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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진지 공사 중인 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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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서로 다른 명분을 갖고 반대편에서 싸운 전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성과와 자부심 또한 다르기 때문에 월남전은 한국인과 베트남인 간에 유쾌한 화제 거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월남전으로 인한 아픔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과 베트남인은 서로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동질감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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