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사람이든 그들과 친해지려면 먼저 그 나라 사람들의 민족성과 언어, 역사, 특히 그들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2014년 희망찬 청마의 해 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이번 호부터는 베트남인과 베트남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자 한다.
자기 희생적 민족근성의 베트남인
흔히 베트남인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한 데다 잘 화합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일단 전쟁이나 재난등 공동체의 운명이 걸린 대의명분앞에서는 사심을 버리고 강하게 뭉치는 등 자기 희생적 민족근성이 발휘된다.특히 다종족, 다문화 민족답지 않게 국가안보라는 대의명분앞에서는 베불, 베미, 베중전에서 보듯 가공할 만한 위력이 나타난다. 이 외에도 베트남 사람은 손재주가 좋고 총명하며 깊은 신앙심과 문화친화력 등 장점이 많은 민족이다.
용왕의 자손들 우리는 한 가족
최초의 낀족, 혹은 베트남 사람들은 천룡의 자손 락롱구엉(Lạc Long Quân)과 선녀 어우꺼(Âu Cơ)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의하면 두 사람은 동침하여 100개의 알을 낳았고, 그 알에서 10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베트남 사람들은 선조들이 한 자루에서 태어났다 하여 서로간에 동족이라는 의미의 꿍복(cùng bọc), 또는 동바오 (đồng bào;동포)라고 부른다. 즉 모든 베트남 국민은 한 조상으로부터 나왔으며 그들은 모두 형제자매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베트남 최초의 국가, 남비엣
한편 이들 중 가장 강한 자가 방랑Văn Lang국(B.C.2019~B.C.207)을 세워 스스로를 훙왕(Hùng Vương, 雄王)이라 불렀으며 이후 기원전 257년경 중국 촉나라의 왕자 안증붕(An Dương Vương)이 오늘날의 베트남 북부지방에 어우락(Âu Lạc) 국을 건설한다. 하지만 기원전 208년 남비엣(Nam Việt)국의 중국 진나라 시대의 장군이었던 찌우다(Triệu Đà)가 안증붕왕을 죽이고 어우락 국을 복속시킨 뒤 스스로 남비엣(Nam Việt)국을 세워 왕이 된다.
방랑은 한국의 단군조선격으로 동서문화의 발원지이며, 어우락은 기자조선 격으로 꼬로아 성을 지은 나라다. 하지만 이 두나라는 역사적으로 고증되기 어려워 사가들은 일반적으로 남비엣을 최초국가로 여긴다. 남비엣이 한 나라에 대항함으로써 대중국 투쟁의 단초를 열었으며 마지막으로 베트남 역사를 관통하는 이름, 비엣이 최초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베트남 역사의 국명은 남월, 대월 등 비엣越이 거의 끝까지 가다가 결국 남비엣(南越) 에서 순서만 뒤집어서 비에트남 越南=월남이 된다.
베트남 사람, ‘응으이 비엣남’
베트남 사람을 흔히 응으이 비엣(Người Việt) 또는 응으이 낀(người Kinh)이라고 하는데, 지리상으로는 베트남 북부와 중국 남부 일대에 걸쳐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오늘날 베트남 인구의 86.2%를 점하고 있으며 ‘영똑낀’(dân tộc Kinh;낀족)이라고 하여 여타 베트남내 소수종족인 ‘영똑 티우소’(dân tộc thiểu;소수민족) 와 구별된다.(따이족 1.9%, 므엉족 1.5%, 크메르족 1.4%, 호아족 1.1 %, 눙족 1.1%, 몽족 1%, 기타 민족이 4.1%를 차지함)
세계 ‘14위’ 인구대국, 베트남 최근 발표된 CIA의 The World Factbook 통계자료에 의하면 베트남 인구는 90,549,390명으로 세계 14번째 인구대국이 되었다. 베트남 통계국 자료에 의하면 이들 인구 가운데 2,540만명(29.6%)가 도시 지역에 살고 있고 나머지 6천만명이 농촌지역에 거주한다.
한편 남녀 평균비율은 98:100, 서부고원지대는 102: 100으로 남아비율이 가장 높고 베트남 동남부의 경우 95: 100으로 그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에 속한다.
베트남 국어, 띠잉비엣
베트남 사람들이 사용하는 국어는 띠잉비엣(tiếng Việt;베트남어)으로 베트남의 총 인구 중 약 87%를 차지하는 킨족의 모국어이자 베트남의 공용어이다.
이는 비엣-므응 (Việt-Mường) 계통의 언어로, 북부 홍강 델타지역을 비롯한 베트남 전국에 걸쳐 널리 통용되고 있다. 북부 방언은 6성조를 사용하고 음절 끝자음을 분명히 발음하지만, 중부와 남부 방언은 5성조를 사용한다. 베트남어의 표준음은 하노이의 북부 방언을 기초로 하고 있다.
한편 베트남의 공식언어는 베트남어이며 로마자로 적는다. 베트남어는 단철어로, 성조에 6성이 있다.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가 사용되고 있었으나, 19세기부터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베트남어의 로마자 표기가 추진되어 현재 한자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 꾸옥 응으(베트남어: quốc ngữ/ 國語)로 불리는 이 로마자 표기는 16세기부터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이 현지어를 로마자로 옮겨 적으려는 작업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재외 베트남인 비엣끼우
베트남 교포를 지칭하는 비엣끼우 (Việt kiều)는 베트남 동포로 외국에 거주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흔히 끼우 바오(kiều bào)라고도 하는데 이는 베트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동포를 일컫는 말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프랑스 등에 10만여명의 교포가 거주했지만 1975년 해방 후 교포수가(보트 피플)가 대폭 늘었고, 1990년 러시아와 동독이 무너지자 유학갔던 베트남인들이 그곳에 안착하기 시작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띠었다.
그 결과 2012년 외교학술원 보고자료에 따르면 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교포의 숫자는 400만명에 육박한다. 이들은 103개국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이들 중 98%는 미국 (220만명), 유럽 (40만명), 동남아 (60만명), 동북아 (20여만명) 등 21개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며 자국내 달러 유입에 크게 기여해오고 있다.
백인백색 다양하고 풍부한 전통문화
베트남은 다양하고 풍부한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54개의 소수 민족들은 저마다 고유한 전통과 풍속, 생활방식, 종교를 유지하고 있으며 각자 독특한 언어체계를 바탕으로 문학과 예술도 제각기 발달되었다.
베트남 문화는 북부 홍강 델타문명 (đồng bằng sông Hồng)을 중심으로 꽃 피기 시작하여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영토확장과 더불어 북서부와 동북부 고원지대, 북중부의
짬파 (Chăm Pa) 문화및 남부의 호아족(người Hoa) 및 크메 (người Khmer)족 문화,기타 따이윙 (Tây Nguyên:서부고원)지대 문화와 결합하여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전형적인 가족공동체 문화
한편 일찍부터 유입된 유교사상에 의해 효와 인의예지신 등과 같은 덕목이 중시되고 가장 또는 족장에 의해 움직이는 철저한 가족공동체 사회라 할 수 있다. 즉,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서구 문화와 달리 유교적 동양문화권에 속하는 베트남은 가족 혹은 가정공동체 생활을 중시해왔다. 이 중에서도 야똑(gia tộc;가족, 가문)이 야딘(gia đình;가정)보다 우월한 개념으로, 가족 내에는 반드시 똑쯩(tộc trưởng;족장)과 방터(bàn thờ ;제단, 사당)가 있으며, 장례식에는 일반적으로 가족과 족장이 참여한다.
한편 지난 호에 소개한 조상숭배, 즉 똥낀또띠엔(tôn kính tổ tiên)이라고 하는데,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전통 문화 가운데 하나로, 국가적으로 장려되고 있다. 특히 따이윙 (Tây Nguyên;서부고원지대)에서는 야이(nhà dài;큰 집) 라고 하여 한 집에 여러 가정이 함께 거주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베트남 농촌 지역에서도 오늘날까지 한 집에 삼 사 세대가 함께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 중국의 유교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베트남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상하 개념은 없고, 서로 스스럼없이 대하는 경향이 있다.
본 지에서는 베트남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호에는 제 1화 가족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문화를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의 다양한 변화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