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네루대 한국어학과 30명 정원에 10만 명 지원해 3300대 1 경쟁률 =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20여 년 인도와 연을 맺으면서 그동안 인도의 한류 및 한국어 전파 가능성과 관련해서 필자가 한 회의적인 말들은 ‘선무당 짓’이었다. 그만큼 인도에 불고 있는 한류와 한국어 열풍은 대단하다.
 
인도 최고의 국립대는 유서 깊은 네루대학교(JNU)다. 올 10월 가을 학기 한국어학과 학사 정원 30명을 뽑는데 무려 10만 명이 몰려 330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995년 개설된 네루대 한국어학과 학사과정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네루대 여러 외국어학과 중에서도 경쟁률이 가장 높은 과로 꼽혔는데, 이번에 경쟁률이 3000대 1을 돌파한 것이다. 학사과정 3년 뒤인 98년 한국어 석사과정을 개설한 네루대는 인도 내 한국어 열풍을 대변하는 곳이다.
 
네루대학교, 델리대학교(Delhi University)와 함께 뉴델리의 3대 국립대로 꼽히는 자미아대학교(Jamia Milia Islamia University) 역시 한국어 수요가 높아지면서, 올 9월 총장 주재 학처장회의를 열고 한국어 석사학위 과정 개설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자미아대는 10월 시작하는 가을학기부터 한국어 석사학위 과정 신입생 25명을 선발하게 됐다. 
 
자미아대는 현재 한국어 학사과정과 함께 초급·중급 각 1년 과정의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며, 지난 7월에는 학사과정 1회 졸업생이 배출됐다. 한국국제교류재단 객원 교수인 김도영 교수가 네루대에 한국어학과를 개설한 뒤 2017년 자미아대로 이동, 한국어 수료 과정을 열고 학생을 지도해왔다.
 
외국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 보급을 맡고 있는 공공기관인 (재)세종학당재단도 급증하는 인도 내 한국어 열기에 부응해 북부 델리 한국문화원에 이어 첸나이 등 인도 내 한국학당을 10곳까지 확대했다. 인도 힌디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고, 영어, 중국어와 같은 고저의 리듬이 아니라 장단에 기반을 둔 언어다. 인도 영어 발음이 영미계 영어와 다른 이유다. 
 
지난해 8월 전 세계 2000여 명이 참가한 ‘2021 세종학당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인도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의 ‘아누부띠 카카티’가 대상을 받은 바 있는데 이러한 양 언어의 친숙한 구조도 대상 수상에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한다.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시작된 인도의 한국어 열기가 한층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한국어 전문가를 양성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자미아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김도영 교수(가운데 서 있는 이). [사진=연합뉴스]
●삼성, 현대, LG 등 인도 진출 우리기업의 위상 제고와 고용확대 추세도 한국어 열기에 한몫 = 인도 현지에 진출한 우리 투자기업의 위상과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한국어 열기의 배경이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는 1990년대 중반 인도에 투자 진출한 이후 가전, 핸드폰, 자동차 분야 시장점유율 1~2위를 확고히 하면서 사세를 크게 키워왔다. 
 
삼성전자 인도법인은 자체고용 인력만 해도 2만5000명 이상이고, 연매출도 100억 달러를 넘고 있다. 인도에 진출한 우리 투자 대기업은 급여, 복지는 물론 체면을 중시하는 카스트 문화 속에서의 주위 평판 등을 이유로 인도 젊은이들이 입사하고 싶은 최우선 직장이다. 필자가 근무한 KOTRA 뉴델리무역관도 업무능력이 정점에 달하는 입사 2~3년차 현지 직원들의 잦은 삼성, 현대 이직에 힘들어했다. 
 
인도 내 체류 한인은 약 1만2000명이다. 이는 한-인도 간 200억 달러를 넘는 교역규모, 25년의 삼성, 현대, LG, 포스코의 공장투자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적은 숫자다. 5만 명의 태국, 20만 명의 베트남 주재 한인 수와 비교해도 크게 적다. 그만큼 인도의 기후, 생활, 정주 여건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이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 주재원 및 가족으로 개인 사업을 하거나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교민 수는 1000명이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도 내 한류, 한국어 열풍은 대부분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 교민들의 사업 확장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인도 현지 문화와 언어 기반을 갖춘 한국인, 즉 2~3세대 한인 수는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인도에 진출한 우리 기업 입장에서도 한국어를 구사하는 인도인은 우선채용 대상이다. 급증하는 마케팅, 관리 수요를 한국 본사 파견인력 대비 10분의 1 이하 비용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도인 채용 확대는 현지화와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인도 정부, 2020년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지정하고 중국어는 제외 = 이런 한류, 한국어 열풍에 호응, 인도 교육부는 2020년 9월 사상 처음으로 한국어를 인도 정규 교육 과정 제2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어는 태국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와 함께 제2외국어 권장 과목에 추가됐다. 
 
반면 기존에 포함되어 있던 중국어는 2020년 6월의 인도-국경 유혈 충돌과 인도 내 반중국 정서 확산으로 빠졌다. 중국어 자리를 한국어가 대체한 것이다. 
 
인도는 1968년 처음으로 교육 정책을 수립한 이래로 1986년, 1992년에 이어 28년 만인 2020년에 이를 개정했다. 인도 정부가 매년이 아닌, 좀 더 긴 호흡으로 교육 정책을 개정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한국어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인도 학생들의 제2외국어 선택지로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인도의 한국어 열풍에는 초석을 놓은 숨은 공로자의 기여도 빠질 수 없다. 한국과 한국어라는 존재가 미미하고 희미할 때인 1995년 이후 인도 최고 국립대인 네루대에 한국어 정규과정이 신설되고, 최근 인도 3대 국립대인 자미아(JMI)대에 한국어 석사과정이 신설된 것은 1988년 인도 유학 이후 지금까지 초석을 놓은 김도영 교수의 노력과 헌신 없이는 불가능한 결과다.
 
2020년 한국어가 기존에 들어가 있던 중국어 자리를 대신해 인도 정부의 중장기 초중고 제2 외국어 권장과목에 포함된 것은, 정책적 호기를 미리 숙지하고, 인도 교육부 관계자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당시 김금평 한국문화원장과 신봉길 주인도한국대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10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과정을 현지에서 지켜보면서 세상사, 모두 사람이 하는 것임을 재삼 확인하게 됐다. 인도에서 불고 있는 한국어, 한류 열기는 이미 G3로 부상한 인도와 우리나라 간 경제, 외교, 문화, 군사협력을 뿌리부터 단단히 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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