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20년 신발 소비가 급감했다가 이듬해에는 캐주얼 슈즈 위주로 회복되기 시작됐다. 엔데믹 시대를 맞아서는 사회활동이 정상화됨에 따라 다시 멋스러운 구두와 따뜻한 부츠를 찾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의 신발 수요 변화를 훑어보고 패션 소비자들이 주목한 트렌드를 살펴보자.
●신발 소비의 급증=2020년 팬데믹 당시 미국인들은 하루 아침에 집에 발이 묶이는 신세가 됐다. 갑자기 발효된 각종 규제로 기업, 학교, 오프라인 매장의 운영이 중단됐고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우려로 장시간 제대로 된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라이프스타일도 실내 위주로 변했고 각종 배달 서비스나 원격 미팅 플랫폼의 이용이 급증했다. 한마디로 ‘신발을 신는 일상’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실제 2020년 미국 내 신발류 매출은 곤두박질친 바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의 ‘미국 신발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09~19년 견실한 성장세를 보였던 미국의 신발류 매출은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상당 폭 감소했다. 2019년 796억 달러에서 2020년 619억 달러로 22%나 하락한 것. 그러나 2021년의 회복세를 거쳐 작년에는 팬데믹 이전 규모를 회복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로모니터는 799억 달러로 2019년 수치를 넘어섰고 2026년까지 적극적인 성장세를 예상했다.
지난해 미국 신발 시장의 회복세는 수입동향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무역통계 전문기관 글로벌트레이드아틀라스에 따르면 작년 1~10월 미국의 기타 신발류 수입액은 53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했다. 2년 전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무려 87%나 늘었다. 그만큼 내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미국을 휩쓴 슈즈 트렌드=그렇다면 그간 열심히 신발을 구매한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은 슈즈들은 무엇일까? 우선 어그의 양털 뮬 ‘테즈’를 꼽을 수 있다.
‘겨울 양털 부츠’의 대명사 어그는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이후 ‘겨울에만 특화된 신발’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부츠 디자인에서 벗어나 슬리퍼나 샌들 같은 다양한 스타일로 변신하면서 미 패션 소비자들 사이에서 꾸준한 인기템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짧은 기장의 부츠가 인기를 끈 가운데 2021년 ‘울트라 미니 기장’ 부츠에 이어 작년에는 길이가 더 짧은 ‘뮬’ 스타일이 미 슈즈 시장을 강타했다. 특히 플랫폼 밑창의 어글리 뮬 ‘테즈’는 미국의 유명 모델이자 셀러브리티 지지 하디드를 필두로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바 있다. 간편한 운동화로도 편안한 뮬로도 캐주얼한 부츠로도 신을 수 있는 다양성이 인기 비결로 꼽힌다.
미 언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코르크 밑창 슈즈 브랜드 버켄스탁의 ‘보스턴’ 클로그는 지난해 두 자릿수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양털 뮬처럼 투박한 느낌이지만 특유의 편안함과 다양한 차림새에 어울리는 활용성에 힘입어 지난해 패션 쇼핑 플랫폼에서 ‘올해의 슈즈’로 꼽히기도 했다. 이 역시 여러 셀러브리티와 많은 인플루언서들에게 회자되면서 인기 색상은 품절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재고는 부족한데 수요가 많다 보니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정가의 두 배로 거래될 만큼 보스턴 클로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대표적인 스니커즈 브랜드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추억의 운동화들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판다’, 한국에서는 ‘범고래’로 잘 알려진 나이키의 ‘블랙앤화이트 덩크’와 아디다스의 ‘삼바’ 모델이 그 주인공이다.
너무 옛날 모델이라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이 두 슈즈가 왜 인기 반열에 올랐을까? 패션 매체 글로시는 그 이유를 ‘간접적인 향수’로 정의했다. Z세대를 비롯한 젊은 소비자들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의 클래식 제품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나이키 덩크는 1980년대, 아디다스 삼바는 1940년대에 출시된 모델이다. 두 제품 모두 무난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어떤 패션에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 기업 시사점=작년부터 미 패션 시장을 휩쓸고 있는 슈즈 트렌드를 종합하면 투박한 느낌을 일컫는 ‘청키(Chunky)’, 밑창 전체에 굽이 있는 ‘플랫폼(Platform)’, 팬데믹 이후 지속되는 ‘편안함’(Comfy), 간접적인 향수를 추구하는 ‘레트로(Retro)’, 어디에나 어울리는 다양한 ‘활용도’(Versatility) 등으로 꼽을 수 있다.
미 패션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는 H 매니저는 KOTRA 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의류 시장과 비슷하게 그간 슈즈 매출은 소비자들이 팬데믹 기간 중 신을 수 없었던 드레스 슈즈가 이끌었다고 할 수 있지만 트렌드로 본다면 캐주얼화와 편안함 추구 역시 여전히 강세”라며 당분간 이 트렌드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KOTRA 로스앤젤레스무역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