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제일 싫어했던 것을 제가 업(業)으로 삼을지는 상상도 못했죠!’
건해삼(乾海蔘)으로 연 수출 300만 달러를 기록한 칭도원 김경진 대표의 말이다. ‘가업 승계’를 한 것일까. 사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의 영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의 기업 성장 스토리를 들으면, 본인의 말처럼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대학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던 그는 몸무게 120kg에 키는 190cm에 육박한다. 남을 압도하는 우람한 체격을 바탕으로 무모하리만큼 중국 시장을 두드렸고, 이제는 수출 1000억 달러를 바라본다.
●처마에 걸려 있던 건해삼 = 김경진 대표는 처음 입사한 대기업에서 1년 만에 그만뒀다. 적성에 안 맞는다는 이유에서다. 2000년부터 스포츠센터에서 학생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며 그의 미래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어느 날 취미로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던 그는 바다 속에 널려 있는 해삼들을 보게 됐다. 순간 떠오른 것이 어린 시절 기와집 처마에 줄줄이 걸려 있던 해삼들이다. 부산에서 채소와 과일 도매상을 하시던 어머니가 중국인 상인에 팔기 위해 해삼들을 줄줄이 걸어나 말렸던 것. 건조과정에서 냄새가 지독했고, 무엇보다 처마에 쭉 걸려 있는 해삼들이 보기 안 좋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스쿠버다이빙을 마치고 나온 김 대표는 곰곰이 생각했다. 당시 중국집에서 해삼을 식자재로 사용하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2000년 이전에만 해도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식당에서만 해삼을 사용했는데, 2000년 이후 대부분의 중식당에도 해삼을 넣기 시작한 것.
김 대표는 도전을 결심한다. 전국에 셀 수 없이 많은 중식당들이 있으니 이들에게 해삼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식당에선 해삼을 중국에서 수입했다.
●바다 속에 널린 해삼 보고 창업 = 김 대표는 실행에 옮겼다. 2004년 회사 ‘인터리버’를 세우고 해삼을 채취했다. 시장 조사를 해보니 1kg당 도매 유통가격이 12만~13만 원이었다. 김 대표는 11만 원에 판매했다.
조금씩 판로를 열 시점에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러시아산 해삼이 갑자기 물밀 듯이 들어왔는데 그 가격이 1kg에 고작 6만 원 안팎이었다. 시장에서 도저히 경쟁이 안 됐다. 폐업을 고민하던 그에게 뜻밖의 연락이 왔다.
“어느 날 중국인 대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봤다며, 자신이 중국에서 해삼을 판매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중국으로 갖고 가야 하니 해삼을 삶은 후 염장을 부탁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요청한 그대로 준비했다. 그리고 1kg에 13만 원을 받고 20kg 한 박스를 공급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중국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는지 꾸준히 주문이 이어졌다.
김 대표는 “학생의 가족을 통해 중국에서 꽤 큰 해산물 시장인 ‘연태’에서 판매가 이뤄졌는데, 주문량이 조금씩 늘더니 어느 순간 10만 달러 이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수출 물량이 늘자, 김 대표는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2009년과 2010년 연달아 15억 원씩 총 30억 원을 생산시설에 투자했다. 그러나 곧 사고가 발생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중국에서 한국산 수산물 수입을 중단한 것. 당시 중국에 전량 수출하던 회사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김 대표는 “친인척 도움을 받아 30억 원을 투자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결국, 회사는 막심한 손해를 봤고 버틸 수가 없었다.
이후 김 대표는 힘든 나날을 보냈다. 돈벌이를 위해 닥치는 일을 모두 했다. 해삼 채취 시즌인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는 해삼 공장에서 일했다. 나머지 기간에는 건설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로 뛰었다. 김 대표는 “살기 위해 모든 일을 했다. 집에서는 버스 기사라도 하라고 했지만 빚을 갚기 위해 재창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2000만 원으로 재창업 후 중국시장 연구 = 그리고 2015년 2000만 원의 쌈짓돈을 모아 칭도원을 창업했다. 인터리버의 실패 경험을 교훈 삼아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바로 중국 시장을 제대로 알기 위해 건해삼 10kg을 들고 중국으로 들어갔다.
중국을 찾은 후 시장을 제대로 봤다. 중국 수입상이 과도하게 많은 마진을 챙겼다는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시장을 뚫는 것은 별개였다. 현지인 한 명을 고용해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6~7개 도시를 3개월 동안 돌아다녔지만, 판로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돈이 부족해 직원에게는 해삼을 떼어주며 연명했다.
낙담한 채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 건해삼을 수협중앙회 중국 수출지원센터에 기증했다. 마침 한국 수산물 전시공간이 있었던 것.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어느 날 중국에서 연락이 왔다. 수협 수출지원센터에서 상품을 봤다면 샘플 오더 주문이 들어온 것. 중국에서 일본에 김치를 수출하던 기업가였는데, 칭도원 건어물의 품질에 만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무려 15억 원어치를 주문했고, 이후 주문량은 늘었다. 칭도원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김 대표도 자신감이 붙어 2019년 중국 연태에 창고 겸 현지사무소를 세웠다. 올해 추가로 연태 근방인 웨이하이에 추가 매장을 낼 계획이다.
●해삼박사, ‘진공건조기’ 직접 개발 = 중국에서 칭도원 상품이 인기를 끄는 비결에 대해 김경진 대표는 자사만의 독특한 진공건조 방식을 꼽았다. 10여 년 전부터 독자 개발한 시설로 신선도를 높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김 대표는 “2011년부터 해삼 건조에 적용했다, 중국에 시장 조사를 갔다가 해삼 건조와 자숙 기술을 배워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국내 정상급 호텔에 건해삼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마땅한 영업을 하지도 않았는데 호텔 중식부에서 칭도원 상품에 대한 입소문을 듣고 직접 연락을 준 것.
칭도원은 신규 사업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높아진 인지도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아직 판매 실적은 많지 않지만 해삼장·연어장·소라장 등을 개발했다. 해삼의 장점을 살린 ‘해삼커피’도 출시를 앞뒀다. 해삼의 우수한 성분을 자랑한 김 대표는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해삼의 우수한 효능을 높이 평가한다”며 “해삼을 활용해 식품과 화장품을 개발해 중화권 시장에 판매하겠다”고 말했다.
타깃 시장은 중국을 넘어 동남아로 뻗어가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안에 태국과 인도네시아에 건해삼 공장을 세우고 승인도 마칠 예정”이라며 “이미 두 나라에 각 1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5년 안에 연 수출 1000만 달러를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칭도원이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어렸을 때 처마에 걸려 있던 해삼을 보지 않았다면 칭도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싫어했던 해삼이 저에게는 큰 은혜로 돌아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