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답이 있다
이전 직장에서 현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발생한 뼈아픈 실수를 목도한 적이 있다. 직접 그 업무를 담당하지 않았으나 충격이 커서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사건은 대략 이러하다.
회사 대표의 유럽 출장길에 특정 도시에 있는 한 기업의 사무소를 방문하기로 약속했고, 유럽지역 책임자가 “협의가 잘 되어 만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동선이기에, 그 책임자는 건물까지 확인하는 노력을 하였다.
밖에서 보니 건물에 그 기업의 이름도 있었다. 안내 간판을 통해 건물 내 사무실 층수까지 확인하였다. 하지만 미팅이 있던 날 현장을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 그 사무실은 방문하고자 하는 기업이 입주해 있는 것은 맞지만 다른 사무소였다.
당연히 만나기로 약속한 인사는 그곳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사무실 주소를 찾고 담당자가 통화했으나 주소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엉뚱한 곳으로 간 것이다. 사무실 간판만 확인하고 사람을 만나 다시 확인하는 것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통상 해외 출장 중 CEO가 방문할 곳이 정해지면 미리 찾아가 소요 시간을 알아보고 식사가 필요한 경우 적당한 식당을 예약한다. 이어 만남을 약속한 인사나 그 비서를 만나 시간까지 확인하는 것이 완벽한 점검이지만, 앞선 사례는 마지막 절차를 생략하고 건물 등 외형만 확인하여 실수한 것이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어리석은 질문에도 현명하게 답한다’는 의미지만 최근에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현장에서 있다’라는 다소 이질적인(?) 해석으로도 활용된다. 고위 공무원들이 민심을 얻는 비책으로 거론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실제로 책상 앞에서 해결책을 논하는 것은 좋은 결과에 도달하지 못하고, 설사 어렵게 해결책을 만들어도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현장의 밖’에서 확인한 것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앞의 사례는 직장 생활하는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마케팅을 잘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에 대해 고객이 직접 되어 보는 것이다. 왜 이 물건을 살 수밖에 없냐고 스스로 묻고 수긍하는 것이 마케팅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신입사원이나 신제품 개발부서 직원들은 직접 제품을 팔아보는 현장 경험을 하기도 한다. 소비자가 어떤 기능을 원하는지 알아야 하고, 파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아야 제품에 혼을 불어넣게 된다.
오래전에 모 전자회사는 신입직원을 뽑은 후에 부산부터 서울로 상경하면서 자사 제품을 팔도록 하였다. 제품을 이해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사는 것이 회사 생존에 절대적 요소라는 점을 새기도록 하는 비책이었다.
자수성가한 기업가들은 대부분 2세에게 일정 기간 현장 근무를 시킨다. 참치로 세계 최고 위치에 오른 모 회장은 아들에게 첫 근무지로 알래스카행 명태잡이 어선이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했다. 20대이던 장남은 5개월간 망망대해에서 매일 16시간씩 일하며, 어떻게 현장이 돌아가는지 직접 체험했다. 모두가 중국에 진출해야 돈을 번다고 외치던 시절에 그 회장은 냉철하게 현장을 제대로 보라고 이야기하여 손실을 줄였다고 한다.
그 회장은 ‘현지에 고기가 많으면 무엇 하나? 고기를 잡아 올릴 그물과 능력이 없으면서 남이 간다고 바다로 나가면 짠물만 잔뜩 뒤집어쓰고 돌아올 뿐’이라고 신중론을 폈다. 위기 때 냉철한 상황판단을 위해 ‘바닥까지 내려가 본 현장 경험’이 큰 자산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참치 왕의 손자도 참치 공장에서 현장 근무를 한 적이 있어 현장 근무 전통은 3대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원활한 대응이 모든 기업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이 법은 건설공사나 생산시설에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곱씹어 보면 현장 중심의 경영을 하라는 의미다. 매출이라는 외형적인 목표에 매몰되어 안전이라는 기초를 놓치지 말라는 지침과 상통한다.
안전의 출발점은 사무실이 아니라 현장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회사들이 현장 근무를 의무화하기도 한다. 리더가 되려면 현장 메커니즘을 잘 알아야 위기에 강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다.
직원들은 주목받는 기획이나 인사 등을 선호한다. 한때는 인사팀이 가장 먼저 승진하고, 좋은 곳으로 발령받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잘 나가는 회사는 현장 경험을 리더의 필수조건으로 한다.
생산과 마케팅 현장을 아는 사람을 키우는 회사는 일류회사다. 현장 근무를 선호하는 회사, 현장 근무에 가점을 주는 회사, 그 회사의 열매는 튼실할 수밖에 없다.
민영채 | W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