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의 꽃 ‘도우미’는 우리가 책임진다
‘전시 현장을 더욱 빛나게 하는 인물.’
유지수 디엔아이씨(DNIC) 대표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유 대표는 전시장의 꽃이라고 불리는 행사 도우미 1세대 출신으로, 국내 대형 엑스포·전시 행사에 인력 지원을 책임지는 회사 디엔아이씨를 이끌고 있다.
디엔아이씨는 국내 몇 안 되는 마이스 인력 전문업체로, 올해 업력만 20년을 훌쩍 넘었다.
유 대표는 지난 20여년 활동에 대해 “만족은 못 하지만, 부끄럼은 없다”고 말했다. 지원한 행사들의 성공적 개최에 나름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들렸다.
현 업무에 대해 ‘사명감’이라는 말도 꺼냈다. 사람 관리가 쉽지는 않지만 마이스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분명 중요한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우연한 기회에 도우미 세상 활동 = 유지수 대표는 대학 재학시절 전시 도우미로 활동했다. 시작이 흥미롭다. 1992년 대학 도서관에서 나오다가 받은 ‘학원(아카데미) 리플렛’이 계기가 됐다.
유 대표는 “방송·연기 아카데미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방송인과 영화인들이 강의한다고 해서 흥미를 느꼈다”며 “2달 수강료만 50만 원이었는데 호기심에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기억했다. 국내 전시 도우미 전문 아카데미 1기 졸업생으로, 이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전시 도우미로 활동했다.
도우미 활동을 하는 유 대표를 유심히 지켜본 업계 지인이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코엑스 주변인 삼성동에 도우미 아카데미를 세우는데, 그곳에서 매니저 역할을 부탁한 것. 지망생 관리와 함께 코엑스 전시회에 도우미 수요를 파악하는 업무였다.
유 대표는 “전시 참가업체 가운데 40%가량은 외부 도우미를 찾았다”며 당시 시장 상황을 소개했다.
유 대표는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시 참가사들과 인연을 쌓았다. 20대의 나이였지만 인력(도우미) 관리에 최선을 다했고, 이를 고객사들도 인정한 것.
유 대표는 “사실 도우미 관리가 쉽지 않다. 전시회 당일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어서 연락할 방도가 없었고, 대체 인력을 투입하거나 아니면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때로는 도우미와 고객사가 충돌하기도 했다. 유 대표가 중간에서 설득하거나 다른 도우미로 대체하기도 했다. 전시회가 끝난 후에는 고객사 만족도를 조사했다.
유 대표는 “고객사 반응도 들을 수 있었지만, 저희 소속 도우미들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자연스럽게 인력 관리가 된 것이다.
●창업… 기다리고 있던 난관들 = 경력이 쌓이자 유 대표는 새로운 도우미 전용 아카데미에 스카우트 됐다. 인력 관리는 물론 커리큘럼을 짜고 강사 섭외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불미스러운 사고로 아카데미가 문을 닫게 됐다.
아카데미가 많지 않던 시절, 유 대표는 고민하다가 동료와 함께 창업을 결심한다. 도우미 인력을 전시회에 지원하는 회사였다. 유 대표는 “당시 제가 관리했던 인력이 100~200명은 됐다”며 “저에게 도우미 지원을 요청하는 고객사도 100곳은 됐다”고 전했다.
고객사 만족도는 높았다. 유 대표는 “당시 도우미 관리 노하우가 쌓여있었다”며 “무엇보다 저는 도우미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보니 후배 도우미들과 언니-동생 관계로 친밀도가 높았던 것이 시너지를 발휘했다”고 소개했다.
1999년에는 직접 아카데미 사업에 뛰어든다. 인력양성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신촌에 도우미&내레이터 모델 아카데미를 세웠다. 현재 사명의 앞쪽 두 글자인 디엔은 도우미와 나레이터의 영문 이니셜인 ‘D’와 ‘N’에서 따왔다.
당시 서울 강북에 유일한 학원이었다. 우여곡절 속에 2000년 오픈했으나 원생 모집이 쉽지 않았다. 첫 달 20명 모집에 5명만이 신청했다. 1인당 수업료는 70만 원. 당시 광고료만 200만~300만 원이었으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1년 가까이 계속됐다.
유 대표는 신촌의 전봇대는 물론 서울과 신촌 시외버스터미널과 연결된 경기도 김포·강화까지 돌아다니며 대학 캠퍼스와 주요 거점에 홍보 포스터를 붙였다. 50~60개 여자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무료 특강도 실시했다. 어떻게든 사람을 모아보려는 노력이었다.
유 대표는 “대학에 홍보 포스터를 붙이겠다고 하자 학교 관계자로부터 ‘도우미도 직업이냐?’며 거절당한 적도 있다”며 “고스란히 전단지 뭉치를 들고나올 때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전시 도우미’라는 전문직을 더욱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었다.
유 대표는 “우리 기업 홍보의 최전선에서 상품에 대해 충분히 공부해 막힘없이 소개하고 온갖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며 “다양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역할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역설했다.
1년 후 아카데미는 자리를 잡았지만 2004년에 다시 큰 위기를 맞았다. 3개월짜리 대형 행사에 인력을 지원했는데 대행사의 부도로 인해 일체 비용을 받지 못한 것. 유 대표는 당시 비용을 변제하고 회사를 원상 복구시키는 데 10년가량 소요됐다고 전했다.
●책임경영으로 엑스포 행사 대거 수주 = 디엔아이씨의 경쟁력은 고객이 인정하는 책임감이다.
계기가 있다. 2000년대 초반 모 기획사에서 찾아와 대형 행사에 인력을 관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유 대표는 “행사를 하다 보면 변수가 많다. 우리는 숨기지 않고 고개사와 협의해 실마리를 찾아내겠다”고 답했는데, 고객사가 그 점을 높이 평가한 것. 경쟁사들은 ‘우리가 제일 잘한다’는 점만을 강조한 것과 달랐고 덕분에 사업을 수주했다.
유 대표는 이 자세를 지금까지 고수한다. 덕분에 디엔아이씨는 대형 엑스포 행사의 90%가량을 맡을 정도로 인력 지원 및 관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유 대표는 “행사 이전부터 현장의 숙박, 교통, 식사, 이동 소요시간 등을 철저히 확인한다”며 “언제부턴가 ‘엑스포 인력 관리라고 하면 디엔아이씨’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마이스 인력 플랫폼으로 재도약 꿈꿔 = 디엔아이씨는 지난해 마이스 인력 구인구직 채용 솔루션인 ‘마이스팩(MICEPEC)’을 개발했다. 채용 프로세스를 원스톱으로 관리하는 한편 마이스 인력이 참여 행사의 이력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유 대표가 30년 넘게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필요성을 느껴서 개발했다.
유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행사가 사라지다 보니 인력들이 많이 떠났고 그러다 보니 인력 매칭에도 어려움이 많다”며 개발 동기를 소개했다. 국내에서 론칭 후 외국어 버전도 개발할 계획이다. 외국기업이 한국에서 또는 해외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디엔아이씨를 전시회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다. 유 대표는 “아무리 전시회를 잘 만들어도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행사는 실패한다”며 “저희는 영화의 주인공 옆에서 농익은 연기를 펼치는 명품 조연처럼 겸손한 자세로 행사를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며 성장하겠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전시 도우미들은 단순한 ‘알바(계약직)’가 아닌 전문직으로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했다. 본인이 이를 위해 ‘바른 운영 전도사’가 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 설립 : 2001년5월
• 사명 의미 : 도움을 나누고 협력하는 기업
• 대표 행사 : 2012여수세계박람회, 2018평창동계올림픽, 2022세계가스총회 등에 인력운영대행
• 모토 : 오늘보다 행복한 내일
• MICE산업 발전을 위한 한마디 : 산업의 젊은 인재들이 꿈을 실현하는 환경을 조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