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가 부채(dept),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하락),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인구통계(demographics)의 경제 재앙 ‘4D’에 직면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또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로 4억 명으로 추산되는 중산층도 쪼그라들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 같은 경기침체 빠질 우려 =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당국이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시장에 심어주지 못하고 있으며, 정책 입안자들은 126조 위안(약 2경30400조 원) 규모 중국 경제를 계속 수렁에 빠트리게 하는 ‘4D’의 파장과 씨름하며 세 갈래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작년 11월 말 현재 중국 지방 정부 부채는 40조6000억 위안(약 7천540조원)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또 지난달 JP모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 간 약 50개의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가 1000억 달러(약 134조 원) 규모 역외 채권을 갚지 못했다.
여기에 지난달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0.3% 떨어지며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고,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2.7% 하락하면서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이 일본 같은 침체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고 SCMP는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월 16일 고품질 금융 발전 특별 심포지엄에서 여러 금융 위험 제거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면서 디리스킹 캠페인에 힘을 모으라고 지시했다. 시 주석은 “위험 요인 처리 과정에선 단호히 부패를 징벌해야 하고, 도덕적 위험 요인을 예방해야 한다”며 금융 범죄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주문했다.
중국 인구가 2년 연속 감소한 것도 중국 경제가 직면한 커다란 도전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자국 인구가 지난해 말 기준 14억967만 명으로 2022년 말보다 208만 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신생아 수도 902만 명으로 2년 연속 1000만 명을 하회했다. 출생률 감소 속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동력, 소비, 사회 보장 혜택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됐다.
SCMP는 중국 당국이 이러한 4D 위험에 맞서 우선 경제의 약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분야 침체를 상쇄하고자 다른 기간산업을 육성하는 노력을 펼친다고 짚었다. 지난해 중국 부동산 분야의 부가가치는 국내총생산(GDP)의 5.8%를 차지해 수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시티그룹 위샹룽 분석가는 최근 한 웨비나에서 중국의 기술 혁신, 첨단 제조, 현대화한 인프라 등 세 가지 신규 강력한 분야가 부동산 분야의 경제 기여를 대체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다만 그는 신성장 모델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공급과 수요 모두에서 깊고 심오한 변화와 이행 과정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신문은 중국 당국이 펼치는 또 다른 노력은 모멘텀 둔화에 대응한 정책 행동이라고 짚었다. 중국 당국은 작년 초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도 경제가 둔화하자 10월에 1조 위안(약 186조 원) 규모 특별 채권 발행을 승인하는 등 각종 지원 정책을 내놓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새해 들어 지방 정부들이 각각 강력한 경제 출발을 꾀하고 있지만, 많은 분석가는 부채와 위험에 대한 고려로 단계적 완화 정책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SCMP는 전했다.
TS 롬바르드의 로리 그린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올해 중국에서 바주카포 스타일의 부양책은 없겠지만 꾸준히 조금씩 채권 발행과 담보보완대출(PSL)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PSL은 2014년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마련한 장기 대출 프로그램으로, 유동성 공급에 활용된다.
중국 당국이 흔들리는 신뢰에 대한 대응 노력도 펼치고 있다고 SCMP는 짚었다. 중국은 지난해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과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환영 방침을 수차례 밝혔다.
그러나 중국 당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투자는 전년보다 0.4% 감소했고, 외국인직접투자(FDI)는 8% 감소했다.
SCMP는 “분석가들은 중국 정부가 메시지를 더욱 투명하게 만들어야 하고 조치를 더욱 확실히 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쉬톈천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는 수년간 이어지는 신뢰 위기를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4억 명 중산층도 쪼그라들 위기 = SCMP는 별도의 기사에서 중국의 경제 둔화에 4억 명 중산층이 쪼그라들 위기라는 진단도 내놨다.
신문은 “중국의 장기화한 부동산 시장 침체와 주가 하락 속 현지 중산층의 부가 계속 사라지면서 세계 최대 규모 중산층이 위험에 처했다”며 “강력한 경제 회복이 없으면 종종 4억 명 규모로 언급되는 이들 그룹은 줄어들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들은 경고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산층의 감소세는 공동부유 추진의 일환으로 중산층을 두 배로 키워 선진 경제가 되겠다는 중국의 야심을 위협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중국 전문가들은 중산층을 6억∼7억 명으로 확대해 소비 기반을 구축해야 중국이 계속해서 해외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중산층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중국 국가통계국은 연간 수입 10만∼50만 위안(약 1850만∼9250만 원)의 3인 가구로 규정한다.이 그룹에 속하는 인구가 약 4억 명, 또는 1억4000만 가구로 전체 인구 14억 명의 약 30%를 차지한다.
그러나 해당 그룹의 큰 부분은 여전히 중산층 하한선에 가까워 이들의 소득 증대를 위한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인 왕이밍 전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부주임은 지적했다.
그는 이달 중국중앙TV(CCTV)와 인터뷰에서 “중산층 대다수는 중산층 임금 기준을 간신히 넘겼다”며 “이들은 소득과 직업에 영향을 끼칠 팬데믹 같은 경제적 충격에 취약한 계층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은 저축을 늘리려 노력하는 와중에 자녀 교육, 의료비, 가족 내 노인 돌봄 등의 부담을 져야 한다. 그 결과 소비를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 연말 중국 관영 경제일보는 중산층 감소 위험에 주목하면서 중산층 육성을 위한 필요성과 긴급성을 강조하는 이례적인 논평을 실었다. 경제일보는 “중산층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외부 도전에 맞서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나 이 그룹의 대다수는 소득 중하층으로 일부는 불안정한 직업에 직면해 있고 중산층에서 탈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벤치마크 주가지수인 CSI 300은 지난해 11.4% 하락한 데 이어 올해 들어 첫 2주간 5.9% 추가 하락했다. 또 중국의 부동산 매매는 면적 기준으로 전년보다 8.5% 감소한 1억1천200만㎡를 기록하며 10년 만에 최저를 찍었고, 금액 기준으로도 2016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광둥성 선전의 외국 투자 회사 매니저 위니 류 씨는 2015년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투자 목적으로 구매했는데 2021년 630만위안(약 11억7천만원)까지 뛰어올랐던 그의 주택 가격은 현재 400만위안(약 7억4천만원) 아래로 폭락했다고 밝혔다. 그는 SCMP에 “지난 2년간 부동산이든 금융 투자든 내 자산은 쪼그라들었다”고 말했다.
선전의 통신회사에 다니다 해고된 로런스 황 씨는 이후 고향인 허난성에서 유치원을 운영했으나 출산율 하락과 3년 간의 ‘제로 코로나’ 정책 속 지난 6년 간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해 결국 지난해 유치원의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SCMP에 “처음에 연간 원비를 1만5000위안(약 278만 원) 받았으나 많은 부모의 수입이 감소하면서 1만 위안(약 185만 원)으로 낮췄다”며 “그럼에도 등록률은 예전 같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은행에서 수십만 위안을 대출하고 친구와 친척들로부터도 돈을 빌려 쓴 그는 지난해 여름 선전으로 돌아가 이전보다 낮은 연봉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더 나은 소득은 더 이상 없다. 우리는 중산층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중산층의 소비 감소는 피아노 판매 부진으로도 이어졌다. 지난주 중국 계면신문은 지난해 4월 이후 중국의 피아노 판매가 급락, 정점을 기록했던 2019년의 약 15%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한때 중국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피아노는 베이징과 상하이의 중심으로 판매가 급증했지만 지난해 많은 판매점이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