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한 벌을 만들면 이산화탄소 11.5㎏가 배출된다. 옷 무게보다 무거운 온실가스를 내뿜는 셈이다. 

청바지 하나만 예로 들었지만, 패션산업 전체가 뿜어내는 온실가스 양은 어마어마하다. 원료확보, 생산, 유통, 사용, 폐기 등 다양한 과정으로 구성되는 패션산업은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의 1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물 사용량도 막대하다. 패션산업은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전체 담수의 약 11%를 차지하고, 섬유 가공과 염색 등을 통해 나오는 폐수는 전체 산업용 폐수의 20%에 달한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세계에서 매해 발생하는 의류 쓰레기만 4700만t(2017년 기준)에 육박하고 패션산업은 심한 오염을 일으키는 산업 2위다.

지속 가능한 패션브랜드 스타트업 ‘그리니스트 인터내셔널(Greenest International, www.greenest.kr, 이하 그리니스트)’의 시작은 ‘배신’에서 비롯됐다. 

좋아하는 패션이 세계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기보다 망가뜨리고 있다니! 세계 유수의 패션스쿨이자 ‘패션계의 MIT’로 불리는 뉴욕 FIT에서 패션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던 대학생 최하은 씨는 충격을 받았다. 

이런 패션을 계속하는 것이 맞나,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패션산업이 기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 싶었다. 

일반 패션브랜드는 하기 싫었고, 지속가능성을 내 사업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목표를 정했다. 패션계 전체에서 ‘지속가능성’이 당연시되도록 하자! 


▲최하은 그리니스트 인터내셔널 대표. [사진=그리니스트 제공]

지속 가능 패션브랜드 ‘그리니스트’

그리니스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Green’과 최상급을 뜻하는 어미 ‘-est’를 합쳐서, 지속가능성과 친환경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지향점을 회사명에 담았다. 

최하은 대표는 FIT 졸업 뒤, 패션의 메카 뉴욕에 머물지 않고 한국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직장인으로 남느니 힘들어도 현장과 부딪치면서 내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현지인보다 더 잘할 순 없고,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더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해서 해외로 진출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처음엔 한국 회사에 들어가 3개월 동안 인턴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정받았지만, 사업할 생각을 품고 있던 터라 겸직하고 싶진 않았다. 경력으로 몇 년 회사에 있다가 창업하느니, 망하더라도 좀 더 어릴 때 실패를 겪는 게 낫겠다 싶었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나만 할 수 있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2022년 그리니스트를 만들었다.”

목표가 명확했기에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기존 지속가능성을 내건 패션 브랜드 중에는 최 대표의 성에 차지 않는 곳이 허다했다.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을 하거나, 디자인이 구렸다. 자신의 ‘추구미(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나 가치 등을 뜻하는 신조어)’와 달랐다. 

덴마크의 지속 가능 브랜드 가니(GANNI)처럼 지속가능성에 기반을 둔 세련되고 예쁜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니스트는 근본부터 지속가능성을 장착하고자 했다. 친환경 원부자재부터 찾고자 발품을 끈질기게 팔았다.

물론 쉽지 않았다. 코엑스에서 열린 원단 전시회를 찾아 원단 회사들에 친환경 원단을 요청하고 동대문도 숱하게 돌아다녔다. 거절은 일상다반사였다. 극초기 브랜드에 수량도 적다는 이유 등을 들었다. 

해외로 눈을 돌렸다. 에르메스 등 럭셔리브랜드에 원단을 공급하는 원단사에 진심을 담아 메일을 보냈다. 

운 좋게도, 해외 공급사는 그의 진정성에 화답했다. 새옹지마였달까.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친환경 원단을 직수입하게 됐고, 연쇄적으로 라벨, 포장 등 모든 제조 공정에 걸쳐 좋은 거래처들을 만났다. 

지속가능성을 일관성 있게 무장한 브랜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력 덕분이었을까. 무작정 맨바닥을 헤딩했지만, 가치와 열정, 노력과 재능이 결합해 지속가능성을 향한 발걸음을 뗐다.

K-패션에 K-뷰티를 더하다

최 대표가 이와 함께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디자인이다. 일반 패션브랜드에 견주기 위해 가장 필요한 부분이었다. 또 지속 가능한 패션이 대중화되기 위해 꼭 넘어야 할 허들이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승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디자인 콘셉트는 ‘클래식’이다. 이 또한 지속가능성과 맥이 닿는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해야 지속가능성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 덕분이었다. 유행을 타면 그 시기가 지나면 옷장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속가능성과 클래식 디자인 등을 씨줄과 날줄로 엮은 그리니스트는 런칭 석 달 만에 미국 뉴욕 도어스(DOORS NYC)에 입점했다. 이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Sonderlab을 비롯해 독일 베를린 등에도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부터 화장품 사업에도 눈을 떴다. 인도네시아 바이어에게 자국 내 필요한 화장품 공급처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장품 유통을 몰랐지만, 특유의 에너지가 발동했다. 그리니스트는 K-패션에 K-뷰티까지 올라타게 됐다.

마침 내수 경기 침체 등으로 탈출구가 필요했던 시기였고, 최 대표는 여기저기 공급사들을 찾았다. 바이어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이 됐다. 

지난해 K-뷰티 붐을 타고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홍콩, UAE, 미국, 호주, 몽골 등 12개국까지 수출선을 늘렸다. 구매력이 좋은 바이어들도 만난 덕분에 지난해는 패션보다 뷰티 쪽 비중이 더 커졌다.

“나는 영업에 특화된 거 같다.(웃음) 이십여 명 바이어들과 자주 연락을 취한다. 스몰 토크를 스스럼없이 나누면서 친밀하게 지낸다. 이런 일도 있었다. K-팝을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바이어가 슈퍼주니어 콘서트 티켓을 구해달라고 부탁해서 이를 구해줬다. 이처럼 뷰티 쪽 바이어가 많이 생겼고, 바이어와 유대관계도 잘 형성됐다. 수출이 내수보다 좋은 게 확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뷰티 사업을 계획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수출 면장 쓰는 것조차 몰랐으나, 우연히 수출까지 이어진 셈이다. 

바이어도 수출상담회에 나가거나 무역협회, KOTRA 등의 바이어 검색을 통해 찾은 게 아니다. 해외 출장 가서 뷰티숍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혹은 해외 K-뷰티숍 등을 검색하다가 메일 등을 보내 연결됐다. 역시나 ‘맨땅에 헤딩’으로 발굴한 성과였다.

그리니스트는 현재 공식적으로 1인 회사에 가깝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다양한 사람과 업체 등과 협력한다. 사업 3년 차,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 대표는 그동안을 돌아보면 뿌듯한 감정을 느낀단다. 진심이 호응받으면서 전진하는 느낌 같은 것이랄까. 지난해 매출은 10억 원가량으로 매년 브랜드든 매출이든 성장이 눈에 보여서 창업을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니스트가 입점한 뉴욕 Doors NYC 편집샵 전경.  [사진=그리니스트 제공]

▲그리니스트가 입점한 인도네시아 Sonderlab 편집샵 전경.  [사진=그리니스트 제공]

지속 가능한 패션을 대중화하기 위해

그리니스트의 목표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대중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속가능성을 무조건 앞에 내세우진 않는다. 세련되고 예쁜데, 알고 보니 좋은 소재를 쓰고 기후와 환경에도 좋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마음에 들어서 샀다가 생각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다만 해외로 마케팅할 때는 한국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빠른 까닭에 이를 전면에 내세운다. 국내외 마케팅 포인트를 달리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선 지속가능성은 인식의 허들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에 ‘지속 가능한 패션브랜드’라고 했다가 ‘프리미엄 원단 브랜드’를 썼다고 바꿨다. 아직은 지속가능성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려는 측면도 있다. 

그리니스트는 처음부터 무조건 질 좋은 원부자재를 썼다. 사실 원단 등이 엄청 비싼 것도 아니다. 비용 측면에서 고민할 수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맞았다. 제대로 된 브랜드를 하고 싶어서 일관성 있게 제품 전체를 꾸렸다. 그래야 소비자들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것 같았다.”

올해 고환율, 경기 악화, 관세 전쟁 등 국내외 경제 상황이 만만치 않다. 최 대표는 일단 탄력을 받고 있는 화장품 수출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K-뷰티 전성기에 맞게끔 화장품 수출을 체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사업이 차츰 확장되고 있는 만큼 올해는 인력 충원이나 투자 펀딩 등도 신중하게 고려할 생각이다. 

이에 패션 분야는 하반기에 수출 등에 힘을 실을 계획이다. 그리니스트가 단순한 상품 브랜드가 아닌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공유하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이야기는 올해 어떻게 전개될까. 

한국에서 언젠가 덴마크 가니나 영국 스텔라 메카트니(STELLA McCARTNEY)와 같은 세계적인 지속 가능 브랜드를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


▲그리니스트 컬렉션 일부.  [사진=그리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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