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식

kimswed 2009.05.03 03:32 조회 수 : 1081 추천:255



베트남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한국인

75세 김봉식 옹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와신상담이라는 일화를 남긴 오나라와 월나라의 싸움에서 오 나라를 멸망시켜 월 나라의 치욕을 갚아준 충신으로 범려가 있다.
범려는 오 나라를 멸망시키고 월 나라가 부강해지자 나라를 양분해 주겠다는 월 나라 왕 구천의 제의를 뿌리치고 제 나라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야인으로 생활한다. 야인으로 생활하면서 뛰어난 이재를 발휘하여 큰돈을 벌어 주변사람에게 베풀며 행복한 노후를 보낸다. 

바로 그런 범려와 같이 한국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뒤로 하고 베트남의 따이닌 이라는 작은 도시로 와 농장을 경영하며 가난한 베트남 사람들을 도와주며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 김봉식(75세)옹을 만났다.
7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게 건강한 몸에 홍조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 김봉식 옹은 십여 년 전 한국의 부인과 사별하고, 2003년 베트남 여인과 재혼한 후 베트남 부인을 한국에 데려오는 대신 자신이 직접 처가가 있는 베트남의 타이닌 성으로 옮겨와 농장을 경영하며 생활하고 있다. “젊은 부인을 늙은이에게 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어찌 그런 젊은 부인을 가족과 생이별을 시킬 수 있겠소. 이미 자식들 다 키우고 한국에서 별로 할 일도 없는 내가 이곳에 오는 것이 좋겠다 싶어 2003년 타이닌으로 왔지.”

타이닌에 있는 처가의 땅에서 사탕수수와 고무나무를 재배하며 지내다가 동내 사람들이 팔겠다는 주변 땅을 부인 명의로 구입하여 대단위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그렇게 구입한 일부 땅이 마침 붐이 일어난 부동산 경기 덕분에 천정부지로 뛰어 올라 기대하지 않은 이익을 남겼다고 한다. 그런 돈으로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곤 하던 그의 소문을 듣고 감사의 인사를 하러 찾아온 타이닌 성의 관리로부터 마을에 필요한 건설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선뜻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아 공안 사무실과 다리, 마을 이정표 등을 세워주기도 했다. 또한 마을에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각종 식료품을 구입하여 무료로 나누어 주곤 하며 베트남에서 봉사하는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며 생활하고 있다. 지금도 마을에서 긴급 자금이 필요하면 일차로 김 옹을 찾아와 상의한다고 한다.

김봉식 옹은 한국의 대구 출신으로 아파트 건설과 유통업 등의 사업을 하며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의 유명인사 200여명을 회원으로 둔 낙동회라는 봉사단체의 회장을 10년 동안 역임하며 불우이웃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지난 2003년 베트남 부인과 결혼한 후, 한국에서의 모든 사업과 활동을 접고 베트남의 타이닌 성으로 와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시골마을이라 김 옹은 가끔 호찌민에 올라와 원로회에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며 지내고 있다. 원래 각종 봉사활동에 익숙한 김 옹은 호찌민 원로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뜻 깊게 활용 할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지난 년 말 원로회에 가입했다. 그 후 호찌민 원로회의 청으로 원로회의 운영위원을 맡아, 원로회의 정관을 새로 작성하고 조직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려 했으나 현 회장단과의 마찰로 수 개월 만에 별다른 이유 없이 운영위원에서 제명되었다는 통고를 받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필요하면 감투라고 씌워주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뜻에 어긋나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사퇴시키는 조직이라면 애당초 기대를 한 자신이 실수 한 것 같다며 은근한 푸념을 내놓는다.

김 옹은 “이제 70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지만 여생을 베트남에서 보내면서 한국인과 베트남사람들과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한국에서 각종 사업을 하며 얻은 경험을 기반으로 베트남에서 돈을 벌어 자신에게 젊은 생을 바친 부인과 그 가족들 그리고 지역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김 옹은 적어도 타이닌에서는 존경 받는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캄보디아 국경근방에서 공안에게 영문 모를 검문을 당하고 당황하고 있었는데 공안이 그의 여권을 받아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음료수를 내오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왔다는데 알고 보니 그가 지역에서 펼친 봉사활동이 지역관리에게 알려진 덕이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가더라도 쎄옴들이 오토바이를 태워주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벌써 베트남 생활을 시작한지 6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베트남을 조금 알 것 같다는 김 옹, 그 동안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활기와 보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베트남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남들은 다 “이 나이에 내가 뭘 새로 시작해” 하는 연세에 베트남으로, 그것도 큰 도시도 아닌 작은 시골마을에서 지내면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베트남 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살고 있는 김봉식 옹, 그의 용기와 삶의 열정에 고개가 절로 끄덕인다. 아마도 중국의 범려가 다시 살아난다면 바로 저 삶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삶이었다고 술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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