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를 모국어로 하는 프랑스 사람들마저 극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갈 수 있다는 세계최고의 명문 대학교인 그랑제꼴(석사과정)을 아무 특혜없이 그들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여 당당히 합격한 한국의 자랑스런 인재 김예진씨는 바로 우리 교민들의 자랑입니다.
이곳 베트남에서 자신의 미래를 가꾸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이글을 읽고 용기를 얻어 꿈과 희망이 있는 삶을 설계하기를 기대합니다.
또 다른 시작
글: 김 예 진
7월 13일. 수능때보다 더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姓의 3자리를 쳐주세요” “ KIM”. 이제 엔터만 치면 허무하리 만큼 간단한 결과가 나온다. 합격 (admis) 아니면 불합격 (non admis). 차이는 단지 Non 이라는 세 글짜다. 이 세 글자의 존재여부로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는 시간. 누른다. 창이 바뀌는 시간이 이렇게 긴줄 몰랐다. 열렸다. Admis, “ Non” 이 없다. 드디어 됐다. 중학교 때부터 목표로 세웠던 프랑스 그랑제꼴. 영어로 하자면 Selective Business Schools, 한국어로는 경영대학원.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가진 학교에 드디어 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가고 싶었던 비즈니스 스쿨. 응시하는 사람은 많아도 소수만이 들어갈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도, 내 실력이 뛰어나야만 인정받는 곳 에서 일하고 싶었던 나는, 의사, 변호사, 연구원 등의 직업의 유혹을 다 뿌리치고 결국은 비즈니스 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런 뒤 세운 첫 목표가 프랑스 그랑제꼴. 아시아와 미국이 따라올 수 없는 유럽의 교환학생 프로그램들과 프랑스를 이끄는 엘리트들을 만들어 내는 곳이라는 사실이 제일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제 시험을 위한 공부는 끝. 실전을 위한 공부라는 느낌이 들어서 감명이 새로웠다. 항상 딸을 믿어주셨던 부모님께서도 자랑스러워 하시는 모습을 보며 보람이 느껴졌다.
합격 후에는 새로운 삶에 대한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그 결과 베트남으로 돌아오자마자 심하게 아팠지만.. 푹 쉬라고 하시며 나가시는 부모님을 보며 처음으로 여유롭게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나의 외국생활 9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아버지의 사업으로 베트남에 오게 되었을 때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시장조사 차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호치민에 있는 학교들을 나열하셨을 때부터 이상하리 만큼 끌렸던 학교가 프랑스 학교. 그러나 부모님이 이끌어 주셔야 하는 나이에 혼자서 전혀 모르는 언어로 공부를 하겠다고 나서는 나를 보시며 부모님은 한국학교나 영어를 쓰는 국제학교를 권하셨다. 중1, 아직 혼자서 모든걸 계획하고 하기엔 어린나이이긴 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고집으로, 혼자 잘 할 수 있다, 새로운 언어가 꼭 하고 싶다, 유럽이 아직 한국인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불리한점이 있긴 하겠지만, 그만큼 여기에서 전문가가 되면 희소성 때문에 잘 될 수 있다 등, 그 나이에 나름 열심히 합당한 이유를 찾아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결국 부모님은 허락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베트남으로 이사를 온 것과, 프랑스 학교를 선택한 것이 내 인생에 제일 큰 전환점 이었던 것 같다. 두려움은 컸지만, 두려움과 함께 느껴졌던 기분좋은 설렘, 떨림. 그것들 때문에 힘든 것들도 다 견딘 듯 하다. 난 입학 시험 때부터 두번의 월반을 하며 프랑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많은 노력을 했어야 했다. 입학 시험을 준비할 당시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당시 세가지 시험을 쳤어야 했는데, 불어를 단 한번도 배워본 적이 없었던 나였기 때문에 적어도 1년은 공부를 해야 할것이라고 학교측에서 말을 했지만,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 6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할 테니 시험만 보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6개월 동안 두문불출 하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불어를 모르시는 부모님은 그런 내 모습에 도움이 못 되는걸 안타까워 하셨다. 시험날이 가까워 오던 하루. 부담감은 커져만 갔고, 열심히 하는데도 뭔가 부족한 듯해서 걱정이 가득했던 나는, 부모님 몰래 약국을 가서 약사 아주머니께 “잠이 안오는 약이요” 라고 말을 했다. 왠지 웃으시며 주시는 게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이걸 먹으면 잠자는 시간에 더 공부를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내가 몰래 뭔가를 먹는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 이유를 물으셨고,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약을 꺼내 보여드렸다. 그 순간 웃으시는 어머니, 내가 잠을 없애주는 약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것은 카페인이 약간 들었던 비타민제였던 것이였다.
그런 노력을 했던 만큼, 다행히도 좋은 결과를 얻어서 프랑스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좋은 환경에서, 꾸준한 노력, 가족 같은 선생님들, 그리고 항상 바른길로 가도록 인도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두 번의 월반이라는 쉽지 않은 일도 해내며 베트남에서의 중 고등학교 시절을 무사히 끝낼수 있었다. 항상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고 하시는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 첫번째 도전은 쉽지 않지만, 그 도전을 성공을 하게 되면 자신감이 붙고, 계속해서 도전을 할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나의 첫번째 도전의 성공 후, 새로운 목표인 그랑제꼴에도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그 목표로 가는 길이 얼마나 어렵던 간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가지고 있겠지만, 내 생각엔 공부는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다. 내가 해야 하는 공부의 양, 나는 여기에 가면 잠을 못자겠지, 여가 시간이 없겠지, 좋아하는 영화도 못보고 게임도 못하고.. 이렇듯 공부를 많이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그 공부가 무겁고, 힘든 짐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 같았다. 처음 그랑제꼴 예비학교에 들어갔을 때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시간표가 고3때보다도 더 힘든 것이였기 때문이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항상 기본이고, 쉬는시간은 없고. 점심시간도 여유롭지가 않았다. 말기 시험을 준비하는 kholle (일주일에 2,3 번 있는 선생님과 1대1 예비 말하기 시험) 이 있는 날에는 6시반, 7시에 끝나는적도 많았고, 저녁에 피곤해서 들어와도 그 다음날 있는 과제와 시험들로 정신이 없었다. 주5일제긴 하지만 주말에 놀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금물.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 10시에는 친구들과 버스정류장에서 만나서는 도서관으로 가서 저녁 9시가 넘도록 프레젠테이션과 과제를 준비 했다. 매일 저녁 숙소로 돌아오자 마자 곤죽이 된 몸으로 침대에 떨어지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던 건, 애초부터 시작할 때 공부 양에 관한 두려움을 다 떨쳐버려서 인 것 같았다. 나에게 있는 자신감은 다 꺼냈다. 이깟 공부, 한번 해보지 뭐. 공부가 제일 쉽다고도 누가 그랬는데 배부른 고민하지 말자. 어느 순간 그 생활에 적응 하면 또 나름대로 쉴 수 있는 틈이 생기게 된다.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인 것 같다. 아직 인생을 말할 만한 나이는 아니지만, 어린 나이 때부터 호치민의 학교 선정, 월반, 졸업, 대학교 선정, 그랑제꼴 들어갈 방법 선택, 시험 선택, 내가 가고픈 그랑제꼴 선정 등 혼자서 해야 할 선택들이 정말 많았다. 물론 모든 것이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던 선택이지만..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정보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낸다는 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고민을 하는 시간은 힘들고, 지치고, 그냥 아무렇게나 하고싶다는 유혹이 아주 크다. 그렇지만 사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것.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때 그때마다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여름 마지막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거의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님과 해외통화를 하며 의논했다. 프랑스 사람이 좋게 보는 학교라고 나에게 다 맞을까? 그것도 아니다. 그럼 유럽에 대하여 중심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로 가야 하나? 그것도 아니다. 난 유럽인이 아니니까. 전화, 메일, 대화, 전화, 메일, 대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결정을 했다. 매년 미국, 중국, 영국 등 여러 개의 대륙들의 뛰어난 경영대학원에 교환학생을 보내줄 수 있는 내맘에 드는 곳. 후회 안할꺼라고 믿는다.
외국생활 9년, 정말 많은 일이 있은 것 같고 또 후회없이 보냈던 시간인 것 같다. 이제 그랑제꼴 개강 날만을 앞두고 있는 지금. 앞으로도 전공 선택과 함께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겠지만, 다시 한번 도전하는 느낌으로 자신감있게 가봐야겠다.
자! 이제 또 다른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의 설레움으로 가슴이 뛴다. 떨린다. 그래도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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