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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wed 2007.11.17 15:49 조회 수 : 19828 추천: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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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당르우 거리 (Phan Đăng Lưu St.)

애국 혁명열사의 정기가 서려있는 거리

푸뉴언 (Phu Nhuan) 군과 빈탄 (Binh Thanh) 군을 아우르는 총 길이 7.5km의 6차선 양방향 도로인 팡당르우 거리는 오래 전부터 인구밀도가 특히 높은 빈탄군 지역 주민들과 호찌민 중심가를 비롯한 푸뉴언 군, 떵빈 군 등 각 지역을 연결하는 호찌민 시에서 가장 중요한 도로혈맥 가운데 하나로 이 거리 변으로 고급아파트단지, 학교, 병원, 은행, 시장, 슈퍼마켓 등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팡당르우 거리 (Phan Dang Luu St.)는 푸뉴언 (Phu Nhuan) 군과 빈탄 (Binh Thanh) 군을 아우르는 총 길이 7.5km의 6차선 양방향 도로다. 시 북쪽에 위치한 떵성녁 (Tan Son Nhat) 공항에서 호앙방투 (Hoang Van Thu) 스트리트를 따라 시 중심가 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푸뉴언 5 거리 (팡딘풍, 호앙방투, 팡당르우, 윙낌 St. 등이 만나는 곳)가 나온다. 여기서 팡딘풍 (Phan Dinh Phung)거리로 직진하면 하이바쯩 거리와 만나면서 바로 1군에 진입하게 된다. 한편 팡당르우 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 빈탄 군에 이르는데, 푸뉴언 5 거리에서 야딘 (Gia Dinh) 교회까지 (약 1km)는 행정구역상 푸뉴언 군에 속하는 지역이고, 그 이후부터는 빈탄 군에 속한다. 또한 이곳에서 다시 5km 정도 더 가면 바찌우 (Ba Chieu) 시장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는 밧당 (Bach Dang) 거리가 시작된다.

팡당르우 스트리트는 오래 전부터 인구밀도가 특히 높은 빈탄군 지역 주민들과 호찌민 중심가를 비롯한 푸뉴언 군, 떵빈 군 등 각 지역을 연결하는 호찌민 시에서 가장 중요한 도로혈맥 가운데 하나다. 현재 이 길을 따라 수십 개의 은행 (농업은행, 동아 은행, VIB 은행, ACB 은행, NAVIBANK, VIETINBANK, Nam A 은행, Sacombank, Phuong Dong 은행)과 교육기관(호찌민 미술대학교; 팡당르우 5번지, Dong Ba 초등학교, Ha Huy Tap 초등학교, Le Van Tam 중학교, Cao Ba Quat 초등학교), 병원 (야딘병원; 팡당르우 10 A, 콜럼비아 병원), 공원 (푸뉴언 문화공원; 팡당르우 49번지) 등이 들어서 있으며 그 외에 도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바찌우 (Ba Chieu) 시장, 시우티 Ha Noi (할인매장), 20층짜리 초호화 Botanic 아파트, 베트남 최대의 보험회사인 바오비엣 (Bao Viet) 본사, 롯데리아 등이 있다. 참고로 이 근처 Phan Xich Long (팡씻롱) 거리 주변으로 고급 주택지역과 미우노이 (Mieu Noi)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팡당르우 (Phan Dang Luu, 1902 ~ 1941년)

팡당르우는 1902년 5월 5일 애국심에 불타는 열혈 유학자의 집안에서 태어나 공산 혁명 열사로 순국한 베트남 인민의 영웅이다. 부친의 영향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한문 공부를 하였고, 그 뒤 빈 (Vinh)에 있는 불·월 (Phap Viet) 중학교에 다녔으며, 이후 후에 (Hue)와 하노이의 농업학교를 다녔다. 한편 1925년 경 빈푸 (Vinh Phu) 양잠국과 응에안 (Nghe An) 성, 지엔쩌우 (Dien Chau) 등에서 근무하는 동안 쩐푸(Tran Phu), 쩐반 땅(Tran Van Tang) 등과 같은 위대한 혁명 동지들을 만나게 되고 윙아이꾸옥 (Nguyen Ai Quoc, 호찌민 주석의 다른 이름)의 저서를 접할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지방 당국에서는 그의 사상을 의심하여 다랏, 빈딘 지방으로 전출을 보내 동태를 주시하다가 1927년 마침내 그를 해직시키고 만다.

이후 팡당르우는 신월혁명당 (Tan Viet Cach Mang Dang, 1928년) 창당에 참여하게 되고 거기서 당 상무위원으로 선출된다. 그 뒤 중국 꽝동으로 가서 베트남 청년혁명동지회와 만나 활동하다가 1929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그는 각 공산당 활동에 간여하다가 하이퐁에서 체포되었으며 이후 향리인 응에안 (Nghe An)에서 인도차이나공산당 집행위원회 중앙위원에 피선, 남부총궐기 주도 준비위원으로 사이공에 와서 활동하다가 1940년 11월 22일 마침내 체포되고 만다.

바로 이때 팡당르우는 윙반 끄 (Nguyen Van Cu), 보반떤 (Vo Van Tan), 윙티민카이 (Nguyen Thi Minh Khai) 등 기라성 같은 혁명 열사 등과 함께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에 의해 총살형에 처해졌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 (1941년)


△ 1. 바찌우 시장


△ 2. 콜럼비아 병원
    주소 : 01 No Trang Long,Q, Binh Thanh, HCMC
    전화 : 803 0678 (한국인 안내: 095-892-6400)


△ 3. 호치민 미술 대학교
    주소 : 5 Phan Dang Luu, Q, Binh Thanh, HCMC
     전화 : 416 010 / 412 691 / 030 237


△ 4. HONDA Service Center (혼다 서비스센타)
    주소 : 125 Phan Dang Luu, Q, Binh Thanh, HCMC
    전화 : 8 458 882


△ 5. MobilFone Center
     주소 : 26 Phan Dang Luu, Q, Binh THanh, HCMC
     전화 : 5 100 100


△ 6. Care Service Center (Care 컴퓨터 센터)
    주소 : 181 Phan Dang Luu, Q, Binh THanh, HCMC
    전화 : 9 900 000


△ 7. HD Bank
     주소 : 174 Phan Dang Luu,Q1, Binh Thanh, HCMC
     전화 : 84 8 995 0905 (4Line), Fax : 84 8 995 0906
     이메일 : info@gss-v.com


△ 8. FONE Mart (이동전화기 판매 센터)
    주소 : 172 Phan Dang Luu, Q, Binh Thanh, HCMC
    전화 : 9 954 880


△ 9. FIVI Mart
    주소 : 216 Phan Dang Luu,Q, Binh Thanh, HCMC
    전화 : 4 491 649


* 빈탄 (Bnih Thanh) 군은. . .

호찌민 시내 동쪽에 위치한 빈탄 군은 이전부터 A 국로, 13호 국로 등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빈러이 (Binh Loi) 교각을 건너 하노이-호찌민 행 열차가 호아흥 (Hoa Hung) 역에 들어서고, 미엔동 (Mien Dong) 버스정류장을 통해 동서남북 각 지역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가는 인구밀도가 대단히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지역상 빈탄 군은 남쪽은 1군, 서쪽은 3군과 푸뉴언 군, 고법군, 그리고 동쪽으로는 사이공 강과 투득 군 (총면적 2.056 핵타)과 접하고 있으며, 사이공 강은 물론 꺼우봉 (Cau Bong), 방탄 (Van Thanh), 탄다 (Thanh Da), 호따우 ( Ho Tau), 투딱 (Thu Tac) 등의 운하를 통해 빈탄 군 각 내륙지역과 근교에 물자가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다.

빈탄군은 1897년 탄다-빈구어이 (Thanh Da-Binh Quoi) 반도 주변 빈호아-탄미 (Binh Hoa-Thanh My) 지역 주민들이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에 맞서 용감히 항거하던 전략 요충지이기도 했다. 현재 탄다-빈구어이 지역은 뛰어난 자연경관을 이용, 호찌민 시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발전, 주말마다 수만 명의 여행객과 예비 신혼부부들이 찾는 호찌민 시의 대표적인 관광휴양지로 변모했다.

 

21세기자녀교육법 캐나다건 베트남이건 미국이건 외국에 와 고생하며 사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 해 좋은 삶을 갖도록 하는 것 외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신산업혁명으로 철저한 실력위주로 바뀌어 세가지 종류 직업뿐만 있게 된다. 고능력 고소득, 저능력 저소득 그리고 구조적 구직 불가능자(PERMANENTLY AND STRUTURALLY UNEMPLOYABLE)라 해 영원히 취직될 수 없는 이들 즉 구중산층을 얘기한다. 산업혁명이 중산층이라는 계급을 만들어냈으나 신산업세계에서는 폭발적인 생산성 증가로 가공 할 만한 지식으로 무장된 고능력자가 독점적으로 富를 차지하고 택시 운전 등 기계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저능력 저소득자가 되며 산업시대에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사회의 무용지물이 되어 영원한 실업자라는 소리이다. 신산업혁명의 거친 파도는 이 파도를 이용하는 나라는 호경기로 그리고 이 변화에 준비를 안한 일본 등을 구조적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대원군 시절 산업혁명이 갖고 온 개화를 한 나라만 살아 남았듯이 지금 우리 아이들도 이 물결에 탑승을 못하면 살아 남지 못한다. 친일파이었지만 어쨌던 김옥균이 갑신정변을 통해 조선을 산업사회로 바꾸려 할 때 자녀들을 신식교육 시킬 생각은 안하고 이 서당이 좋은지 저 서당이 과거 합격율이 높은지 따지다 과거제도가 조선에서 없어지며 서당교육 받은 이들은 모두 다 낙오 되었다. 새 물결을 못타면 애들은 낙오한다. 대부분들은 아이들 세대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교민 학생들은 다음을 생각해보면 한다. 한국이나 베트남 대학이 아닌 영어권 대학을 생각하는 학생들의 최우선 급무는 물론 영어다. 꼭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한가하게 회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해야 하는 고급영어를 필요로 하며 말하고 해독 하는 것 못지 않게 제일 중요한 것은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숙제이건 보고서이건 끊임없이 써야 하고 사회생활 중 제일 중요한 능력은 통신과 대화 즉 Communication인데 서양 문화는 쓰는 것에 바탕을 둔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써서 발표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사실 한국계가 제일 부진한 면이 이 영어 작문이라 사회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해 학위를 따고 또는 변호사 등이 되어 미국에서 생활하다 한국으로 많이 돌아가는데 그 친구들 말로는 인종 차별이니 고국에 돌아가 뜻 있는 일을 하겠다느니 애들 교육때문에 돌아가겠다느니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영어 특히 쓰는 쪽이 약하므로 조직에서의 장래가 뻔하고 뚜렷한 대안도 없으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영어 공부 하는 방법은 다른 기회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문법, 단어 외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름은 영어식으로 바꾸지 말고 원래 한국이름을 그대로 쓰라.  소수민족의 자부심 또는 다민족문화등의 이유로 북미에서 태어난 비영국계들도 이태리, 폴란드등 유럽이름을 그대로 많이 쓰며 또한 여기 사람들도 본인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 도대체 왜 당신네들은 이곳으로 이민을 왔다고 밸도 자존심도 없이 부모가 준 고귀한 이름을 버리고 마이클이니 제임스니 하는 이름을 쓰는가? 우리가 어떻게 되어 한국이나 중국으로 이민을 가더라도 부모님이 내게 주신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을 쓰지는 않겠다. 내 이름도 이들에겐 발음이 결코 쉽지않은 광열이라는 이름을 Kwangyul로 표기하는데 '쾅율'이라고 불려지며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하고 있으며 오히려 독특한 이름때문에 덕을 보는 경우가 더 많다. 1993, 1997, 2004 캐나다 연방 총선거에도 집권당 후보 백광열로 나갔다. 필자 아들은 기선 (Ki-seon) 딸은 기은 (Ki-eun) 한국이름을 그대로 쓰며 아무 지장 없이 학교 다니고 있다. 아무리 발음이 어려운 한국이름이라도 가능한한 근접하게 불려지므로 구태어 다른 영어식 이름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조금 어렵더라도 컴퓨터와 수학, 물리, 화학 등 자연과학 분야의 계속적인 탐구를 하라. 모든 서양학문은 철학에서 시작해 뉴튼 물리학(Newtonian Physics)으로 꽃을 피우고 다시 여러 분야로 갈라져 나간다. 믿기 어렵겠지만 경제학의 모든 원리와 이론은 100% 물리학에서 비롯된다. 필자가 경제학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수학을 많이 다루며 물리학과 상이해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과 과목이 점수 따기도 수월하지만 요즘같이 과학화 되어있는 시대에 이과과목을 수료해 놓으면 대학에서 또 사회생활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은 무조건 많이 읽어라. 학교공부도 중요하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기 위해 우리 책을 읽어야 하고 또 서양 사람 들과 상대하기 위해 서양권 책들을 본토 학생들 이상 봐야 하는데 쓸데없는 중고등학교 때 학교의 주입식 교육에 매달리는 것은 전혀 쓸모가 없다. 21세기에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가는 사람들은 최소한 직업, 즉 일자리가 아닌, 직업 자체를 네 번 바꾸어야 한다. 캐나다에서 800만명이 자택근무 즉 집에서 자료통신망 깔고 일을 한다. 독일 연방문교부 교육정책을 보면 신산업혁명은 시간과 거리의 개념을 파괴시켰다 한다. 회사가 시간 차이 8시간씩 나게 지구 세 지점에 있고 인터네트 연결이 되어 있으면 서울에 있는 직원이 퇴근하면 뉴욕 직원이 일을 하고 다시 런던 직원이 출근하면 진전된 그 일을 계속하게 되니 시간 관념이 없어졌으며 사실 이렇게 일을 하는 곳이 요즘 많으며 본인도 아침에 일어나면 도대체 내가 지금 어느 나라에 있는지 전혀 생각이 안날 때가 있다. 스카이피라는 인터네트 무료 국제 전화, TV, 급기야는 홀로그램(3차원 영상 이미지)까지 10여년전 M.I.T. 대학에서 성공적으로 송수신 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의 3차원 모습이 그대로 안방에 들어와 마치 물리적으로 같이 있는 것과 똑같이 될 날이 얼마 안 남았으며 국제 통신은 이미 시내전화 가격 이하로 떨어져 거리라는 개념이 없어졌다.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무슨 방법으로 애들을 가르쳐야 하느냐가 이 독일 문교정책이 찾는 쟁점이며 독일의 생사는 교육과 과학의 연결에 있어 독일 교육부는 사실 이름이 교육기술부이고(MINISTRY OF EDUCATION AND TECHNOLOGY) 흔히들 미래담당부서(MINISTRY OF FUTURE)라 한다. 꼭 강조하고 싶은 점 하나는 캐나다이건 미국이건 인종차별은 없다. 배타성은 있을지 몰라도 원체 많은 인종이 섞여 사는 데 익숙한 북미는 개인적인 인종차별은 없다.  인종차별 운운하면 북미생활에서 패한 사람이다. ******* 글 : 한 영 민 요즘 한창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다. 지난 10년 간에 해놓은 것은 없고 남들은 다 발전을 하는데 우리만 정체되고 뒷걸음 친 기간이라는, 즉 제대로 일 한번 못하고 사라진 10년이라는 뜻으로 작명을 한 것 같은데 이 말을 그대로 받아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 얘기하면 내가 찾아주겠다고 나서는 양반도 있다.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무식이 낳은 해프닝이다. 10년이라는 세월을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찾아주겠다는 말이 논리에 맞는 말인가? 누가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저 잘사는 사람들,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 그리고 땀 흘려 돈 번 사람들을 저주하며 이를 갈던 양반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도 생각지도 않던 자리에 오르니 뭣을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 대다 세월만 까먹고 나서 임기가 다 되고 나니 그래도 뭔가 한 일이 있다는 듯이 왈왈대는 모습은 집 지키라는 강아지가 도둑이 들어올 때는 딴청을 하다 집안을 다 털리고 나서 나중에 주인이 들어오니 그제서야 짖어 대는 꼴과 같다. 세상에 가장 미련하고 너절한 방법이 무작정 부딪치는 것이다. 뭔가 일을 하는데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저 막연히 시도하는 것인데 물론 뜻을 이룰 가망성이 그만큼 적어진다. 준비를 한 사람은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확률도 높지만 자신의 실패와 성공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안다. 처음부터 성공에 대한 목표와 계획 그리고 준비가 있었기에 나중에 도출되는 결과가 자신의 뜻과 일치하는지 즉각 알아볼 수 있지만 준비하지 않는 자는 이루어도 실패해도 그것이 실패인지 성공이지 조차 가름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보면 성공이고, 저렇게 보면 다 실패로 남는다. 준비가 없었던 터라 무엇을 이루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조차 모른다. 골프를 치겠다고 나서며 준비하지 않는 자, 골퍼로서 가장 부끄러운 부류다. 요즘 필자의 행태가 그렇다. 뭔가 좀 번잡한 일에 쫓기기 시작하며 골프장을 찾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더니 그나마 가끔 골프장을 찾는 시간마저 준비도 없이 그냥 넙죽 다가선다. 무심히 골프가방과 옷 가방을 챙겨 들고 나서지만 번번히 뭔가가 빠진다. 꾸준히 애용하던 퍼터가 엉뚱한 것으로 바뀌어 있기도 하고, 공도 칠만한 것이 없다. 하다못해 티를 챙기지 못해 공을 손에 쥐고 티를 달라고 동반자를 쳐다보는 기본이 안된 짓거리를 하기도 한다. 연습 스윙 한번 해보지 않고 올라선 티 그라운드가 낯설어 보이는 것은 나무나 당연하다. 공이 제대로 달리지 않아도 실수인지 실력인지 판가름이 안 된다. 내가 공을 치는 것이 아니고 공이 나를 끌고 다닐 뿐이다. 준비하지 않는 참여 정부는 개 거품을 물듯이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골프태도는 고칠 줄을 모른다. 남의 눈의 티끌과 내 눈의 대들보 더냐? 준비하지 않은 골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절대로 스코어도 잘 나올 수 없다. 7이던 핸디가 급기야 12까지 떨어졌지만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라운딩을 마치고 난 후 모자라던 준비물 다시 챙기지 않는 것을 보니 아직 좀 더 터져야 할 모양이다. 골프에 관한 한 진행형인 잃어버린 세월이다.   골프를 어찌하면 잘 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우문에 현답인양, 그런 방법이 있으면 내가 여기 있냐 하며 비아냥거리지만 사실 그 질문이 우문은 아니다. 대답이 우답일 뿐이다. 여기 답이 있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하여는 목표와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각오가 필요하다. 이것이 골프를 잘 치는 방법이고 준비다. 골프를 잘 치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만을 내세우지 말고 얼만큼 잘 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세워보라.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어떤 것을 수행해야 하는 지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 싱글 골퍼가 되기 위하여는 적어도 6개월 동안 일주일에 5일은 골프연습장을 찾아 200개 이상의 공을 정성컷 때려야 한다. 그리고 이론과 맨탈에 관한 골프 서적을 10권 정도는 읽어야 한다.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스윙을 봐줄 스승 한 분을 모셔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골프를 잘 치기 위한 계획이다.   이렇게 계획한데로 실행하면 그대는 싱글 핸디캡퍼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골프뿐만 아니라 사업도,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려면 가장 먼저 목표를 세워야 하고 그 다음 구체적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왜 그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지 절박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목표는 높이 잡고 구체적 계획을 상세히 세워도 그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당연하고 절박한 이유로 무장된 마음이 없다면 이루어 지는 것은 없다. 마음이 무장되어 있는데 목표가 없다면 마음만 혼란해 진다. 잘 치고 잘 살겠다는 막연한 목표는 있는 데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 방법을 세우지 못하면 시행착오로 얼룩진 헛 세월을 보낸다.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도 나온다. 실현 가능한 목표와 실행 가능한 계획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다짐, 이 세 가지의 준비가 다 필요하다. 오랜 세월을 골프채를 만진 우리 친구, 아직도 90대 중반의 골프를 치고 다니며 뭔가 부족한 자신의 골프 환경에서 답보 상태의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부족한 것은 골프환경이 아니다. 그에게 진짜 부족한 것은 골프에 대한 정열과 애착이다. 정열과 애착이 있다면 목표도 세우고 계획도 만들어 낸다. 그저 목표도 계획도 없이 막연히 닥치는 데로 대하다 보면 20년 가까이 골프를 쳐도 핸디가 20 이하로 줄지 않는다. 잃어버린 20년이다. 그러나 세계 90%의 골퍼가 그렇다고 하니 너무 자책한 일은 아니다. 물론, 자랑할 만한 일은 더욱 아니다. ******** 글 : 한 영 민 눈이 뱅뱅 돌듯이 돌아가는 청룡열차를 타는 거의 모든 승객들은 어린이 어른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모두 눈을 꼬옥 감는다. 평평한 평지 위를 달릴 때는 가끔 눈을 뜨지만 급격한 곡선을 내 달릴 때면 어김없이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눈을 가리거나 감는다. 몸에는 안전벨트가 매어져 있고 이미 안전한 놀이기구라는 검증을 거친 청룡열차지만 눈을 거쳐서 뇌에 전달되는 신호는 불안하기만 하다. 눈을 감는다고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눈을 감아 그 위험의 신호를 차단한다. 교통사고를 맞이할 지경에 이르는 순간 뛰어난 순발력과 냉철한 가슴으로 그 위기를 피하는 것은 남자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 어머 난 몰라” 하며 눈을 감아버린다. 눈을 뜨고 있으면 피할 수 있는 사고를 눈을 감아 버려 더욱 심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왜 눈을 감을까? 어둠은 공포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가? 공포를 앞에 두고 어둠으로 향하는 행위, 이렇게 눈을 감는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최근 들어 정말 아예 눈을 감고 싶은 일들이 주위에서 자꾸 일어난다. 뭔가 잊고 싶어서, 정말 벗어나고 싶어서 눈을 감아본다. 다시 눈을 떠 세상의 부조리를 보지 않을 것처럼 꼬옥 눈을 감아 본다. 처음에는 치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이빨을 악물고 눈을 부릅떠 보지만 분노는 더욱 커질 뿐이다. 화병으로 사람이 애가 끊어진다고 하더니만 정말 애간장이 녹는 분노가 있을 수 있구나 싶다. 새끼가 잡혀가는 것을 본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따라 강을 따라가며 울부짖다 죽었다. 그 몸을 해부하니 애간장이 다 까맣게 타 버려 죽었다고 하더니만, 안타까움과 분노가 멀쩡한 생물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절감된다. 그래서 포기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있으면 감당할 수 없는 분노에 심장이 녹아 내릴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보았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 동안 세월의 한 구석에 희미한 흔적만 남겨 두었던 우이동 계곡의 맑은 개울물과 그 투명한 가을물을 한가롭게 헤엄치던 철없던 송사리들, 오만하고 도도한 붉은 낯빛으로 개울가 바위를 채색하던 가을 단풍잎 그리고 다정히 머리를 맞대고 있는 쌍둥이 밤송이의 정겨운 속삭임이 현실의 시각을 대신하여 슬며시 다가선다. 혼란하던 분노의 감정 위에 한가로운 가을풍경이 오버랩 된다.   어느 책인가 예전에 본 기억이 있다. 누구의 어떤 책인지 생각나진 않지만 그 첫 문장은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당신에게 잠시 눈을 감으라고 권하겠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왜 눈을 감으라 했을까? 감성의 눈, 내면의 안목을 열라는 소리다. 시각은 사고를 지배한다고 한다. 시야를 통해 전달되는 신호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되어 다른 감각기관의 신호를 방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감각이 필요할 때 가장 강렬한 영향을 주는 눈을 접어 둔다. 콘트라 베이스가 솜사탕처럼 깔리는 음악을 들을 때, 부드러운 실키 스킨의 촉감을 느끼고 싶을 때, 정성 들여 만든 디저트를 한 입 가득 담고 그 달콤함을 느끼고 싶을 때 우리는 눈을 감는다. 오래 전 헤어졌던 애인의 얼굴이 그리울 때, 또 그녀의 향기를 기억하고 싶을 때도 우리는 눈을 감고 현실을 떠난다. 눈을 감는 행위는 시각적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안겨준다. 책상 앞에서 일을 하다 눈을 감아보라. 우리는 그 순간 책상 앞의 현실을 떠나 공간을, 시간을 자유롭게 이동한다. 어린 시절 한국의 가을을 만나고, 연로하신 모친과 다정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그 현실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움직인다. 눈을 감으면 현실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마치 비디오 필름의 멈춤 버튼을 누른 듯이 모든 현실은 그 상태로 정지되어 버린다. 여성 운전자가 사고를 마주하는 순간 눈을 감아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현실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것이다. 눈을 감음으로 현실로부터 해방되고 끔직한 사고는 더 이상 다가서지 않는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감각기관의 교차 만을 유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너무나 확실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시각적인 신호를 대신할 감성적 사고를 깨워낸다. 내면의 세계에 있던 원래의 자리로 나 자신을 돌려 보낸다. 마음으로 사고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자아를 불러낸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시각적, 현실적인 정신 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끔은 눈을 감고 가슴으로 만 보이는 내면의 정신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왜” 라고 묻고 “때문에” 라고 대답하는 이성적인 논리는 눈으로 보고 머리로 사고하는 시각적, 현실적인 정신이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만나는 감각적, 내면의 사고는 느낌으로 질문하고 가슴으로 대답한다. 날카로운 눈과 냉철한 사고는 분노를 삼키지 못하지만 섬세한 느낌과 따뜻한 가슴은 분노도 그저 사랑과 같은 감정의 하나일 뿐이라고 일깨워준다. 사랑을 즐길 수 있다면 분노마저 즐길 수 있는 거라고..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너무 힘겨울 때가 있다. 태양처럼 이글대며 쏟아지는 세상의 무게에 몸이 저릴 때 태양을 향해 눈을 부릅뜨는 것 대신 가만히 눈을 감아보라. 천천히 눈을 감고 내면의 세계로 침잠하여 보라. 눈 한번 감음으로 태양은 사라지고 내가 드러난다.   어쩔 수 없이 벽에 등을 기대고 주르르 주저 않을 수 밖에 없는 절망의 순간에도 그저 눈 한번 감고 있는 것 만으로 얼마나 많은 위로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 눈을 감아야 만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산다. 육신의 눈을 감고 마음의 눈을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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