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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급분야 | 화훼 원예 및 채소 원예 |
‘킬링필드’ 주역 폴 포트 생애 살펴
프랑스 유학 때 싹튼 폭력혁명론에
금욕주의 포개져 세기의 비극 잉태
〈폴 포트 평전-대참사의 해부〉
필립 쇼트 지음·이혜선 옮김/실천문학사·2만3900원
폴 포트(1925~1998·사진)라는 이름은 악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악몽이다. 이 캄보디아 공산주의 지도자의 이름은 즉각 ‘킬링 필드’와 연결된다. 100만명이 넘는 캄보디아 인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이 대참사의 책임은 오로지 폴 포트 한 사람에게 돌려진다. 반공 진영이 만들어낸 이 극악한 신화의 이미지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 신화는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일까? 폴 포트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일까? 영국 언론인 필립 쇼트가 쓴 <폴 포트 평전>은 20세기 후반 캄보디아 비극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폴 포트를 면밀히 살펴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1970~80년대에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주로 활동했던 지은이는 집권 2년 뒤인 1977년 중국을 방문한 폴 포트를 처음 가까이서 보았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 폴 포트의 매력과 카리스마, 초연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인물은 캄보디아를 광기의 도가니로 빠뜨린 사람으로 드러났다. 뒷날 지은이는 폴 포트가 이끌던 무장조직 크메르 루주(붉은 크메르)의 본거지까지 들어가 이 조직의 핵심 인사들을 오랜 시간 인터뷰했다. 거기에 방대한 자료를 더해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에 관한 역사를 구성했다.
폴 포트의 본명은 살로트 소르다. 이 책은 평범한 남자 살로트 소르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이념가 폴 포트가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살로트 소르의 젊은 시절은 ‘뚜렷한 특징 없음’을 특징으로 한다. 다소 여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9살 때 불교 국가의 전통에 따라 1년 동안 절에서 사미승 노릇을 했다. 지은이는 불교야말로 훗날의 폴 포트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 사상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다. 절을 나온 살로트 소르는 프랑스 신부들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웠다. 어린 시절 살로트 소르는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10대 소년은 예의 바르고 유머 감각이 있고 잘 웃었다. “병아리 한 마리 해치지 못하는 아주 귀여운 아이”였다. 24살의 살로트 소르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파리에서 캄보디아 유학생들과 어울리면서 그의 정치의식은 서서히 깨어났다. “크메르 루주의 대참사를 설계한 살로트 소르와 그의 동료들은 모스크바나 베이징이 아닌 파리에서 그 이념의 토대를 세웠다.” 1951년 살로트 소르는 ‘마르크스 클럽’에 가입하고 얼마 뒤 프랑스 공산당에 들어갔다.
지은이는 폴 포트와 그의 동지들의 정신세계를 만든 것으로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 그리고 프랑스혁명 사상을 든다. 그들은 스탈린이 1938년에 쓴 <소련 공산당 역사>를 읽었다. 그 책에서 스탈린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건강한 몸에 생긴 질병을 가만히 두지 않는 것처럼 당내의 기회주의자를 묵인하지 않는다.” 마오쩌둥이 쓴 ‘신민주주의론’도 읽었다. 마오의 논문에서 그는 캄보디아와 같은 농업국가가 곧바로 사회주의 혁명을 이룰 수 있다는 이론적 보증을 얻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지식이었다. 살로트 소르는 어느날 파리 헌책방에서 크로폿킨이 쓴 <프랑스 대혁명>을 구해 탐독했다. 거기서 그는 세 가지를 얻었다. 첫째, 혁명을 위해서는 지식인과 농민이 연대해야 하고, 둘째, 혁명은 타협이나 중단 없이 끝까지 진행돼야 하고, 셋째, 평등주의야말로 공산주의의 요체라는 것이 그가 찾아낸 핵심이었다.
1953년 조국에 돌아온 살로트 소르는 무장저항조직에서 활동하다 1963년 캄푸치아노동당 서기장이 됐다. 그리고 12년 뒤 그는 프놈펜을 장악하고 혁명정부를 출범시켰다. 지은이는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이어진 대참사의 원인으로 먼저 1970년 이래 계속된 미국의 무자비한 공습을 지목한다. 캄보디아 밀림에 미국은 50만톤이 넘는 폭탄을 쏟아부었고, 이로 인해 수십만명의 캄보디아인이 살육당했다. 공포에 질린 농민들은 도시로 피난했는데, 1970년부터 5년 동안 수도 프놈펜 인구는 65만명에서 250만명으로 폭증했다. 폴 포트 정권은 미국의 무차별 공습 시기에 급속도로 과격해지고 폭력화됐다.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의 폭력적 요소가 그대로 실천될 토양이 갖추어졌다.
도시는 부패했고 오직 농민만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고는 대참사를 키우는 이념적 원인이 됐다. 수백만 도시민을 가차없이 소개해 농촌으로 내려보낸 것이다. 수십만명이 이 과정에서 굶어죽고 병사했다. 지은이는 폴 포트 정권이 인류사의 새 이정표를 세우고 싶어했음을 강조한다. 지상에 유토피아를 세우려 했던 것인데, 그것은 모든 도회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을 말소한 상태를 가리켰다. 지은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소승불교의 사상으로 변형한 것이 폴 포트의 이념이었다고 말한다. 폭력혁명론에 입각해 불교의 금욕적 삶을 철저하게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수한 이념은 악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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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ABA 컨소시엄 하노이 대형건설사업 ‘우선 협상자’로 선정 |
한국 ABA컨소시엄(대표 권혁준)은 지난 30일 하노이 신도시에 들어설 5억달러 규모의 대형 주상복합빌딩 건설사업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당일 ABA컨소시엄 관계자는, “국영석유공사(페트로베트남)가 국제경쟁 입찰을 통해 실시한 하노이 트리엠 구 메찌 지역의 ‘X3’ 부지(3.5㏊) 프로젝트 개발사업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됬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최종내용 협의 절차를 거쳐 빠르면 다음 달 중으로 합작회사(JVC) 계약을 체결한 뒤 본격적인 시공에 따른 TF팀 구성 등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분은 ABA가 71%를, 나머지 29%는 페트로베트남측이 갖게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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