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사는 식품을 수출하는 업체인데, 미국 바이어 P사와 독점공급계약을 체결하고자 했다. P사에서 보내온 계약서에는 ’분쟁의 해결 (Dispute Resolutions)’ 조항에 미국뉴욕법원과 뉴욕주법을 관할지와 준거법으로 명기했다. 해외업체와 계약을 체결해본 경험이 없는 O사는 관할지와 준거법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한국무역협회 Trade SOS에 질의했다.
계약의 체결 및 그 이행과 관련하여 당사자 간에 다툼(disputes)이 생길 수 있고 이러한 다툼이 우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소송 등을 통하여 법적인 해결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법적분쟁). 이 경우 계약의 당사자는 어디서 분쟁을 해결할 것인가를 미리 정할 수 있다. 이 ‘어디’에 해당하는 것이 관할지(jurisdiction)이다. 또한, 분쟁 시 어떤 법을 근거로 그 분쟁을 해결할 것인가를 정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이 분쟁 시 근거가 되는 ‘어떤 법’에 해당하는 것이 준거법(applicable law)이다. 즉, ‘어디서’, ‘무슨 룰’에 따라서 싸울 것이냐가 관할지와 준거법이다.
분쟁 시 관할지와 준거법은 소송전략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고 많은 비용이 야기될 수 있은 부분이므로 계약체결 시 나에게 유리하도록 매우 적극적으로 협상해야 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어디서 싸울 것인가’ 이슈인 관할지는 법원(court) 또는 중재소(arbitration centre)를 의미한다. 법원은 그 판결(court decision) 자체가 해당 국가에서 법적인 구속력을 가진다. 예를 들어, 한국에 거주하는 피고(고소를 당한 자)에 대한 한국법원의 손해배상 판결은 그 피고를 상대로 집행력을 가진다. 즉, 피고는 그 판결에 따라 원고(고소를 한 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며, 이를 행하지 않을 때 관할법원(관할지)은 피고 재산의 압류 등의 집행을 명할 수 있다.
중재소의 중재결정(arbitration awards)의 경우 그 법적 구속력 및 집행력이 법원과 다를 수 있다.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의 사법부의 판결은 그 자체로 그 국가의 구성원인 피고를 강제할 수 있으나 중재결정은 그 자체로는 법적 강제력을 가지지 않는다. 이 결정이 법원의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것은 당사자 국가 간의 국제협약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뉴욕협약(Convention on the Recognition and Enforcement of Foreign Arbitral Awards, New York 1958)은 협약국의 중재소 결정을 피고국가의 법원에서 집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협약국 중재소의 결정이 자신의 국가의 법원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싸울 것인가에 해당하는 준거법은 일종의 경기규칙 같은 것이다. 계약당사자는 계약체결 시 분쟁이 발생하면 어떤 규칙에 따라 분쟁을 해결할 것인가를 정할 수 있는데 그 근거되는 규칙을 선택하는 것을 ‘choice of law’라 하며 선택하여 적용되는 법률을 준거법이라 한다.
관할지와 준거법은 위와 같이 선택할 수도 있으나 아예 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해당국가의 법률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그 관할지와 준거법이 무엇인지를 분쟁의 당사자가 다투고자하는 법원에서 주장해야 하며, 그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그 법원에서 당사자 주장하는 법에 의거하여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절차를 피하고 보다 명료한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관할지와 준거법을 미리 정하는 것이 유리함은 당연하다.
또한, 관할지와 준거법이 반드시 같은 국가의 것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한상사중재원(Korean Commercial Arbitration Board(KCAB))을 관할지로 하고 적용되는 준거법은 한국법이 아니라 싱가포르법, 또는 미국뉴욕주법으로 정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따라 해당 중재인(arbitrator)을 모셔 와야 하므로 중재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
O사는 상대방인 미국업체 P사와 관할지의 선택을 놓고 협상 중이다. O사는 위의 설명을 듣고 관할지의 중요함을 깨달았고, 상대방이 제시한 관할지를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그 후, O사는 미국 뉴욕주 법원, 한국 서울의 법원 및 국제적으로 여러 중재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 관할지를 정하는데 있어서는 어디를 관할지로 정해야 하는지, 어디를 관할지로 하는 것이 나에게 최대한 유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을 내릴 수가 없어서 관할지를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다시 질의했다. 또한 형평성에 있어서 Singapore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re(SIAC)이 매우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이를 중재지로 정하면 갑에게 유리한지도 물었다.
관할지의 선택에 대한 결론은 사실 간단하다. 나에게 유리한 곳을 관할지로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동의를 하는가가 가장 주요한 방해요소이고,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유리한지를 판단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관할지 선정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며 주로 다음의 사항을 복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관할지의 공정성과 합리성 = 국가 또는 지역에 따라 자국민을 먼저 위한다든가 외국업체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판결하는 법원은 존재한다. 그런 경험을 해본 업체도 많을 것이다. 또한, 그 절차, 판결, 집행의 과정이 비합리적이거나 비효율적인 법원 또는 중재원도 있다. 주로 후진국의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관할지는 그 관할지의 불공정성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즉, 팔이 안으로 굽는다)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계약서를 나에게 유리하게 썼어도, 나에게 불리한 비논리적이고 자의적인 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
●비용 = 관할지의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현실적인 이슈가 비용이다. O사가 미국 바이어 P사와 계약한 금액은 선적당 액수는 미화 3만~4만 달러 정도(지불조건은 3개월 신용)이며 이전 공급에 대한 송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선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고 상품에 대한 피해보상은 제공한 물품의 금액을 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실제 계약당사자간의 클레임 총액(즉, 소송에서 청구할 금액)은 최대 4만 달러일 것이다. 이 경우, 공평하고, 절차적으로도 매우 효율적인 SIAC이 갑에게 또는 그 상대방에게 좋은 관할지일까?
세계 곳곳에는 잘 알려진 중재기구가 많다. 런던이나 파리의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ICC), 싱가포르의 Singapore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re (SIAC) 또는 홍콩의 Hong Kong International Arbitration Centre (HKIAC) 등 그 형평성, 절차적 효율성, 전문성, 중재인의 수준 등으로 명성이 있는 중재소는 많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매우 비싸다는 것이다. 대부분, 중재조항에 따라 1심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지만, 기본적으로 국제중재기구는 ‘user pay’의 개념이다. 즉, 중재를 하기 위해서는 중재인을 비즈니스 클라스 이상의 비행기로 모셔 와서 좋은 호텔에서 먹이고 재우고, 중재 장소의 사용료를 내는 등 중재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사용자가 낸다.(각 중재센터의 중재비용은 해당 센터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변호사비용도 엄청나다. 위 중재센터의 중재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중 시간당 100만 원이 넘어가는 변호사가 수두룩하다. O사가 SIAC을 중재지로 선정하는 것을 문의하였는데, 3만~4만 달러의 청구액을 받기 위해 SIAC은 너무 비싼 곳이다.
물론 이겼을 때에는 거의 대부분의 비용을 받을 수 있지만 상대방이 지불능력이 안 되거나 내가 패소한다면 큰 낭패다. 패소할 경우, 중재비용뿐만 아니라 내 변호사 비용 및 상대방의 변호사 비용도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상대방 또는 내가 제3자를 통하여 소송비용을 펀딩 받은 경우(Third Party Funding) 패소한 측에서 그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중소기업의 경우, 해외 제3국의 유명국제중재소를 관할지로 추천하지 않는다.
●집행가능성 = 중재소의 결정이 판결의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중재결정문을 근거로 피고의 국가법원에서 집행(enforcement)을 신청하여야 한다. 이 집행이 자동으로 가능하려면 중재소가 위치한 국가가 1편에 언급한 뉴욕협약의 가입국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집행을 구하는 국가의 법을 검토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대만은 뉴욕협약국이 아니며 상대방 국가가 대만의 판결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 상대방 국가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상호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므로 비용이 싸다고, 또 그 법이 나한테 유리하다고 무조건 관할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관할지 선택의 전략 = 관할지는 대부분의 경우 자국의 법원 또는 중재센터가 유리하다. 멀리가지 않아도 되므로 비용이 절약된다. 특히 국내 기업의 경우, 국내법원이 그 비용이 제일 저렴한 편이다.
또한, 대한상사중재원(KCAB)은 다른 유명 국제중재센터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변호사 비용도 유명중재센터가 위치한 국가보다 싼 편이다. 또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국내 법원이나 중재센터의 형평성은 국제적 수준이다. 국내기업이라고 편애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실무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상대방이 동의할 것인가이다. 대부분 자국을 관할지로 원한다. 하지만, 법원과 중재소의 철저한 분석을 통하여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영국업체는 영국의 법원 또는 ICC 중재를 선호하겠지만, 실제 국내법원보다 훨씬 비싸다. 한국의 법원 및 중재소의 합리적인 시스템과 그 비용을 알려주면 본국보다 비용이 매우 싸고 절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서 놀라는 영국 변호사가 많다. 이는 다른 유럽, 미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국내 법원과 중재소는 절차적인 신속성이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장점이 많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강하게 어필하여야 한다.
관할지를 한국 중재소로 주장하면서 준거법을 상대방 국가 또는 상대방이 원하는 국가법으로 내어주는 것 또한 협상 방법이다. 경험상으로 볼 때, 관할지가 준거법보다 더 중요하고 비용면에서 더 결정적일 때가 많다. 또한 중재소의 규칙을 면밀히 검토하여 그 내용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KCAB는 소송의 당사자가 중재인을 선정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러한 규칙은 상대방이 결정의 형평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O사는 위 설명을 듣고 상대방에게 일차적으로는 한국법원, 다음으로는 KCAC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기로 했다. 여러 중재기관의 비용 및 소요 기간 등에 대한 비교 분석표도 만들어서 상대방에게 보냈다고 하고, 상대방이 관련 자료를 계속 더 요구한다고 하니, 이를 근거로 볼 때, KCAB가 관할지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계약 체결 시 모든 유리한 조건을 얻고도 관할지를 뺏긴다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관할지는 매우 중요하다. 나에게 유리한 관할지가 어디인지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찾아내야 하고, 그 관할지를 상대방에게 어떻게 납득시킬지를 철저하게 연구하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상대방이 주장하는 관할지를 그냥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관할지를 나에게 전략으로 유리하게 선택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
한국무역협회 Trade SO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