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내다
태영코퍼레이션(주)_장근엽 대리
파이프, 파이프 피팅
해외영업 9개월, 장 대리이자 왕초보 팀장. 회사 소개서와 제품 리스트가 잔뜩 든 가방을 매고 난생 처음 두바이 사막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해외영업의 초보라기보다 무지의 수준이었다. 해외영업은 이직을 해오면서 같은 팀 사원에게 귀동냥을 한 것이 전부였다. 기존 팀장이 퇴사를 하면서 컴퓨터에 남긴 메일과 무역협회 자료 등을 보며 해외영업을 배워야 했다. 이전 회사에서 자재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였기에 서류 업무를 소화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바이 사막에 서서
세계적인 불황과 국내 조선소의 부진은 철강부문의 거래 물량의 격감으로 이어졌고 해외영업을 막 시작한 나에게도 찾아왔다. 내 월급 조차 되지 않는 금액을 수주하며 이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 일감이 줄어든 나에게 생긴 것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현재보단 미래를 보는 사장님이 있었기에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해외영업을 위한 시장조사와 시장개척 계획을 준비할 수 있었다.
천연자원인 원유가 풍부하고 불황 속에서도 공사가 많은 나라, 아랍에미리트(UAE). 그 중에서도 산업 활동이 활발한 두바이 시장을 개척하는 계획을 세웠다. 매일 밤낮 가리지 않고 인터넷으로 업체를 찾아보며 중동문화 학습부터 회사 프레젠테이션 연습까지 모든 준비를 꼼꼼히 했다. 많은 착오도 있었지만, 목표가 확실한 나의 의지에 사장님도 흔쾌히 결재를 해주셨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한 뒤 두바이에 도착했지만 막상 황량하고도 끝이 없는 사막을 보고 있자니 내가 나가야 할 해외영업의 미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태양, 사막의 열기에 갇혀 멍해진 나는 다행히 내 위치를 묻는 현지 업체의 전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 사막에서 누군가는 나를 찾는다는 생각에 정신무장을 다시하며 다짐했다. ‘이 사막에서 나만의 오아시스를 반드시 찾는다.’
혹독하게 끝난 첫번째 미팅
이후 4일 동안 한 손에는 업체 정보가 적힌 종이를, 다른 한 손에는 1.5L 생수를 들고 7개의 업체를 찾아다니며 미팅과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땀으로 젖은 정장에다 뜨거워진 구두를 끌고 간 첫 번째 방문 업체의 회의실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준비한 두바이 사람들에게 땀에 찌든 나의 프레젠테이션은 그리 훌륭하지 못했고,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시원스럽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첫 두바이 미팅이자 프레젠테이션은 날카로운 질문, 경계하는 눈빛과 함께 혹독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 먼 곳에 좌절하러 온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는 해결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자문자답을 해가며 문제점을 찾고 보완했다.예상 질문지를 만들어 답변을 연습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미팅 때도 조금은 당황했지만 같은 설명과 프레젠테이션을 계속하다 보니 점차 요령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업체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지며 자세한 비즈니스 대화로 이어졌다.
호텔 방의 맹훈련과 30만 원짜리 오더
5번째 미팅을 비교적 능숙하게 마치고 숙소에서 회사 메일을 확인해보니 ‘RFQ fittings for Aramco’ 라는 두바이의 첫 견적요청이 세 번째 방문업체로부터 들어와 있었다. 들뜬 마음에 견적을 확인하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
졌다. 원가는 30만원도 안 되는 소량, 반면 제품관련 요구사항이 A4용지 18장이나 되는 말 그대로 어렵고 귀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랴. 이 소량의 견적요청은 내가 사막에서 찾아낸 작은 물줄기’라 생각했다. 이 물줄기를 끈기 있게 따라 간다면 언젠가는 나만의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달랬다. 다른 미팅들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휴식시간도 없이 ‘물줄기’ 같은 견적을 우선적으로 진행했다. 본사 직원들과 함께 확인하고 진행해야 하는 일이라 새벽 4시에 일어나 견적을 준비하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출장 4일째 되던 날, 다른 업체와의 미팅을 마친 후 나는 숙소의 반대편 방향 사막으로 들어가서 견적 담당자에게 직접 완성한 견적서를 전달하였다. 담당자는 직접 찾아온 나를 보고 어리둥절하면서도 반가워했다. 마침 퇴근시간이 맞물려 업체 담당자와 함께 퇴근하였고 비즈니스적인 대화와 함께 간간히 사적인 정보도 함께 공유했다. 그리곤 다음을 기약하며 숙소로 돌아왔다.
귀국할 채비를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 메일을 확인하였다. 3개의 새로운 견적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첫 견적과 같이 소량의 어려운 제품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다행히 첫 견적과 요구사항들이 크게 다르지 않아 가지고 있는 서류만으로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음날 공항에서 가볍게 노숙한 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고객사 책자와 회의록을 보며 미팅과 질문을 되새겼고 앞으로의 대응을 생각했다. 물론 피곤함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으나 꿈속에서도 수출 계획을 그린 것 같았다.
두바이 출장을 다녀온 지 약 4개월이 지났다. 지금의 내 별명은 미스터 아람코(Mr. ARAMCO)이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해외 매출의 70%가량이 ARAMCO 프로젝트이다. 요구사항을 보면 척 하고 제품에 대해 이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참고로 ARAMCO는 the Saudi Arabian Oil Company의 약자로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회사이다.
내 별명은 미스터 아람코
사실 두바이 출장 후 해외 매출이 엄청나게 커진 것은 아니다. 세계적 불황과 침체 속에서 이전 담당자들의 실적과 견줄 만한 상태, 딱 그 정도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만한 수준이다. ‘하지만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건넌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젠 이 사막을 지나 강과 바다를 찾아 나서려 한다. 이 오아시스가 있었기에 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강과 바다에 가더라도 이 오아시스로 돌아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땐 내가 이 오아시스에게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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