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기 블로그에 소개된 ‘한국식 10단계 피부 관리법’. 러시아 여성들은 메이크업과 피부 관리에 관심이 많은 데다 경제활동 참가율도 69%나 돼 구매력도 높다. 무역협회가 최근 발간한 ‘러시아 화장품 시장 진출 전략’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한류 확산으로 K-뷰티가 유행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자료=무협 보고서 발췌]

과거 유럽과 미국 브랜드 화장품을 선호하던 러시아 소비자들이 최근 K-뷰티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한류 열풍과 독특한 디자인, 우수한 성분, 합리적인 가격대 등에 힘입어 2009년 475만 달러였던 대러 화장품 수출은 10년 새 45.6배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가 러시아 시장에 쉽게 진출할 수 있다는 말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인들은 검증되지 않은 제품은 쉽게 구매하지 않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효과적인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4월 21일 발표한 ‘러시아 화장품 시장 진출 전략’ 보고서는 “러시아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 중소브랜드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고, 향후에도 기술력과 참을성을 갖춘 우리 기업의 진출이 유망할 것”이라며 네 가지 전략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피부 자체를 가꾸는 ‘기초화장품’ 뜬다 = 보고서는 가장 먼저 ‘기초화장품 시장의 성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러시아 여성들 사이에서는 피부 결점을 가려주거나 포인트를 주는 메이크업보다 세정, 보호 등 피부 자체의 건강관리를 중시하는 트렌드가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기초화장품은 화장품 시장의 최대 소비품목으로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수분크림이다. 특히 러시아 전체 인구의 14.7%를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함에 따라 피부 탄력 개선, 주름 완화 등의 기능을 갖춘 노화 방지(Anti-aging)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

두 번째 인기 품목은 마스크팩이다. 2013~2018년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하며 기초화장품 품목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품목이기도 하다. 유로모니터는 “마스크팩은 피부 개선에 도움이 되는 고농축 성분을 함유하고 있고, 보습이나 광택 등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에게 인기”라고 분석했다. 화장품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 재질, 성분의 마스크팩을 출시해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진 것 또한 매출 증가 요인으로 꼽혔다.

최근에는 LED 마스크, 고주파 마사지기 등 가정에서 전문 클리닉 수준의 피부관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뷰티 디바이스’가 각광받고 있는데, 보고서는 이를 “기술력을 갖춘 우리 기업의 선제적인 진출이 유망한 분야”로 짚었다.

기초화장품 시장에서는 특히 친환경 제품 선호가 큰 점을 고려해 이에 맞는 성분과 브랜드 콘셉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식물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하고, 제품 디자인이나 홍보를 통해 자연 친화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유기농 화장품의 경우 러시아에서 인지도가 높은 유럽 인증을 획득하고 상품 설명서나 패키지에 이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비건 화장품 수요 증가에 대응해 식물성 원료를 사용한 제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돼지 콜라겐이나 달팽이 추출물 등 동물성 원료를 사용한 경우 성분을 명확히 표시해 혼선을 방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프리미엄 아닌 ‘가성비’로 어필하라 = 고가의 프리미엄 시장을 노리기보단 ‘가성비’ 좋은 제품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시장에 접근해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러시아는 유럽 및 현지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가 높은 시장이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러시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럽 화장품 브랜드에 대한 지불 의사는 1.87점이었던 반면, 한국은 0.87점으로 낮게 나타났다. 이는 ‘낮은 가격이라면 해당 지역 브랜드 상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정도다.

특히 경제 불황 이후 세일 기간 활용이나 저가브랜드 제품 대체 구매와 같은 실용적 소비가 일상화된 만큼 가격경쟁력 확보는 러시아 진출에 있어 필수다. 따라서 고급 성분을 사용하고 고가 마케팅을 구사하기보다는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해 저렴하면서도 신뢰할 만한 성분과 기능을 갖추는 것이 좋다.

◇광고보다 콘텐츠 생산에 집중… ‘실사용자’ 후기 관리는 필수 = 러시아 소비자들은 온라인 검색 엔진, SNS, 상품 리뷰 사이트 등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고 현명하게 소비하고자 한다. 이처럼 까다로워진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광고보다는 콘텐츠 생산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지 소비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SNS에 공식 계정을 개설하고 신제품, 프로모션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그 예다. 게시물 공유, 친구 태그, 경품 증정 등 다양한 이벤트로 브랜드 인지도 제고, 잠재고객 확보 등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뷰티업계 종사자 등 전문성과 영향력을 두루 갖춘 오피니언 리더들을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도 좋다. 이들에게 제품을 협찬하거나 소정의 원고료를 제공하고 제품 사용 소감, 평가 등을 담은 콘텐츠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이다. 고액의 광고비를 지불하고 무조건 호의적인 리뷰를 쓰도록 하는 것보다 최대한 객관적인 콘텐츠가 생산되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효과적이다.

또한, 러시아 소비자들은 실사용자의 구매 후기를 중시하므로, 실제사용자들의 호평과 긍정적인 상품 리뷰를 얻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iRecommend.ru, otzovik.com 등 상품 리뷰 사이트에 게재된 후기는 다른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은 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고, 소비자 의견을 반영한 재품 개선에도 힘써야 한다.

여기에 더해 구글, 얀덱스 등 검색엔진에서 자사 제품에 관한 잘못된 정보나 사전 협의되지 않은 판매처, 카피제품 등이 발견될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조치해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러시아 경제통상연구소 루스 이코노믹(RUS ECONOMIC LLC)의 전명수 대표는 “그 나라 소비자 니즈에 맞춘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며 “러시아 화장품 시장에서 통용되는 마케팅 툴을 정확히 파악해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에 앞서 반드시 러시아어로 제작된 알찬 홍보자료가 있어야 한다”며 “제품 브로셔, 브랜드 소개자료, 브랜드 웹사이트 등을 러시아어로 구축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라고 단언했다. 온라인을 주축으로 마케팅을 펼치되 전시회, 세일즈 프로모션, 인플루언서 방한 지원 등의 오프라인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도 덧붙였다.

◇H&B 전문점·전자상거래 활용한 진출 방안 모색해야 = 러시아에 화장품을 유통시킬 대표적인 채널로는 ‘H&B 전문점’과 ‘전자상거래’가 있다. 이 중 H&B 전문점은 러시아 최대 화장품 유통 채널이자 최근 5년간 전자상거래에 이어 가장 성장세가 빨랐던 유통망이다.

레뚜알, 매그닛 등 유명 전문점들은 폭넓은 고객층과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도가 낮고 고객층이 부족한 한국 브랜드가 입점했을 경우 약점을 극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레뚜알은 자체 온라인 쇼핑몰에 ‘한국 화장품’ 카테고리를 별도로 마련할 정도로 K-뷰티 제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반면 전자상거래 시장은 아직 매출 비중이 5.5%로 작으나, 향후 가파른 성장세에 힘입어 주요 유통채널로 성장할 전망이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Z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뷰티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온라인 화장품 소비 또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에 더해 얀덱스머니(YandexMoney), 웹머니(WebMoney) 등 전자지갑서비스와 온라인으로 구매한 상품을 직접 찾을 수 있는 픽업 포인트, 무인택배함 등 다양한 배송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전자상거래 성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한국 기업들에겐 전자상거래가 비교적 용이한 유통 채널이다. 이베이(eBay)나 지마켓 글로벌(Gmarket Global) 등 해외 오픈마켓을 통해 러시아에 직접 판매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자사 쇼핑몰이나 오존, 베루(beru.ru) 등 러시아 오픈마켓에서 화장품을 유통하는 현지 기업과 협력할 경우 더욱 폭넓은 고객층 확보가 가능하다.

전명수 대표도 “전자상거래 시장이 커지는 찰나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속도는 더 빨라질 전망”이라고 전자상거래 채널의 확대 가능성을 점쳤다. 다만 “러시아인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의심과 우려가 더 커 검증이 안 된 제품은 절대 구매하지 않는다”며 “무턱대고 온라인에 입점했을 경우 당장 매출에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형몰에 바로 입점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프라인에 테스트베드 격의 작은 안테나샵도 함께 운영하면서 온라인 마케팅을 펼친다면 저변 확대에 좀 더 효과적일 것”이라며 “한국 화장품 전문몰을 먼저 활용해 1년 정도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후 대형몰에 노크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극동시장에 먼저 진출하고 개선·보완 단계를 거쳐 모스크바 등의 서부시장으로 진출하는 전략도 추천했다. 주 소비자가 러시아 서부지역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나 극동러시아를 경유해 진출해야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브랜드가 고착화되는 3년까지는 면밀히 신경 쓰지 않으면 자리를 쉽게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유정 기자 wtrade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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