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4회 칼럼인 'K뷰티의 토사구팽형 실패 현장을 가다'
심각한 것은 중국 자본들이 단순히 K-뷰티를 통해 돈을 벌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화장품의 제조 노하우, 디자인, 숙련된 인적자원 등도 함께 중국투자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중국 화장품 제조역량도 빠르게 성장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현지 기업들은 변화되는 중국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실시간 반영한 뷰티제품들을 생산해내며 기존 K-뷰티 중국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2017년 중국 광저우에서 설립된 ‘퍼팩트 다이어리(完美日记)’다. 설립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성장세가 무섭다.
2019년 중국 색조화장품 시장 점유율 3위 업체는 프랑스 크리스챤 디올과 로레알 다음으로 5%의 점유율을 차지한 퍼펙트 다이어리였다. 이 업체는 2020년 성장세도 매우 가파른 추세로, 그 기세를 몰아 미국 증시상장을 준비 중이다.
[그림1] 차코스메틱의 다른 사례(좌)와 중국 퍼펙트 다이어리의 색조화장품(우)
*출처: 네이버와 바이두
퍼펙트 다이어리는 중국의 Z세대(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주요 타깃으로 그들이 즐겨 찾는 샤오홍슈, 더우인, 비리비리 등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집중공략 하면서 중국 색조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특히 샤오홍슈 플랫폼 팔로워는 220만 명으로, 이는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브랜드 팔로워인 20만 명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치다.
이 업체 역시 최신 트렌드와 데이터를 활용한 신제품을 재빠르게 출시하면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에는 지오그래픽 중국판과 협업을 통해 중국지형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중국향 16색의 아이섀도우 제품을 출시하면서 중국 Z세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에서 실패하는 두 번째 유형은 ‘원조가 짝퉁이 되는 모델’이다. 중국의 틈새시장을 뚫고 성공한 우리 중소기업 브랜드가 성장을 지속하지 못하고 중국 현지 브랜드에 의해 시장 점유율이 뒤바뀌는 상황이다.
제품의 원조로서 중국 소비시장에서 대우를 받다가 찬밥 신세가 되는 경우를 말한다.
원조가 짝퉁이 되고, 짝퉁이 원조가 되는 유형은 여러 업종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유자차’와 ‘조미김’이다.
이들 품목은 우리 기업의 노력으로 중국시장에서 성공시켜 한국 가공식품 대중국 수출에 효자 역할을 했다.
유자의 감기 및 변비 예방 효과와 달콤하고 몸에 좋은 벌꿀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진 유자차는 중국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인이 만든 유자차와 조미김이 중국 유통시장을 장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시장 내 한국 유자차 인기가 높아지자 중국 로컬기업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유자차 시장이 커지면서 많은 중국 식음료 기업들이 유자차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예컨대 중국 내 대표적인 식음료 기업인 와하하 그룹도 유자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자금력과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산 유자차가 점차 한국 유자차 점유시장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림2] 와하하의 유자차(좌)와 중국기업의 스낵김(우)
*출처: 바이두
현재 중국 대형마트에 가보면 한국 및 중국 유자차 브랜드가 수없이 많이 진열된 상태다.
그러나 우리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중국 내 마케팅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당연히 중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노출이 많이 되는 중국산 유자차를 찾기 마련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기업이 만든 유자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홍보문구를 겉 포장에 표시하는 수법이다.
이처럼 중국 소비자로 하여금 한국산으로 혼동하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게 나타나고 있다.
혹은 중국기업이 아예 국내 식음료 기업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회사를 설립해 유자차를 중국으로 정식 수출하는 형태인 토사구팽형 유형도 식음료 업종에서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조미김의 경우도 최근 들어 상황이 심상치 않다. 김은 전 세계적으로 한·중·일 3곳에서 90% 이상 생산된다.
일본과 중국이 마른김 경쟁력이 뛰어나다면 한국은 조미김 제조 능력이 우수하다.
따라서 조미김의 경우는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높은 상태로, 현재 전 세계 109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효자 식품 중 하나다.
2019년 기준 김 수출액이 약 6억 달러로 대상과 동원F&B, CJ제일제당, 삼해상사 등 국내 많은 식품기업에서 조미김을 생산·수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일본 시장에 이은 우리나라의 세 번째 조미김 수출대상국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 로컬기업들이 만든 조미김이 조금씩 시장을 넓혀 나가고 있다.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 조미김은 밥에 싸서 먹는 반찬 대용이라면 미국·일본·중국에서는 스낵처럼 간식용으로 먹는 개념이다 보니 소금이 적게 들어간 형태로 수출된다는 점이다.
특히, 어린이 대상 식품 시장을 겨냥한 변형된 김 스낵제품의 대중국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현지 시장 이해도가 높고, 자체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중국 로컬기업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매운맛, 바비큐 맛, 마라 맛 등 다양한 김 스낵제품과 김 빵 및 김 아몬드 등 색다른 형태의 김 관련 스낵제품들이 쏟아지면서 중국기업들이 만든 김 스낵제품과 한국산 제품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원조가 짝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확고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구축과 맛의 차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 기업 차원의 해조류 검사센터, 김 R&D센터 등이 운영되고 있으나 그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몇 년째 탁상공론만 하고 있는 ‘국립 김 산업연구소’가 빨리 설립되어 흩어져 있는 김 R&D 역량을 통합시키고 글로벌 시장에 맞는 조미김·스낵김을 개발해야 한다.
한참 수출이 성장할 무렵에는 국내 약 400여 개의 김 회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약 270여 곳으로 줄어든 상태로 몇몇 규모 있는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세한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결국, 중국의 자본력에 의해 춤은 김서방이 추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구조로 전락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집니다)
박승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