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사람들의 독특한 비즈니스 문화
 
몇 해 전 2월 어느 날 브라질 바이어로부터 연락이 왔다. 2월 25일부터 카니발을 시작하니, 대금결제를 늦추겠다는 내용이었다. 
 
필자가 90일까지 외상을 주고 있는데, 카니발을 핑계로 대금지급을 더 미루려는 것이다. 바이어는 일주일 동안 은행도 관공서도 모두 스톱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아마 그 바이어와 가족 혹은 친지, 친구들은 거대한 이과수 폭포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만큼 많은 맥주와 와인을 마시며 축제를 즐겼을 것이다. 정말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카니발 기간 중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확실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이 나라 사람들을 보면, 타고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브라질 사람들은, 비즈니스의 시작은 카니발 이후부터라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이해를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 일 년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축제를 통해 뜨겁게 분출하고 해소한다.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축구의 신 펠레(Pele)의 나라이자 거대한 아마존과 다양한 문화를 품은 브라질은 정열의 표상이다.
 
▲4월 24일(현지시간) 브라질에서 카니발 축제가 열려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보드로무에서 한 삼바 학교 무용수가 춤추며 경연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브라질 카니발 축제가 예년보다 2개월 늦게 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등지에서 재개됐다. [리우데자네이루=AP/뉴시스]
진솔하고 대국적인 브라질 사람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권토중래하는 마음으로 브라질 시장을 다시 공략하고 있다. 
 
그런데 바이어들이 예전 같지 않다. 나이가 젊었을 때는 나이가 많은 바이어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약간의 부담을 느꼈지만, 나이가 드니 오히려 어린 바이어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어렵다. 이건 세월 탓일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하게 느낀 것은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그들의 수용성(Acceptance)이 예전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브라질은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으로 이루어져 사람들 간의 친절함으로 인종차별을 감추려 한다.
 
하지만 가진 자와 가진 게 없는 자 사이에 사회적 장벽과 차별은 여전하다. 또한 사회적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도 용납이 안 된다. 독특한 그들의 사회적 구성에서 기인된 문화인 것 같다.
 
필자가 브라질 시장에 재도전하면서 발견한 또 하나의 새로운 점은 브라질 사람들이 거래를 할 때 진솔하다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는 모습이 참 좋다. 
 
다른 중남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경향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매우 대국적인 점도 특징이다. 
 
필자는 전 세계에 거래처가 분포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대체로 대륙인들의 분위기는 섬나라 사람들과 차이가 있었다. 섬나라 국민들이 다혈질이고 즉흥적이며, 이기적인 면이 있는 반면, 대륙에 있는 나라들은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브라질이 그랬다.
 
최고경영자들이 비즈니스 결정권 가져
 
브라질은 문화적으로 권리거리(Power Distance)가 크고,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집단주의(Collectivism)의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선지 회사의 조직문화는 수직계열로 이루어져 대표의 권한이 매우 크다. 상대적으로 직원의 권한은 크지 않다고 생각해도 맞다. 
 
이러한 조직 문화를 상대로 마케팅을 할 때에는 직원들보다 최고경영자를 우선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즈니스 상담을 할 때 그들이 서구사람들과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체로 최고경영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회사들은 조그마한 일들까지 대표들이 모두 실무에 관여한다.
 
유능하고 인상적인 브라질 바이어들
 
나에게 브라질 문화를 이해하게 만들어준 몇몇 바이어들이 있다. 
 
먼저 E사의 B씨. 젊고 똑똑하고 유능하다. 필자의 회사에서 4년여 동안 그와 연락을 지속해 왔지만 거래는 없는 상태였다. 
 
어느 날 필자가 그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통화를 하다말고 갑자기 그가 화상통화를 제안해 온라인 대면미팅이 이뤄졌다. 그는 업무보다는 자신의 인생사와 생각들을 털어놓았는데, 느낌이 이전과 많이 달랐다. 
 
B씨는 어렸을 때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태권도를 배웠다는 것을 강조하고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필자도 군복무 할 때 받은 태권도 1단 단증을 보여주었는데, 이것만으로 그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군대 제대한 사람들은 모두 국기원에서 발행한 태권도 1단 단증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외국인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또한 B씨는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친척 덕분에 중국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고, 중국어로 된 이름도 사용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자가 중국에 현지법인을 가지고 있고, 중국어도 가능하다고 하니 관련 대화가 이어졌다. 
 
며칠 후 B씨와 거래에 대한 세부사항 논의가 이뤄졌고 바로 거래가 시작됐다. 그는 현재 필자의 제1 바이어가 되었다. 그가 필자더러 자신의 사부가 되어 달라고 하면서 평생 일을 같이하자고 해 매우 놀랐다. 필자는 그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지금도 아리송하다. 
 
제품불량을 대하는 자세의 중요성
 
D사의 F씨는 또 다른 유형의 바이어다. 소주를 좋아하는 그는 필자가 최근 몇 년 동안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호인이다. 인상도 매우 좋고 의리가 넘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서울에서 열린 정부주최 행사였다. 이후 그가 원하는 디자인을 무난히 개발하여 첫 거래가 이뤄졌다. 그런데 처음부터 제품불량이 발생했다. 
 
필자 회사의 제품을 설치한 전국의 건축물에서 컴플레인이 쏟아졌고 바이어가 큰 손실을 보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량이 발생을 하였으니 어떤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F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와 함께 모두 책임을 지겠다고 하고, 현금보상을 약속했다.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필자의 회사는 큰 손해를 보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에 F씨가 계속 오더를 냈고, 안부를 물어 왔으며, 그의 경쟁회사들까지 소개해 주었다. 
 
당시 필자는 그가 자신의 회사에 피해를 입힌 나를 왜 이렇게 잘 대해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F씨는 클레임을 바로 해결해준 필자가 너무 고마워 필자의 손해를 해결하여 주려고 그랬다고 했다. 정말 착한 심성과 아량을 가졌다. 
 
R사의 D씨는 매우 독특하다. 중남미 사람답지 않게 처음부터 매우 큰 오더를 냈다. 
 
그는 간단하게 자신이 구매하고자 하는 금액(단가)을 알려주면서, 수용이 가능한지 여부만 타진했다. 이에 필자가 그 가격이 적정하다고 하니 바로 발주서를 보내왔다. 
 
브라질 사람들은 보통 협상을 3회 내지 4회 정도 하는데, 그가 대범하게 거래를 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브라질은 정말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필자에게 브라질 시장에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와인 한 잔 하고 싶은 바이어다.
 
브라질의 독특한 비즈니스 문화들
 
브라질의 비즈니스 문화에서는 낯선 사람이 거래선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따라서 가능한 지인의 소개를 받는 것이 좋다. 그래야 성공률이 높다. 
 
또한 비즈니스를 할 때에는 인내심과 자기 통제의 묘미가 필요하다. 급하지 않은 그들의 문화에서 조급함은 많은 것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정치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빠르게 명성을 얻고 있으며 인구 2억1000만 명으로 현재 세계에서 6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자랑한다. 앞으로 10여 년 후 브라질은 매우 중요한 경제적 지위에 이를 것이다. 필자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브라질이 가지고 있는 규모의 경제 잠재력과 농업부분의 중요성 때문이다. 
 
비즈니스로 브라질 사람들을 만나면 깔끔한 옷차림이 인상적이다. 덥고 습한 날씨에도 가급적 정장을 입고 미팅에 참여하는 모습은 동양인들과 차이가 있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도 넥타이를 매고 나타나는 그들에게서 신사다운 멋이 풍긴다. 동서양 어디를 가도 옷을 잘 차려 입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브라질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할 때 ‘예스’와 ‘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브라질뿐만 아니라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비슷하다. 업무적으로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의 대답은 대개 예스다. 하지만 예스를 진짜 예스로 이해하여 업무를 진행하면 여러 문제가 파생될 수 있다. 
 
특히 서구의 문화와 차이가 있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눈맞춤’이다. 보통 북미나 유럽에서는 상대의 눈을 응시하지 않으면 실례가 되거나 부정적인 표현이 되는데, 브라질에서는 높은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눈을 약간 내려 뜬다. 그러나 사교모임이나 공공장소에서는 미국 사람들보다 상대방 눈을 많이 응시한다. 
 
브라질은 위계질서가 있어 정중한 호칭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전화나 이메일로 대화를 나눌 때에는 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한국 사람들처럼 음식이나 음료는 처음에 거절하더라도 몇 번씩 권하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적이다. 그들의 속담 중에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마라’라든지 ‘손에 있는 한 마리 새가 날고 있는 두 마리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표현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항공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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