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옥구슬로 꿰어준 조력자들
 
어떤 사람이라도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부축과 위안 속에서 살아왔다. 
 
우선 꼽아야 삶의 조력자는 어머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40세에 홀로 되신 후 4남 1녀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헌신하셨다. 
 
척박한 시골에서 농사만으로 자식들을 키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고 자녀들이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셨다.
 
‘일하는 것이 쉬는 것이고…’ 가르침
 
오래 전 필자가 시골에 있을 때의 일이다. 여름이어서 저녁 해가 많이 길어졌다. 밭일을 늦게까지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보름달이 환하다고 하시면서 산속에 있는 밭에서 밤 10시가 되도록 김매기(잡초제거)를 계속 하셨다. 같이 일하던 필자는 “너무 늦었으니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성화를 부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남은 밭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귀가하셨다. 
 
귀갓길에 어머니께 짜증을 담아 “무서운 밤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어머니께서는 “일하는 것이 곧 쉬는 것이고 쉬는 것도 곧 일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이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 생활에 이어 경영자로서 30여 년을 살다보니 지금은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니의 말씀은 “일이 좋으면 그 자체가 즐거움이며 삶이다”라는 뜻이었다. 
 
필자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또 창업 이후 경영자로 사는 지금까지, 일이 싫다고 느낀 적이 없다. 일 자체가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비록 자금 문제로 고생했던 적은 있었지만 일하는 것 자체는 매우 좋았다. 
 
햇살 따스한 아무 날 모두들 야외로 놀러 나갈 때 밀린 업무 때문에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피로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여유 있게 업무를 처리하는 그 맛이 매우 좋았다. 
 
정말 일하면서 쉬었고 쉬면서 일했다. 어머니는 일을 즐기라는 지혜를 필자에게 주셨다. 일을 즐기는 것이 돈을 위해 일하는 노예가 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제자에게 집을 담보로 제공한 교수님
 
필자의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또 한 분의 은인은 석사과정 때 은사이신 박진성 교수님이다. 필자의 삶에서 언제나 롤 모델이셨다. 
 
늘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자세나 옷차림 또한 단정하고 깔끔하셨다. 학과 전공시험을 볼 때는 점수에 연연하기보다 시험을 정직하게 치르는 학생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학부에서 어문학을 전공한 필자는 직장에서 해외영업 업무를 담당하면서 경영과 무역에 관한 지식 부족을 절감했다. 고민 끝에 고려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중소기업을 다니던 상황이었으므로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정신없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수업은 재미가 있어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박 교수님은 필자의 지도교수님이셨는데 졸업논문을 작성할 때 문장 하나 단어 하나도 오류가 없도록 교정 작업을 도와주셨다.
 
대학원 졸업 후 필자는 회사를 창업했고 창업 8개월이 지났을 무렵, 중국 현지공장을 인수했다. 하지만 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인수를 진행한 탓에 얼마 못 가 자금난에 봉착했다. 
 
모든 금융기관을 다니면서 읍소했지만, 나이 어린 필자에게 추가 대출을 해주는 곳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했다. 하지만 이미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박 교수님께서 학교에 잠시 들르라고 말씀하셔서 시간을 내어 찾아뵈었다. 교수님은 필자의 처지를 다 파악하고 계셨다. 자금 때문에 동분서주하다 보니, 필자의 소식이 교수님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이었다. 
 
교수님은 서울에 있는 당신의 자택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할 테니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 보라고 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형제들 사이에서도 어려운 일이 금전거래나 담보제공 문제다. 교수님 부부께서 어렵게 장만하신 집을 아무 조건이나 대가 없이, 그리고 많은 제자 중 하나인 필자에게 담보로 맡기신다니 많이 놀랐다.
 
이 일은 필자로 하여금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이 세상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의 뜻을 되새기며,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하고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함으로써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많이 했다. 
 
당시 다행히도 다른 경로로 자금 문제가 해결돼 교수님이 은행에 가셔야 할 일은 없었지만, 평생 그 일을 잊을 수 없다. 이후에도 교수님은 자비를 들여 필자의 중국 공장에 여러 차례 직접 방문하셔서 격려와 위로를 해 주셨다. 
 
또한, 교수님은 약속에 대한 개념이 매우 특별하다. 1년에 최소 2회 이상 26년 동안 만나 뵈었는데 장소와 관계없이 항상 30분가량 일찍 약속장소에 나오신다. 최근에는 몸이 불편하셔서 이동이 매우 힘드신 데도 거리에 상관없이 항상 제자들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신다. 단 한 번도 늦으신 경우를 못 보았다. 
 
거동이 불편하여 지팡이를 사용해야 할 정도이지만 가방에 좋은 술을 넣어 어깨에 짊어지고 오신다. 선물 받은 술이라며 다 같이 마시자고 하신다. 세상에 마음이 얼마나 넓어야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시대는 선생과 학생만 있고 스승과 제자는 없다고 한다. 그 옛날 다산 정약용과 황상의 스승과 제자 사이를 생각해 본다. 
 
필자는 황상처럼 많은 병통(病痛)을 가지고 있는데, 둔하며 총명하지 못하고 좋은 학력을 가지지 못했음에도 교수님은 끊임없는 칭찬과 조언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셨다. 제자에 대한 사랑이 많으신 분이다. 박사학위를 마친 이후에도 지금까지 쉼 없이 공부하고 있는 것은 모두 스승의 가르침 덕분이다. 
 
▲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대출보증을 서준 중국의 은행지점장
 
세 번째 은인은 중국인이다. 
 
필자가 중국에 공장을 설립한 이후 매우 바쁘고 정신없던 때에 사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생겼다. 중국 정부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부가가치세(증치세) 환급이 2년 동안이나 밀린 것이다. 이로 인해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신생기업으로서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은 처지에 자금까지 막혔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중국 정부가 수출기업들이 납부한 매출액의 17%에 달하는 부가가치세를 45일 이내에 환급해주어야 하는데 2000년 초에는 재정상태가 좋지 않아 미루고 또 미루어 무려 24개월이나 지급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많은 기업이 도산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몰렸다. 전체 매출에서 17%에 달하는 자금을 돌려받지 못하니 재무제표에는 이윤이 있지만 실제로는 자금이 돌지 않는 흑자도산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의 중국 회사도 수십억 원을 중국 정부에서 환급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부족한 자금을 한국 금융기관에서 일부 융통했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중국의 금융기관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직원들은 모두 포기했다. 
 
하지만, 필자는 그럴 수 없었다. 중국의 모든 금융기관에 찾아가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C은행의 왕지점장을 만났다. 그는 영문과 출신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며 국제매너를 아는 사람이었다. 30대에 지점장을 하고 있을 만큼 유능했다. 
 
왕지점장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부가세를 환급받을 때까지, 환급금을 담보로 대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방법이 있다며 필자에게 보증인 2명을 구해 오라고 했다. 그러면 환급받을 금액만큼 저리로 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건이 까다로웠다. 보증인 두 명 중 한 사람은 우리 돈으로 매출 약 500억 원(현재가치 기준) 이상인 회사의 대표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1인은 총재산이 5억 원 정도면 된다고 했다. 
 
중국 땅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어떻게 그런 보증인을 구하라고 하는지 헛웃음만 나왔다. 불가능한 일로 생각됐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고 지인들에게 부탁했다. 모두 보증은 정말 힘들다며 거절했다.
 
당시 필자의 회사로 영업하러 자주 오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지만 직급이 없어서 중국식 예우로 ‘쉬샤우제(徐小姐, Ms. Xu)’라고 존칭을 붙여 불러 드렸다. 
 
대형 직물 염색공장에 근무하는 영업사원인데 필자보다 나이가 20세나 많지만, 여전사처럼 일을 잘했다. 우리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그녀에게 하청을 주고 있었다. 
 
필자의 사정을 알게 된 그분은 자기 회사의 사장에게 부탁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가능성이 있으니 빨리 자기네 회사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 회사의 사장은 물끄러미 필자를 관찰하더니 보증을 서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젊은 한국 사람이 중국에서 고생이 많다며 보증서에 사인해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었다. 총재산이 5억 원 정도 되는 사람을 어떻게 구하느냐다. 
 
필자는 왕지점장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친구처럼 대화가 잘 되었다. 그 다음날 은행에 다시 찾아가 지점장인 당신이 나의 보증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말문이 막히는지 가만히 있었다. 필자가 한 번 믿어 달라고 다시 간청하니, 그가 알았다며 대범하게 보증을 서 주었다. 
 
그는 은행에 입사해서 거래처에, 그것도 외국인에게 보증을 서는 것은 처음이라며 웃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여러 번 감사를 전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너무 당돌했던 것 같다. 
 
이후 왕지점장과는 친구가 됐다. 20여 년이 흘렀어도 필자가 중국에 가면 한달음에 찾아온다. 그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고 펀드 관련된 일을 하다가, 친구들의 권유로 중남미 시장에 의류 완제품을 수출하는 회사를 설립하여 사장이 되었다. 
 
사업에 성공한 그는 앞으로 그룹사를 만들어 볼 심산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를 보면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의 인생에 도움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많은 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들에게 큰 복을 줄 것을 믿는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비행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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