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생긴 일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면 공항에서 다양한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공항에서의 일은 대체로 긴급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것이어서 당황스럽다. 
 
문제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오가는 승객이 많은 데다 중남미 국가로 환승하는 사람까지 있어 공항마다 북적댄다. 대부분의 공항이 규모가 크고 매우 복잡할 뿐만 아니라 관계자들이 권위적이어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엄격하고 권위적인 미국 입국
 
미국은 적성 국가 방문자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이전에 리비아, 이란, 이라크, 수단, 시리아, 예멘, 소말리아, 북한 등을 방문한 사람은 기존에 미국 비자를 가지고 있어도 필히 자국의 미국대사관에 가서 다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 
 
필자도 업무차 이란과 수단을 방문한 전력이 있어서 많은 서류를 준비하여 미국 비자를 재발급받았다. 
 
미국 방문 시 ‘이스타(ESTA, 비자 면제 프로그램)’를 사용하면 편리하지만, 필자에게 그런 혜택은 없었다. 
 
문제는 중남미에 갈 때 필히 미국을 거쳐야 하는데, 필자가 여권을 이민국에 제시하면 항상 공항경찰 두 사람이 와서 연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취조를 통과해야 여권을 돌려주었다. 
 
대부분 시간이 촉박한 환승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정말 곤욕이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서 미국 입국 심사대에서 담당 직원이 필자에게 알려 주었다. 
 
“3년간 예의 주시한 결과, 아무 혐의가 없으므로 앞으로 연행은 없을 것이다. 굿럭(Good Luck) & 굿트립(Good Trip).”
 
한 번은 중남미에서 뉴욕을 거쳐 한국으로 오려는데, 공항경찰에 연행됐다. 
 
중남미 칠레나 브라질에서 뉴욕까지 오면 매우 피곤하다. 그래서 뉴욕에서 20여 시간 쉬어 가려고 공항 옆 호텔을 예약했다. 하지만 주소를 알 수 없어 미국입국카드 체류지 공란(空欄)에 호텔 이름만 명기했는데 그것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스테레오 타입(편견)’을 가진 이민국 직원은 다시 작성하여 오라고 했다. 공항 근처이지만 주소를 모르겠다고 하니 그래도 알아서 작성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휴대폰으로 주소 검색을 하려 하였으니 배터리가 방전돼 그마저 실패하고 다시금 줄을 섰다. 
 
이민국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좀 봐 달라고 하니 안 된다고 하며 다시 작성하라며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필자가 25년 동안 미국을 왕래했는데 왜 이번에만 주소를 요구하는지 따졌다. 이민국 직원은 규정을 지킬 뿐이라며 절대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잠시 후 덩치가 큰 권총을 찬 두 경찰이 나의 팔짱을 끼더니 가자고 했다. 결국, 불법으로 입경한 중남미 사람들과 같은 방에 갇혀 한참을 기다렸다가 취조를 받았다. 
 
그런데 취조하던 직원이 컴퓨터로 나의 신상명세를 보더니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호텔 주소를 알지 못해 왔다고 하니, 웃으며 그냥 가라고 했다. 
 
중남미 출신 미국인으로 보이는 이 직원은 필자의 여권을 보며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필자가 중남미 국가들과 사업을 하고 있다고 답하니 갑작스레 친근감을 보이며 열심히 사업 잘하라고 했다. 당연히 경범죄(괘씸죄)는 사라졌지만, 만약 해결이 잘 안 되었다면 다시 미국에 입국할 때마다 고생했을 것이다. 
 
1분 늦는 바람에 3일 낭비한 사연
 
아르헨티나에 가야할 일이 생겨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일행 한 분의 짐 가방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함께 기다렸다가 아르헨티나행 탑승을 위해 체크인하려고 뛰어갔다. 
 
비행 출발 40분 전이므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항공사 직원은 시계를 가리키며 1분 전에 마감(Closing)했다며 탑승 불가를 외쳤다. 부탁에 부탁을 거듭하였지만 담당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화가 나서 따지니 다시 한번 더 언성을 높이면 공항경찰에 연락해 연행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비행기 탑승을 포기하고 8시간 이후에 있는 다음 비행기를 예약했다. 공항에서 8시간이나 기다렸다가 동일 항공사 비행기 편에 탑승한 후 몸이 피곤해 좌석에서 눈을 감고 수면을 취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기내방송이 반복되고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 가만히 방송을 들어보니 모두 내리라는 것이었다. 남미 지역에 화산이 폭발해 비행이 취소됐다는 내용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에는 언제 화산경보가 풀릴지 몰라 공항에서 48시간이나 대기했고, 결국 경보가 해제되어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56시간이나 체류한 것이다.
 
마침내 아르헨티나에 도착했지만 이미 모든 약속이 취소된 후였다. 호텔에서 잠시 쉬었다가 바로 브라질로 이동했다. 단 1분 늦은 도착으로 인해 3일을 낭비하고 미팅을 모두 망친 셈이다. 필자의 비즈니스 여행 중 가장 엉망이 된 경우였다.
 
2000년 여권은 왜 그리 조잡했을까
 
여권을 많이 사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2000년에 발행된 여권을 기억할 것이다. 여권에서 중요한 인적사항과 사진이 붙은 페이지가 재봉실을 따라 떨어지는 것이다. 
 
필자의 여권은 다 떨어지기 일보 직전으로 3mm 정도가 남은 상태였는데, 중국 이민국에서 잠깐 조사실로 가자고 했다. 여권 정밀감식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검사를 받은 후 다음에는 이렇게 너덜너덜한 상태로 들고 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너덜너덜한 여권에 투명테이프를 붙이려고 하였다. 그러다 혹시 몰라 여러 친구에게 물어보니 여권에 인위적으로 테이프를 붙이면 위조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붙이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바로 여권을 바꾸려 했지만, 기존 여권에 들어 있는 각국의 비자들과 연속으로 이어지는 출장으로 인해 바꿀 수가 없었다. 이후 해외출장에서 여권을 이민국에 보여줄 때마다 긴장해야 했다. 
 
결국, 2001년 여권의 페이지를 모두 채우고 폐기함으로써 그 위기가 정리되었지만, 당시 정부에서 왜 가난한 나라의 여권보다 못한 품질의 여권을 만들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당시 각 나라 이민국에서 한국 여권이 잘 떨어지는 상황을 이해하는 듯한 느낌도 여러 차례 받았다. 오죽 문제가 많았으면 그랬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지리아 라고스공항은 늘 많은 출국대기 승객들로 넘친다. [사진=필자 제공]
전투 아닌 전투를 치러야 하는 라고스
 
나이지리아 라고스 공항은 정말 혼잡하다. 입국할 때는 문제를 잘 모르지만, 출국할 때에는 전투 아닌 전투를 치러야 한다. 
 
어느 나라 공항이든 대체로 출국에 3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라고스 공항은 불가능하다. 최소 4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그러나 4시간 전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출국을 위해 줄을 서면 중간에서 새치기가 심하다. 줄도 엉망이지만 업무속도도 매우 느리다. 
 
언젠가 기다리다 못한 필자가 공항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방법이 없느냐고 넌지시 물으니 방법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간단하고 정확한 방법을 알려줄 테니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5달러를 접어서 주니 필자가 비즈니스 클래스 통로로 체크인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었다. 2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대책이 없던 일이 단 1분 만에 해결되었다. 
 
체크인 후 이민국에 도착하여 줄을 보니 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기약 없이 서 있다간 비행기를 놓칠까 두려워 이민국 직원에게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그 역시 5달러를 요구했다. 미련 없이 주었더니 필자를 맨 앞 데리고 가서 2분 안에 처리가 되도록 해주었다. 10달러로 3시간 소요될 일을 20분 안에 끝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자못 황당한 일이 많았다. 카라카스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동하려고 공항에 일찍 도착했는데 예약된 비행기 편이 승객이 적다는 이유로 취소됐다. 어이가 없어 항공사 매니저를 불러 무슨 일인지 다시 물어보니 종종 발생하는 일들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경제 위기로 손님이 없는 항공기는 취소 가능하다고 한다. 강력한 압박으로 5시간 후 다른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복귀했지만, 승객이 적다는 이유로 출항을 취소한 사례는 처음 보았다. 이후에 베네수엘라 출장길에는 항상 하루 전에 운항 여부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프리카 지역에 출장을 가려면 황열병(YELLOW FEVER) 증명서가 필수다. 가지고 가지 않으면 도착 즉시 공항에서 맞아야 한다. 가나에서 날짜가 지난 것을 확인하지 못해 입국이 불허되었고 다시 접종해야 하는데, 그냥 눈감아 준 공항직원도 생각이 난다. 만약 공항에서 접종하면 접종 후유증으로 3일 동안 일을 못 하게 되는데 위기를 잘 넘긴 것이다.
 
매우 열악한 환경의 수단 카르툼 공항
 
수단으로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수단 카르툼으로 가려는데 비행기를 보고 너무 놀랐다. 국제선임에도 프로펠러 비행기였고 크기가 매우 작았다. 탑승 인원이 최대 40~50명 정도였는데 소음과 요동이 심했다. 
 
어쨌든 섭씨 45도가 넘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잘 날아 수단에서 거래처를 만나 업무를 마쳤고, 귀국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고장으로 수리하는 데 12시간 이상 소요된다고 하여 무작정 대기실에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공항 라운지가 어느 지방 군소도시의 버스 대합실 같았다. 화장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는데 지저분하고 냄새도 고약했다. 의자도 오래된 구식에 일부 파손도 있어 국제공항 같지가 않았다. 
 
다행히 비행기가 수리되어 14시간 이후에 그 조그마한 비행기를 타고 아디스아바바공항에 도착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수단 카르툼 공항은 필자가 가본 전 세계 공항 중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비행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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