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의 소통
 
 
필자는 해외 여러 곳에 회사와 지사를 설립하여 경영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느끼는 어려움이 현지 직원들과의 소통(Communication)이다.
 
2000년 중국에 현지공장을 설립해 운영할 때의 일이다. 한국과 다른 문화적 차이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당시 필자는 1993년부터 중국과 비즈니스를 해 오고 있었으므로 누구보다도 중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중국 현지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중국 현지공장에서 겪은 일
 
필자의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은 성수기와 비수기가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성수기에는 쉬는 날 없이 생산해야 했다. 
 
그리고 생산된 모든 제품을 수출하기 때문에 일일이 컨테이너 안에 물건을 적재해야 했는데, 문제는 절강성 지역이 여름에는 섭씨 40도 이상까지 오를 정도로 덥다는 점이었다. 철판으로 이루어진 컨테이너 내부는 보통 50도를 넘는다. 
 
당시에는 공장 부대시설 중 자동으로 물건을 싣는 장비가 없어서 담당직원들이 제품을 컨테이너 안으로 옮겨 실어야 했는데, 정말 큰 고역이었다. 
 
문제가 발생한 그 날은 생산인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많은 물품까지 선적해야 했는데 출고인원까지 부족했다. 
 
닝보항(Ningbo Port)에 입고해야 하는 시간은 다가오고, 컨테이너 운전기사는 서둘러야 한다며 적재를 독촉했다. 
 
정해진 시간까지 항구에 입고를 마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신용장 네고(Nego)에도 문제가 발생할 상황이었다. 
 
최대한 빨리 출고인원을 늘려야 했다. 하지만 중국인 공장장은 도저히 잉여인원 차출이 불가능하므로 오늘 선적은 포기하고 내일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필자는 무조건 선적해야 한다며 방안을 모색했다. 사무실과 공장을 둘러보니 많은 잉여인원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회사에서 간부급에 준하는 직원들이었는데, 평소 관리와 감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필자는 이들에게 출고지 창고로 이동하여 컨테이너에 물건을 싣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모두 당황하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적해야 하는 물건은 개당 45kg에 육박하는 무거운 제품이다. 
 
눈치만 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필자는 어쩔 수 없이 솔선수범하여 물건을 들고 직접 컨테이너에 적재했다. 그러자 간부 직원들도 따라서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빠른 시간 내에 출고를 마치고 무사히 항구에 도착해 제때 입고했다. 
 
무더운 여름날 45kg정도의 제품 4500여 개를 여러 컨테이너에 나누어 싣는 노동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필자도 탈진을 감수하고 한 일이다. 
 
너무 고생한 직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회사 앞의 식당에서 맥주를 한 잔 하는데, 부장급에 준하는 간부가 “앞으로는 사장님이 앞장서서 이번과 같은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필자는 급한 상황이었고, 사장이 일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 간부의 대답은 이랬다. “중국에서는 어느 정도 위치가 되면 절대 하급직원들이 하는 업무를 대신하면 안 된다.” 
 
회사대표는 대표로서 품위를 지켜야 하며, 오늘 같은 일은 자기들의 위신 또한 문제가 된다는 설명도 따랐다.
 
당시 30대였던 필자는 그들과 비슷한 연령대이므로 자유롭게 일하고 격의 없이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왜 필자에게 그런 충고를 하게 되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를 하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체면(미옌즈)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문화에서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체면이고 또한 그것을 위해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사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지시를 할 때 항상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게 되었다. 
 
▲중미 카리브 해변에서 바이어 초청으로 참여한 저녁파티. 사진=필자 제공
국가마다 다른 숨겨진 문화 ‘맥락’
 
위의 사례는 이문화(Cross-Culture)에 대해 홀(Edward T. Hall, 1976)이 주장한 고맥락 사회와 저맥락 사회로 설명하고자 한 것으로, 고맥락 사회인 중국인들의 내면 일부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문자를 통하여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는데, 문자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맥락(context)’이라는 측면에서 이문화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화 된 사회에서 이문화를 접할 때 그들과 다른 점들이 무엇이고, 그들에 대해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면 좀 더 훨씬 수월한 비즈니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다른 국가나 민족의 맥락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사항이기도 하다. 
 
홀은 그의 저서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에서 맥락을 ‘숨겨진 문화’로 정의했다. 우리가 언어를 통하여 대화하고 상대방을 이해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볼 수 없는 가치체계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맥락인 것이다.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회사는 비슷한 규칙을 가지고 업무를 하는데, 한국 회사와 중국 회사 간에는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숨겨진 문화에서, 특히 맥락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사장이 한국적 경영방식을 아무리 강하게 추구하더라도, 중국에 있는 외국기업은 중국적 가치관이 이어져 있으며 절대 그 기준점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현대 경영에서 지역화(Localization)의 비중이 매우 커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을 시도하고 있다. 
 
글로컬리제이션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의 합성어인데, 즉 세계화를 추구하되 현지의 기업풍토를 존중하는 기업경영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지역의 문화에 잘 접목시킨 것만이 진정 세계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상대방의 문화를 인식하고 잘 대응하는 것이 이제는 매우 중요한 경쟁력이 된 것이다.
 
필자도 이러한 문화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해외영업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행착오는 고객을 상실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북미권과 유럽권에서는 경영 컨설턴트를 활용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최근 들어 이런 흐름을 따라간다. 
 
하지만 문제점들이 많다. 저맥락 사회에서는 모든 부분들을 컨설턴트에 털어놓고 리빌딩(Rebuilding)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지만,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권의 나라에서는 기업의 문제점을 솔직히 알리고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받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고맥락 사회에서는 국가나 기업들이 컨설팅을 받고 이행하려고 해도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문화적 차이 이해해야 소통 가능
 
이러한 문제들은 문화적인 맥락에서 기인한다. 
 
앞의 사례에 나온 필자의 중국회사 역시 발전을 위해 어려 전문가들과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였으나 직원들이나 최고 경영자인 필자도 모든 것을 꺼내 놓고 문제점을 바꾸는 것에는 소극적이었다. 
 
방법론의 차이, 보수적인 가치관, 직원들의 보이지 않는 저항, 컨설팅 전문가에 대한 의구심, 절대 회사의 문제점들을 바꿀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 등으로 중도에 포기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기업들과 비즈니스 대화를 나눌 때 경영적인 문제 등에 대해 서구적인 사고를 가지고 접근한다면 이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아마도 대화의 결과는 상대 경영자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만들고 간섭을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편이 좋다. 
 
성공적인 의사소통이나 협상에 이르려면 상대 문화에 대해 맥락에 기반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국궁진력(鞠窮盡力)’이라는 말이 있다. 삼국시대 촉의 재상이던 제갈량이 후주 유선에게 피를 토하면서 올렸던 ‘후출사표’에 나오는 글귀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진정 몸을 굽혀 최선을 다해 모든 힘을 쏟아붓는다’는 뜻이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이러한 자세로 소통한다면 나라와 인종이 달라도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좋은 대화는 진지함과 존중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정병도 사장은 1999년 4월 인조피혁제조 및 바닥재 수출회사인 웰마크㈜를 창업한 이후 경쟁기업들이 주목하지 않던 아프리카, 중남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주목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지구 60바퀴를 돌 만큼의 비행 마일리지를 쌓으며 ‘발로 뛰는’ 해외마케팅을 실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경기대학교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에서 국제경영석사 과정을, 청주대학교 국제통상 박사과정에서 이문화 협상(CROSS CULTURE NEGOTIATION)을 공부했다. 저서로 ‘마지막 시장-아프리카&중남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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