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중심부 번화가에 있는 한인 타운은 필자가 매번 뉴욕에 출장 갈 때마다 방문하는 곳이다. 지난 3월 말에도 뉴욕을 방문해 일정을 소화한 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32번가 한인 타운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모습들이 보였다. 수많은 현지인이 한국 핫도그를 사기 위해 긴 줄을 마다하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최근 골목마다 한국 핫도그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제 막 10대가 된 필자의 딸아이가 비한인 친구들과 한국 핫도그를 같이 먹는 걸 보는 건 이제 매우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북미 현지에 이른바 'K-푸드'로 불리는 한국 음식이 녹아들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저녁식사를 하러 간 맨해튼의 한국 식당에서는 이날 스페셜 음식으로 굴전과 김치전이 나왔다. 일행들과 제육볶음, 곱창전골, 닭똥집도 맛볼 수 있었다. 한국 소주와 맥주도 곁들였다. 놀라운 건 여기에 있는 대부분 손님이 비한인이라는 것이다. 다들 너무도 자연스럽게 소주잔에 소주를 채우고 전에 열광하고 김치를 리필 해달라고 한다.
평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식당은 만석이었고 이에 맞춰 웨이트리스들은 정말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밖을 내다 보니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바로 아랫층에는 한국 고깃집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긴 줄이 생겼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다 현지 비한인들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 한인 식당의 고객은 한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대부분 비한인들이 점령하고 있다.
K-푸드 종류 다양해지고 어디서든 쉽게 접해
실제로 예전에는 김치나 비빔밥, 불고기가 전부였다면 이제는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이나 떡볶이 등 좀 더 다양한 한식을 북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레스토랑뿐만이 아닌 푸드코트, 푸드트럭에서도 만날 수 있다.
K푸드의 인기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아마 최근 들어 넷플릭스를 통한 K-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BTS, 블랙핑크 등이 주도하고 있는 K-팝 등의 한국문화 확산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등 여러 소셜미디어 채널에서 다양한 인종의 미국 젊은이들이 한국 음식을 즐기는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콘텐츠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K-푸드의 관심은 계속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한국 음식문화가 현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때부터 북미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변화를 크게 실감할 수 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한식이 서서히 확산되고 대중화되면서 지금의 인기에 이르렀는데, 정말 반갑기 그지없다.
필자의 회사 직원들은 모두 비한인 젊은이들인데, 최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여서 얼마 전 회식도 토론토 중심가에 있는 한국의 치킨 프랜차이즈 BBQ에서 했다. 다들 너무도 익숙하게 음식을 먹는게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이미 여러 번 우버잇(Uber Eat)으로 배달시켜 먹었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들 모두 매운 떡볶이를 즐길 줄 알았다.
캐나다는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작은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3개 주에 벌써 40개의 BBQ 치킨점이 자리 잡았고 점점 늘어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BBQ 치킨점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외식 브랜드 2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필자는 한국 기업의 북미 진출을 돕는 일을 하면서 최근 고객사 카테고리에서 식품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다. 한 고객 기업은 유자차를 이미 미국과 캐나다 코스트코에 대량 납품하고 있다. 현지 대형마트에서 한국 식품을 찾는 건 이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 라면은 북미에서 K-푸드의 성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K-푸드 제품을 코스트코와 월마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프로농구 NBA 슈퍼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비비고' 로고가 새겨진 엘에이 레이커스 저지를 입고 뛰고 있으며, 미국인들은 기존 중국 만두가 아닌 현지 입맛에 맞춰진 비비고 한국 만두에 열광한다. 비비고 만두는 이미 미국 내 만두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유럽을 공략하고 호주와 다른 아시아권 나라들을 공략하고 있다.
K-푸드는 단순히 현지인의 호기심 차원이 아닌, 맛과 건강을 키워드로 하는 하나의 푸드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으며, 필자도 좋은 국내 기업들을 발굴하고 북미 시장과 연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지화, 고급화, 그리고 다양한 품목을 통한 차별화에 주목해야
다만 K-푸드가 지속 가능한 소비와 수출로 연결하기 위해서 앞으로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수많은 기업이 북미에서 K-푸드의 성공 사례를 보고 도움을 요청하지만, 위의 성공 사례는 그냥 운으로 쉽게 이뤄진 것이 아닌, 수많은 실패와 긴 도전 과정을 거치고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보완하며 성장한 것이다.
현지화 작업은 가장 중요한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맛을 유지하면서도 현지인들의 식문화와 트렌드를 반영하여 그들이 한식이라는 문화에 공감하게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단순히 한국에서만 즐기는 음식이라는 것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지 여건에 맞는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통해 현지인들이 공감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결국 이 제품을 누가 어디서 먹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현지에 있는 잠재 고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유통시장을 확대하고 인플루언서들을 활용하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출을 극대화하면서 홍보 효과를 높여 나가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식의 고급화도 지금의 인기를 지속하기 위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식은 현지인들에게 쉽게 접하는 음식이 아니었고, 막상 먹어보면 저렴하고 생각 외로 맛있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앞으로는 K-푸드 고유의 브랜드 개발을 통해 단순히 판매를 늘리기 위한 접근이 아닌, 현지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일식이나 유럽 음식처럼 고급화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가격은 결국 그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침 K-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시기이기에, 지금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고급화에 성공할 수 있는 큰 기회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품의 다변화를 통한 차별화에 주목해야 한다. 기존 시장에 이미 나와 있는 제품과 경쟁하는 것도 좋지만, 좀 더 품목들을 다양하게 가져 나가면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떡볶이만 하더라도 초기에는 떡이 외국인들에게는 물렁거리는 식감 때문에 거부감이 컸지만, K-콘텐츠의 힘을 빌어 이를 넘었고 현지인들에게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며칠 전에는 미국 NBC 방송에서 떡볶이가 소개되어 인기를 증명했으며 BTS 지민이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 미국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는 고추장도 현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떡볶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또 간편하게 조리하고 즐길 수 있는 떡볶이 패키지까지 등장하면서 비건족 및 다이어트족 등과 같은 건강이나 웰빙을 중시하는 소비자 시장까지 확대되는 중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모든 카테고리 앞에 'K'를 붙여 단순히 K의 힘을 빌려서 판매하려는 전략에 부정적이었지만, K-푸드는 조금 다르다고 본다. 한국 고유문화의 일부이고 한국만의 독특한 식문화라고 할 수 있는 K-푸드가 전 세계 가장 큰 소비 시장인 북미에서 인정받고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통적 내수 산업이었던 한국 식품이 정부의 수출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 확대와 기업들의 꾸준한 노력, 그리고 현지에서의 차별화된 마케팅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K푸드를 접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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