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한 영 민
명심보감에 <행유부득(行有不得) 이어든 반구제기(反求諸己)니라> 라는 말이 있다. 즉, 행하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면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으라는 말이다.
한동안 한국의 지난 정권에서 뭔가 일이 잘못되기만 하면 모든 원인이 이를 비판한 언론이나 반대하는 야당에게 있는 듯, 남의 탓으로 몰아 부치던 시절 자주 인용되던 구절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참 억울하게 손해를 보는 경우가 다 반사로 일어난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건만 뭔가 예상치 않던 일이 터지며 자신의 뜻을 꺾어버리는 경우, 우리는 내 잘못이 아니야 그저 운이 나쁜 탓이야 혹은 나를 시기한 다른 인간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잘못된 일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모든 세상일,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일은 다 자신의 결정이나 자신의 행위에 의해 정해지기 마련이다.
만약 자신이 타고 가던 열차가 전복이 되어 부상을 입었다고 해보자. 누구의 잘못인가? 이것은 정말 천재지변에 가까운 재해이지 나의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숙고해보면 그 역시 자신의 탓이다. 그 기차의 목적지를 가겠다고 결정한 것도 자신이고 그 기차를 타겠다고 결정한 것 역시 자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자신의 존재와 행위에 의해 확인되는 것이기에 모든 원인과 책임은 자신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그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지 말이다.
이런 세상사의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모든 일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면 자신의 존재는 자꾸 초라해지게 된다. 자신의 행동을 떳떳하게 책임질 때 자신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된다.
골프를 예를 들어 보자. 마지막 승부를 가름하는 최후의 2미터 퍼팅을 남겨두었을 때 주변 동반자의 움직임이 자신의 시야에 잡히는 바람에 집중이 흩어져 공이 라인을 벗어났다고 하자. 이럴 때 많은 이들이 그 동반자를 탓하며 불평을 늘어 놓는다. 그런데 마침 라인을 벗어나 빗나가려는 공이 그린 위에 있는 작은 돌에 맞아 다시 홀에 들어갔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경우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 그 라인으로 공을 보내게 만든 동반자에게? 아니면 라인상의 돌멩이에게 감사 드려야 하는가? 이렇게 외부에서 원인을 찾다 보면 자신의 가치는 점점 무의미해 진다.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라도 어떤 경우든지 자신의 행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공이 돌에 맞고 홀에 들어갔건 동반자의 방해로 안 들어갔건 간에 정작 퍼팅을 한 것은 동반자도 작은 돌멩이도 아닌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잭 니콜라우스가 한창 이름을 날리며 승승장구를 하던 시절 당시 잭의 라이벌이자 넘치는 유머에장난기 마저 많던 리 트래비노가 어느 시합에서인가 마지막 퍼팅을 하던 잭 앞에 장난감 뱀을 던져 퍼팅을 미스하게 만든 일이 실제로 있었다. 그 후 골프 협회에서는 그것을 문제 삼아 리 트레비노의 선수 자격을 박탈할 것인지를 논의 중이었다. 그때 잭은 자신이 뱀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이미 선수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일이고, 그것을 이용해 리 트레비노가 자신의 퍼팅을 방해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퍼팅을 미스한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며 리 트레비노의 자격심사를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즉 자신이 뱀을 무서워하지 않았다면 리 트레비노 역시 그런 장난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경우라도 정작 퍼팅을 한 것은 자신이기에 자신에게 그 일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의 발언은 리 트레비노를 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그 발언을 통해 그가 세상사의 속성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자신이 존재하기에 일어나는 것이고 그 과정이나 결과 역시 자신의 행동으로 결정되는 것이 세상사의 원리라는 것이다.
이렇게 지극히 당연한 세상사의 원리를 깨닫는다면 자신의 행동이 어찌되었든 간에 그 책임을 회피하는 비굴함은 사라진다. 자신의 행동을 부인하고 모든 일의 원인을 외부에서 구하는 비굴함에 익숙한 사람은 솔직하게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당당한 태도가 얼마나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지 알지 못한다. 왜 잭 니콜라우스가 승리자의 이름으로 기억되는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비굴함이란 부끄러움을 모르는 심성을 의미한다.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음을 의미한다. (수오지심: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알고 보면, 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바로 우리 사회의 질서와 관계를 지탱하는 기본 정신이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자신의 애완견이 배설한 오물을 치우지 않고 오히려 욕설을 남기고 떠난 여자에 대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서 <개똥녀> 낯 뜨거운 이름의 화제를 남긴 적이 있다.
그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그녀는 그 당시 자신의 주위에 있던 승객들을 다시 볼 필요가 없는 타인으로 인식했기에 자신이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 승객들을 자주 마주하는 이웃으로 여겼더라면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지속성이 없는 인간관계에서는 몰염치한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은 타인에게는 어찌하든 관계없다는 염치없는 생각이 이런 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이렇게 사회의 구성원을 이웃이 아닌 타인으로 치부하는 한 우리사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회로 남는다. 부끄러움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지옥과 다름없다.
사르트르는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타인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사랑을 나누는 이웃이 없는, 타인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다. <개똥녀>가 그런 논란의 대상이 되어 곤욕을 치르게 된 것은 바로 스스로 타인의 세상에서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베트남의 한인사회는 과연 부끄러움이 존재하는 사회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인간들이 거짓된 가면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기세 좋게 행세하며 불의의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자들은 베트남에서의 인연을 지속성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곳을 그저 우연히 함께 지하철을 탄 것과 같은 일시적 군집형태로 보고 자신의 거짓된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나중에 자신의 가면이 벗겨지면 그저 지하철에서 내리듯 미련 없이 베트남을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한인사회의 역사도 벌써 16년을 넘었고 교민수도 10만을 상회한다. 이곳은 이제 그저 잠시 머물다가는 임시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에게 타인으로 남아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는 베트남의 한인사회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웃들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의 터전인 이곳을 가면을 쓴 자들이 행세하는 부정한 사회로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런 인간은 베트남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10만의 한인사회는 그런 인간의 남긴 오물로 인하여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남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타까운 거짓이 행세하는 사회를 누가 만들었는가?
반구제기(反求諸己), 바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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