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은 북한이 가장 유력하게 참고할 수 있는 경제발전 모델을 가진 국가다. 미국이 베트남을 회담 장소로 주장해 관철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한도 지난해 리용호 외무상이 베트남을 공식 방문해 경제 발전 상황을 살펴보는 등 관심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과 베트남의 자연조건, 경제구조, 인구 규모가 크게 다르다. 그러나 베트남의 초기 경제 전환 과정에서 발견되는 내용들 가운데 현재의 북한에서도 나타나는 유사점들과 차이점이 있다.
첫번째는 '지도자의 경제 발전에 대한 높은 관심'이다.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는 1986년 6차 전당대회에서 도이머이라는 경제 개혁정책을 채택했다. 구 소련의 붕괴로 인한 공산권과의 교역이 차단됨에 따라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 것을 우려가 커졌다. 이에 따라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를 개방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자문과 지원, 투자 및 교역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신년사에서 주민생활 개선을 강조한 이래 2016년 7차 노동당 당대회에서 핵미사일 능력과 경제 발전에 같은 비중을 두는 결정을 내렸다. 2017년말 북한이 핵보유국이 됐음을 선언한 김정은 위원장은 이후 경제 발전에 주력할 것임을 공표하고 국제사회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전개해 왔다. 평화와 경제협력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기 위한 시도다.
두번째는 '개혁 실험'.
1986년 도이머이 정책을 채택하기 이전부터 베트남은 소규모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집단농장과 국영기업 개혁을 통해 경제계획에 시장적 요소를 반영하는 내용이었다. 의사 결정 과정을 분산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북한 역시 나선특별경제구역 등지에서 경제 개혁 실험을 해왔다. 2014년에는 협동농장의 작업반 단위를 세분화하고 생산물 소유와 판매를 허용하는 한편 국영기업에 공장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했다. 2016년 이래 이같은 개혁이 더욱 확대되면서 의사결정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시장경제 활동이 허용되면서 경제실험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중산층이 형성되고 있다.
세번째는 '외부인의 관점에 대한 관심'이다.
베트남은 도이머이 초기 외국인에게 비공식적으로 경제 전략과 정책을 자문했다. 이후 1990년대 해외 원조국 및 민간 투자자들과 양자, 다자적 자문이 확대됨에 따라 베트남의 정책 결정에 대한 해외의 신뢰도가 높아졌고 베트남 지도자들의 주도하에 경제 파트너들 사이에 협력관계가 형성됐다.
북한은 외국인 및 기관들과 고위급 경제 정책 대화를 갖기를 꺼리면서 독자적인 경제 관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하위직 관리와 학자들은 최근 몇년 사이 국내외에서 열리는 경제 학습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가고 있다.
네번째는 '국가안보전략의 전환'이다.
베트남은1975년 통일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에 가입했으나 1978년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이후 10년 동안 국제사회의 경제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1988년 캄보디아에서 철수하고 지상군 규모를 감축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과 관계가 개선되고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북한은 국제관계 전환과 경제 발전 전망을 가져올 국가안보전략의 전환기에 놓여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북한의 경제 발전 전망이 달라질 것이다. 핵문제, 남북관계, 미국과 중국의 존재 등으로 북한의 경우 베트남에 비해 안보 전략을 전환하는데 고려할 사항들이 월등히 많다.
다섯번째는 '경제에서 남부의 역할'.
도이머이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은 경제운영을 남부 출신 지도자들에게 맡겼다. 남부지역이 전통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실질적인 경험이 많으며 대외교역과 투자 유치 경험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북한이 남한의 경제 개발 및 투자 유치와 교역 경험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 리용남 부총리가 남한의 재벌 총수들과 만난 것과 서울에서 열린 남북경협회의에 참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북한이 과연 지원과 투자, 교역을 넘어 재정과 금융 관리 부문 등에서 정책과 기술 지원을 모색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북한이 베트남에서 배울 점들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지도부가 변화를 주도해야한다는 점이다.
베트남 지도부는 변화를 주도함으로써 변화를 관리할 수 있었다. 이 점은 현재 북한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베트남은 개혁 초기에 자유화에 성공함으로서 도이머이와 변화를 주도하는 지도부에 대한 정치적 지지 기반을 마련했다.
북한이 배울 교훈은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개혁을 통해 생산성과 경제 성장을 높이고 국제 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의 분산, 시장에서 여성의 활동 강화 및 혁신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두번째는 법률 및 금융시스템, 교역 및 거시경제 관리 체제 구축이다.
베트남은 시장경제를 담당하고 원조 및 기술과 역량 지원을 위한 제도 마련에 적극적이었다. 경제 관리에 필요한 통계를 업그레이드하고 정책 분석과 투자 계획 및 빈곤 감소를 안내해줄 평가 및 조사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적이었다.
북한은 아직 경제 및 금융 통계를 국제기준에 맞춰 현대화하는데 관심이 없다. 외국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금융시스템을 현대화하기 위한 법률 정비 노력이 일부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효과적이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번째는 국영기업 개혁.
국영기업 개혁은 베트남의 개혁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초기에는 민간 부문의 역할을 늘리고 경영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정부의 자금 지원을 축소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국영기업에 대한 우대가 여전했고 이들에 대한 외국 투자자들은 경영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도 2002년부터 시작한 국영기업 개혁이 2014년 들어서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경영자에게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하고 국가의 지시를 축소하는 한편 국영기업의 시장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베트남의 국영기업 개혁과 국영기업들 사이의 관계, 민간부문 및 외국 파트너와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배우는 것이 북한과 협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한, 중국 및 일본과 어떤 협력 모델을 마련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다.
네번째는 성장을 동반하는 개혁이다.
베트남의 경우 개혁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적이었다. 이는 국내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대외관계를 개선하는 정책에 따라 개혁 초기 높은 경제성장을 이룸으로써 가능했다. 공적개발원조(ODA)와 외국 직접투자 및 기술지원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2002-2003년 개혁은 제재와 자력갱생 정책으로 실패했다. 북한은 대외관계를 개선을 통한 대외 경제 환경 개선으로 "성장을 동반하는 개혁"의 혜택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다섯번째는 경제 지도자 및 핵심 기관의 역할이다.
베트남의 성공은 정책 결정 및 집행자가 유능했다는 사실에 크게 힘입었다. 경제부총리를 임명해 정부 기관들 사이의 협력과 일관성을 조율함으로써 국제금융기관들과 경제 개혁, 경제 관리 및 투자 우선순위를 논의하기가 쉬웠다. 국가계획위원회와 국영은행 및 재무부가 이를 지원했다. 외무성의 역할도 컸다.
북한도 내각의 정책 주도권을 강화하는 등 진전을 보이고 있다. 젊은 테크노크라트와 학자들이 해외 교육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경제 사고 방식을 갖추고 있다. 베트남의 경제관리 방식을 배움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번째는 국제금융기관의 역할이다.
IMF와 세계은행은 자금 지원을 시작하기에 앞서 1988-1993년 교육과 정책 자문을 제공했다. 제재가 진행중이었음에도 미국의 묵인하에 국제금융기관들이 신뢰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국제금융기관들은 정책 대화와 원조 조율에 핵심역할을 했다. 일단 자금지원이 시작되면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외국 정부 기관과 기타 원조기관, 민간 투자자 및 NGO 들과의 실무적 관계 역시 중요하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 국제금융기관들과의 관계 수립을 모색했지만 국제금융기구 가입에 따른 투명성 제고 등의 요건 때문에 주저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되는 경우 베트남의 국제금융기관들과의 경험이 중요한 참고 사항이다.
일곱번째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한국무역신문 wtrade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