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골프장 내기 금지령까지 내려
사회주의 원칙상 도박은 불법
만연한 '뒷돈' 문화, 손 쉽게 번 돈 도박 확산에 기름
경마,축구 내기 등 스포츠 베팅 합법화 움직임도
코로나19로 위축된 관광산업 부활 명분
사회주의 원칙상 도박은 불법
만연한 '뒷돈' 문화, 손 쉽게 번 돈 도박 확산에 기름
경마,축구 내기 등 스포츠 베팅 합법화 움직임도
코로나19로 위축된 관광산업 부활 명분
베트남에서 골프는 상류층들의 사교 문화로 시작됐다. 1990년대에 하노이 북쪽 동모라는 지역의 호숫가에 첫 번째 골프클럽이 개장한 이래, 하노이의 내로라하는 이들이 하노이 유일의 ‘하노이골프클럽’의 멤버였다. 클럽 구성원은 정관계 및 재계의 주요 인사들을 망라했다. 2010년대 들어 베트남 경제가 아시아를 휩쓸었던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부활의 기지개를 켜자 골프장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베트남 전역에 골프장으로 허가를 받은 프로젝트가 약 260건에 달했다. 그나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받으면서 정부로부터 허가장을 받은 골프장 프로젝트는 90건 정도로 축소됐다.
골프가 상류층들의 사교 모임으로 얼마나 활성화돼 있는 지는 매년 개최되는 ‘그들만의 리그’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다. 매년 6월 초에 열리는 ‘12간지(干支) 경기’가 대표적이다. 12개 띠별 대항전인데 전국 규모로 열린다. 각 띠를 대표하는 강자들이 모여서 자웅을 겨루는 셈이다. 올해는 84년생 개띠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고 한다. 나이를 중시해 띠별로 모임을 가지는 베트남 특유의 문화를 반영한 경기다. 전국 클럽대항전도 얼마 전 성료됐다. 1990년대에 비해 요즘은 골프를 매개로 한 사교 클럽이 워낙 많아져서 그들만의 리그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G7’이라 불리는 클럽이 가장 유명하다.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도박은 죄악이다. 원칙상 도박 산업은 모두 불법이다. 중국도 마카오를 예외 지역으로 했을 뿐, 본토에선 도박을 금지하고 있다. 베트남 역시 국영기업들이 사업자인 로또를 제외하고 모든 도박은 불법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도박이 상당히 만연해 있다. 카지노만 해도 홍콩의 유명 업체인 태양성그룹이 다낭에서 대규모 ‘정켓(junket, 백화점의 임대매장과 비슷한 개념으로 카지노 운영자와 계약을 맺은 에이전트가 VIP 고객을 유치해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운영 중이다. 중국과의 접경지대인 몽카이, 라오까이 등을 비롯해 캄보디아, 라오스 국경 지대에도 카지노 사업장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경 지대의 카지노 사업장은 지하자금이 유통되는 통로로 활용된다는 게 정설이다. 캄보디아만해도 베트남계가 경찰청장을 지낼 정도로 베트남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중국과의 접경지대엔 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화교들이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의 도박 문화가 번성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KOTRA 하노이 무역관은 2016년 11월에 ‘베트남은 지금 로또 열풍’이란 보고서를 내면서 복권에 관대한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기 또는 도박을 불법활동으로 규정한 오늘날에도 판돈을 건 닭싸움, 소싸움 등이 단속 기관의 눈을 피해 성행하고 있다. 베트남은 예로부터 내기 형태의 놀이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뒷돈 문화와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쉽게 번 돈을 쉽게 쓴다는 논리다. 골프장에서 내기를 하는 이들 중엔 공직자들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총리 월급이 채 100만원도 안 되는 나라에서 고위 공직자들이 수십채의 아파트와 전원 빌라를 소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베트남 투자를 계획하던 한국인 사업가인 A씨는 “베트남의 제법 큰 도시에 투자하기 위해 한국 정부측 인사와 함께 갔는데 베트남측에서 사업비의 30%를 리베이트로 요구해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공직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뒷돈 문화는 일종의 관행처럼 성행하고 있다. 대학에선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앞두고 십시일반 돈을 거둬 교수에게 전달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진다. ‘완장’을 찬 이들이 그들이 가진 일말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뒷돈을 요구하는 건 베트남에 고착된 관행이다.
베트남 정부는 골프장 도박 금지령을 내리는 등 도박 문화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그간의 금지 기조를 완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관광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도박 산업을 마중물로 활용해야한다는 의견이 높아져서다. 지난달 23일엔 국회의원,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카지노와 경마장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업가들이 모여 컨퍼런스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하면 수십억 달러가 국고에 회수되고, 코로나19 이후의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업자들은 베트남관광청(VNAT)의 추산을 인용해 해외 관광객이 1회 방문당 평균 400~600달러를 지출하고 있는데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하면 관광객의 지출액이 1000~1500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 정부의 관광 수입이 매년 최소 80억~150억달러씩 증가할 것이라는 게 사업자들의 논리다.
베트남 정부의 스포츠 베팅 활성화 방안은 우리 기업과도 관계가 있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지난해에 하노이시는 시 외곽에 경마장을 건립하는 방안을 허가한 바 있다. 베트남 내 한인 기업인 참빛그룹의 이대봉 회장이 경마 사업과 관련한 라이선스를 받았다. 온라인 경매까지 가능한 라이선스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에서 경마 사업을 하겠다는 한국 기업은 참빛그룹 외에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결국 이대봉 회장이 ‘경마장 아이디어’를 최종적으로 거머쥐었다. 한국마사회 직원들도 하노이, 호찌민 등지에 제법 나와 있다. 스포츠 베팅 합법화가 현실화된다면 한국 기업이 베트남 경마장 부활을 이끌게 되는 셈이다. 베트남 기업들은 한국의 주도에 대항하기 위해 하노이 뿐만 아니라 호찌민, 달랏 등지에서 경마장을 만들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최남단의 휴양지인 푸꾸억섬에 카지노가 들어설 가능성도 높다. 푸꾸억은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코로나 카지노 등 내국인 출입이 허용된 카지노를 두 군데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푸꾸억에서 지척에 있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30개 가까운 대형 카지노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박 산업이라는 관점에선 여전히 미개척지다. 중국의 ‘큰손’들은 시아누크빌의 카지노에서 엄청난 돈을 뿌린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가뜩이나 재정 수입이 줄어든 베트남 정부가 사회주의적 원칙과 재정 확충이라는 현실 중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