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다소 침체됐던 베트남 소비시장은 1억 명에 육박하는 인구와 빠른 경제 성장에 따른 구매력 증가에 힘입어 잠재력을 인정받은 지 오래다. 코로나19로 주춤하긴 했지만 우리 기업들은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한 업계 재편, 옴니채널 확대 등 현지 소비시장의 최근 변화들을 눈 여겨 보고 기회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위기에도 견고한 소비시장=지난해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신음하던 중에도 배트남은 감염병을 성공적으로 통제하면서 소비시장이 성장세를 보였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0년 아세안(ASEAN) 주요 6개국 소매시장은 모두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베트남만 유일하게 1.7%로 플러스 증가율을 나타냈다. 가장 크게 하락한 국가는 필리핀으로 무려 -10.2%였으며 싱가포르(-9.9%), 인도네시아(-6.8%), 태국(-6.1%), 말레이시아(-5.1%)가 뒤를 이었다.
베트남은 올해도 1월의 소매 판매가 코로나19 이후 가장 높은 6.4%를 기록하면서 회복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방역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최소화, 소매업체들의 다양한 프로모션 진행 등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베트남 정부는 재정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3억7200만 달러를 저소득층에 지원했으며 베트남 중앙은행은 작년 10월 기준금리를 0.5%p 인하하면서 경기 부양에 나섰다.
올해 베트남 소매시장의 성장률 전망치는 9.2%다. 이 수치는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을 제외한 최근 5년(2015~19) 연평균성장률(CAGR) 8.1%를 상회하는 것으로 소비시장의 본격적인 회복세를 의미한다. 평균 실업률은 2019년의 2.2%에서 작년에는 2.48%로 상승했지만 세계적으로 최저 실업률을 기록한 10개국에 포함됐으며 올해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2.2%로 감소해 근로자들의 소비여력이 더욱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은 3.5%로 전년 대비 소폭 상승이 예상되지만 소비 회복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식 소매 유통채널의 증가=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의 도시화율은 2000년의 24.4%에서 작년에는 35.9%로 증가했다. 또한 베트남은 ‘2021~30 도시개발 전략’을 통해 도시화율 50~52% 달성과 하노이, 호찌민, 다낭 등 주요 도시를 국제도시로 육성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이렇듯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낙후된 소매유통 채널 역시 현대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도시화의 진행과 중산층의 성장 등으로 젊은 도시인구를 중심으로 소비생활도 점차 변해가고 있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제품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현대식 대형 마트가 증가하고 핵가족화와 1인 가구의 증가로 편의점, 드러그스토어 역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작년 말 기준으로 베트남 전국에는 8500여 개의 현대식 소매 유통채널이 있으며 편의점과 미용 및 의약품 전문 드러그스토어 등이 대도시 인구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
베트남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19년 대도시의 1인당 평균 소매판매 및 서비스 지출은 5120만 동(약 2220달러)으로 2010년에 비해 2.6배 증가했으며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를 넘어섰다. 다만, 작년에는 코로나19에 따른 급여 삭감, 고용 불안 등으로 저축성향이 강화됐다. 작년 2분기 닐슨 베트남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남은 현금을 저축한다’고 답했다.
최근의 소비시장 회복은 작년 말부터 감염병 상황이 진정되고 경기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부유층들은 다른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보복소비의 경향을 보여주면서 소비시장을 이끌고 있다.
다만, 1억 명의 인구 중 60% 이상이 아직 농촌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도시를 제외한 농촌에는 백화점이나 편의점, 드러그스토어, 대형 마트 등 현대적 유통망이 전무하다. 농촌 소비자들은 대부분 전통시장이나 소규모 상점을 이용한다. 마케팅 리서치 전문기업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베트남 소비자들은 판매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점이나 재래시장을 거닐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면서 식료품 등을 구매하는 것을 선호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8700여 개의 전통시장과 140만 개의 소규모 식료품점이 존재한다.
●활발한 M&A 등 경쟁 치열한 유통시장=베트남 유통시장은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선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롯데그룹은 베트남 전역에 15개 마트와 2개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의 유통 대기업 이온그룹은 6개 쇼핑몰의 주인이다. 태국의 최대 소매기업 센트럴그룹 역시 32개의 쇼핑몰과 215개 소매점을 열고 있다.
베트남 기업으로는 2019년 빈그룹으로부터 빈마트, 빈마트+ 등을 인수한 더크라운엑스의 자회사 빈커머스, 2000여 개의 스마트폰 및 전자제품 소매 체인을 운영하는 모바일월드의 식료품 체인 박화사인, 1000여 개의 대형 마트 등을 보유한 사이공쿱 등이 있다.
5~6년 전만 해도 베트남 유통시장은 외국인 투자기업들이 장악할 것이라는 예상이 팽배했다. 2016년 태국의 TCC홀딩스가 메트로캐시앤캐리 베트남을 인수했으며 태국 센트럴그룹은 빅씨를 품었다. 당시 하노이 슈퍼마켓협회에 따르면 베트남의 현대식 소매 유통채널은 절반 이상이 외국계 기업 소유였다.
베트남 기업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은 2018년부터다. 그해 말 빈마트는 일본 이온그룹 소속의 피비마트 체인 23개를 인수했으며 사이공쿱은 2019년 프랑스 소매 대기업 오샹의 13개 체인을 사들였다. 올해는 한국 기업들의 소식도 들린다. 지난 5월 이마트가 호찌민에서 운영하는 1개 매장의 지분 100%를 타코그룹에 매각했으며 6월에는 롯데마트가 하노이의 3개 매장 중 한 곳인 동다점을 폐점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외국계 기업들이 현지 유통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철수 수순을 밟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국계 기업들의 진출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빅씨를 운영하는 태국 센트럴그룹은 향후 5년간 11억 달러를 베트남 사업에 투자할 예정으로 주요 대도시뿐 아니라 농촌지역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닐슨 베트남에 따르면 베트남의 현대식 소매채널의 성장은 편의점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2018년 베트남에 처음 진출한 국내 편의점 유통체인 지에스25는 올해 3월 빈증성에 100호점을 열었으며 직영으로만 운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가맹점 모집을 통해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실제 베트남의 도소매 및 유지보수 분야 신규 투자유치 건수는 2015년의 306건에서 2019년에는 1105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으며 신규 유치액도 3억7520만 달러에서 8억8080만 달러로 130% 이상 늘었다. 다만,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신규 투자 건수와 액수 모두 크게 줄었지만 올해 이후 회복세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빨라지는 소비채널의 비대면화=베트남의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조사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30억~50억 달러로 아직까지 전체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에 불과하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베트남의 온라인 쇼핑 비율은 3.1%로 인도네시아(19.9%), 싱가포르(15.6%), 태국(8%), 말레이시아(7.3%) 등 다른 아세안 국가에 비해서도 최하위권이다.
하지만 지난해 베트남 전자상거래 시장은 전년보다 16% 증가하면서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전자상거래 이용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베트남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에는 전체 인구의 55%가 온라인 쇼핑을 하고 온라인 쇼핑이 전체 소매판매의 10%를 차지할 전망이다. 베트남 정부도 전자상거래 발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승인하는 등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개최된 ‘베트남 온라인 비즈니스 포럼’에서는 베트남 전자상거래 시장이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가 20% 이상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포럼에 따르면 베트남의 전자상거래 지수는 호찌민 67.6, 하노이 55.7, 다낭 19로 농촌지역에 비해 물류 인프라와 상업이 발달한 대도시 위주로 활성화돼 있다. 연령별로는 주요 소비계층인 20~30대의 비중이 더욱 증가했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50대 이상 사용자도 증가세를 보였다.
주요 소매 유통기업들에게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 놓칠 수 없는 시장이 되면서 이 둘을 결합한 옴니채널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옴니채널은 미국 월마트를 시작으로 주요 글로벌 유통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취해온 전략으로 오프라인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온라인으로는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인데 베트남 기업들도 이런 트렌드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브라테크놀로지의 트레이시 여 이사는 “베트남 소매업체들은 소비자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적절한 옴니채널 경험 제공을 통해 고객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최대 기업인 빈그룹 역시 베트남 소비자들의 이 같은 특성을 파악하고 올해 1월부터 소규모 상점들을 대상으로 ‘빈숍’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상점과 상품 공급업체들을 손쉽고 빠르게 연결시켜주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기존 공급망의 비효율성을 개선했으며 운영 효율성을 통해 월 평균 432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
다른 소매 유통기업들도 옴니채널 확장에 적극적이다. 롯데마트의 온라인 플랫폼 ‘스피드엘’은 지난 3년간 매출액이 5배 이상 증가하면서 즉석 조리식품, 신선식품 등으로 품목을 확대하고 있으며 차량 공유기업 그랩과 협업해 1시간 내 배송 서비스인 ‘그랩 익스프레스’를 선보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2022년까지 주문 처리 능력을 3배로 늘려 온라인 채널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빅씨 역시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 춉과 제휴해 채소, 해산물 등 신선식품에서 일반 소비재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배달하고 있다.
●우리 기업 시사점=최근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는 베트남 소비시장에 복병이 나타났다. 4월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4차 대유행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최대 소비도시인 호찌민을 중심으로 하루에 수백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의 연장에 따른 소비심리 축소와 구매력 감소가 우려된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 특유의 강력한 대응과 그간 쌓였던 경험을 토대로 감염병 사태가 차츰 안정되고 소비시장도 다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 시점에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 소매시장 진출 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적정 소비자가격과 소득수준, 지역 등이다.
먼저 가격적인 측면에서 베트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500달러 수준으로 아직 소득 중하위 국가에 속하기 때문에 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한 적정 소비자가격 책정과 다양한 프로모션 등을 통해 고객을 유인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가격을 낮추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베트남은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구매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저가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소득수준 관점에서 본다면 성장하는 중산층을 적극 공략할 필요가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2020년 월 소득이 714달러 이상인 베트남 중산층 수는 2014년 대비 2배 늘어난 약 3300만 명에 이르며 2030년까지 9500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부유층도 가파르게 증가해 2030년에는 전체 인구의 16%가 고소득층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1인당 소득이 5000달러를 웃도는 하노이, 호찌민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아직 대부분의 소비는 명품과 기호품, 사치품이 아닌 생필품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프리미엄 제품보다는 보급형 제품이지만 특색이나 가성비를 갖춘 제품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KOTRA 다낭 무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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