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는 수 많은 인간들과의 만남이 생기고 또 인연이 만들어진다.
핏줄로 엮인 피붙이부터 고향에서 만난 이웃들, 학교에서 만난 학우들,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 사업으로 만난 사회인들 그리고 또 사랑으로 엮인 연인과 가족들.
이런 인연들, 살아가면서 엮이는 수많은 관계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생각해 보신 일이 있으신가? 그저 함께 살아가고 혹은 사업을 함께 하고, 골프를 같이 치고 또 무료하면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덜어주는 부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실상은 그보다 훨씬 무겁고 진지하다. 비록 이들은 자신과 물리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타인이지만 이들의 존재가 자신의 정체를 정의하는 근거가 된다.
내 이름이 한영민이다. 만약 당신이 나를 전혀 모르는 관계라면 이렇게 내 이름을 밝히는 것만으로 나의 정체를 알 수 있는가? 당장 한영민이 누군데? 하며 2차 질문이 나올 것이다.
한영민이란 친구는 나이가 50대 중반인 한국인 남성으로 김 권사님의 말썽꾸러기 넷째 아들로 시작하여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빠, 누구 누구의 친구, 모모 회사의 운영자, 모 잡지의 칼럼 기고자라는 등의 정보를 알고 나며 그제서야 당신은 한영민이라는 인간의 정체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정체를 드러내는 여러 정보 가운데 타인과 관계없이 '나'라는 고유의 개체가 갖는 순수한 정체는 나이와 성별뿐이다. 나머지 정보는 전부 사회의 구성원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정체다.
세상에서 인정하는 개인의 정체는 어느 사회에 소속된 어떤 역할을 하는 인간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말했다. 단순히 군집생활을 하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관계와 역할이 주어져 있을 때만 비로서 존재가 인정되는 동물이라는 얘기다. 타인과의 관계가 없다면 인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의 삶이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작업이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을 통째로 차지하는 그 관계 맺음이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관계를 맺는데 사용되는 기본 수단은 대화(對話)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감성을 교환하여 서로 사랑하든, 혹은 미워하고 저주하든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대화한다는 것 즉, 서로 말을 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에서 나오는 여우는 왕자에게 관계 맺음이란 서로에게 ‘길들여 진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그 길들여지는 수단은 대화이기는 하나, 대화는 오해의 근원이니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참을 성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면서 정작 여우는 계속 말을 한다. 바로 대화가 갖는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화란 서로를 이해하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오해를 부르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문명의 이기이자 동시에 살상 무기가 되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특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 대화다.
다이나마이트가 살상의 무기로 사용된다 하더라도 그 사용을 포기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비록 대화가 오해를 낳고 서로 증오하는 관계를 만들 위험이 있다 할 지라도 대화를 포기 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
우리들은 때때로 상대에게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인 대화의 단절을 시도하기도 한다. ‘나 삐쳤다’ 는 것을 꽉 다문 입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신중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화의 사절이란 무관심의 적극적 표현이고, 무관심이란 상대와 관계 자체가 없다는 것이니, 대화의 포기는 곧 관계의 부인으로 발전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관계없는 이에게 불편한 감정을 전달하고자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 셈이다. 그래서 대화의 단절은 손쉽게 선택할 가벼운 수단이 아니다.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효과적인 방안은 된다.
자칫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 직전에 우리는 “이러지 말고 말로 하자” 하며 대화에 매달린다.
서로 상대를 죽이는 전쟁 중에도 휴전을 위하여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다. 이렇게 대화가 갖는 의미와 역할을 깨닫는다면 함부로 포기를 운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의 삶이 관계 맺는 작업이고 그 작업이 대화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오해가 생기지 않는 대화법을 익히는 것이다.
그런 대화법이란 어떤 것인가? 대화의 진정성(眞正性) 여부가 관건이다 진정이 담긴 대화가 가장 효과적인 대화법이다.
진정성있는 대화란 [정직]한 정신과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것을 의미한다.
[정직]이란 속된 말로 뻥 치지 말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고, 느낀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정직이다. 가진 게 없으면서 부풀리지 말고, 있지도 않은 일을 소설 쓰듯이 만들어내지 말고, 소문에 들은 일을 본 것처럼 떠들지 말고, 가보지도 않은 일류대학을 나왔다고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이 정직한 대화다.
[배려]란 미인을 보고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미인이 못 되는 여성에게는 개성이 있다고 칭찬하는 것이다. 가지지 못한 상대에게 자신의 재산을 언급하지 않고, 배우지 못한 이에게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고, 실연당한 이에게 애인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 배려가 담긴 대화다.
[정직]이 이성이라면 [배려]는 감성이다. 정직하다고 남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거짓은 아니지만 배려가 없는 행위다. 배려가 부족한 정직은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필자가 반드시 반성하고 배워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이 글 속에서도 배려의 부족함이 드러난다.
어찌되었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이 관계를 맺는 작업이고, 그 수단이 대화라면, 대화의 진정성이야말로 삶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는 셈이다. 말을 매끄럽게 잘하고 못함은 문제가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모세>는 자신이 입이 둔하고 말을 할 줄 모른다 하여 형 <아론>을 대언자로 내세워 그 민족을 이끌었다.
베트남이라는 이국의 땅에서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는 관계란 무엇인지, 어떻게 관계를 맺고 발전시킬 것인지 한번 정도 되씹어 봄직한 사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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