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씨!
까다롭고 어려운 한국어 호칭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 학생과 얘기를 나눠보면 한국어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존댓말이라고 합니다. 하긴 한국어에는 참 다양한 높임말들이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처음 보는 상대에게 하는 통상적 대화의 존댓말, 나이가 많이 든 사람에게 하는 극 존댓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로 말을 높여 주는 의례적 존대어가 있습니다. 또한 반말에도 구분이 있죠. 친구나 친한 동년배 사이에 쓰이는 평상적 반말, 자신의 가까운 후배나 아주 어린 사람에게 사용하는 낮춤 말,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구분이 안가는 어정쩡한 준 반말 등.
이렇게 다양한 계층어가 존재하다 보니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인들도 가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생면부지의 인성들이 새로운 만남을 가질 때는 상대가 사용하는 대화법을 보면서 그 사람의 인격과 교양을 짐작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깍듯한 존대어를 쓰시는 분들은 대부분 공무원이나 종교인들이 많고 반말 비스무리한 존대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의사나 교사 등의 직업 군으로 보이고, 처음 만남에도 대충 반말로 어울리려는 부류는 저급한 장사치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초면에 바르지 않은 호칭으로 자신을 부를 때는 참 난감한 입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자신보다 좀 어려 보이는 사람이 자신에게 형씨! 라고 부른다고 해봅시다. 이때 사용되는 형이라는 표현은 나이가 많은 사람을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야! 혹은 어이! 하고 부를 수 없기에 선택하는 저급한 대안적 호칭입니다. 그런데도 형이라고 했으니 높임말이다 하면 할말이 없게 되는 거죠. 이렇게 호칭은 서로의 위치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는 터라 아주 조심스러운 선택이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된 호칭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어내어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친근한 표현으로 부른 호칭이 상대에게 모욕으로 들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말의 호칭에는 다양한 구분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나이에 따른 호칭이 있고, 직장이나 단체에서 직책을 기준으로 하는 호칭, 그리고 가족이나 지역에서 항렬이나 연배를 기준으로 하는 호칭 등이 있겠습니다. 제가 명문화된 언어규정을 들어가며 올바른 호칭 사용법을 판단할 입장은 못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끔 어색하게 들리는 호칭에 대한 사례를 들어보며 올바른 사용 예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흔하게 접하는 어색한 호칭은 자신을 드러낼 때 직책이나 직업을 스스로 부르는 경우입니다.
TV에서 골프 프로들이 자주 나옵니다. 이들이 인사할 때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볼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000 프로입니다” 하고 인사를 합니다. 이거 맞는 말일까요? 올바른 말로 고친다면 “안녕하세요, 저는 골프 프로 000입니다” 가 맞습니다. 저는 000프로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저는 사장입니다” 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표현입니다. 이 문장에서 나라는 주어의 상태를 설명하는 서술어는 이름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직업을 문장 끝으로 보내면 직업이 바로 자신이 되는 어색한 표현이 됩니다. 나라는 주체를 서술하는 표현은 직업이나 직책이 아니고 이름이 주가 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느껴집니다.
어느 분의 전화대화를 들었습니다. “아 나 이 사장입니다.” 라고 자신을 밝힙니다.
이거 역시 뭔가 어색하지 않나요? 위에서 언급한 “나는 000 프로입니다” 와 같은 경우입니다. 설사 그 상대가 직분을 서로 부르는 거래처라 할지라도 “안녕하세요, “저는 00회사의 한영민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한영민입니다” 라는 표현을 해야 하는데 저라는 주어의 서술어로 직책을 내세우는 것은 “저는 사장입니다” 라는 말이 됩니다. 요즘 말로 누가 (직업이나 직책)을 물어 봤습니까? 일단 정중하게 이름을 대고 그래도 상대가 기억을 못하면 그때 자신의 직업이나 직분을 얘기하는 것이 올바른 대화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흔히 잘못 사용하는 호칭을 들자면 옹, 마담이라는 표현입니다. 옹이라는 표현은 베트남어에서 나이든 남자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고 마담은 역시 결혼한 여성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데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을 옹한, 옹킴 혹은 마담이라고 스스로를 높여 부릅니다. 아마도 듣는 사람은 속으로 이 양반 제대로 배우질 못했군 하며 비웃을 줄도 모릅니다.
또 영어로 미스터는 한국어로는 누구 씨 하는 말처럼 상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높임말인데, 일부 한국 사람들은 자신을 지칭할 때 스스로 미스터 킴 미스터 한 이라고 부릅니다. 역시 교육이 충분치 못한, 어긋난 화법입니다.
이번에는 남을 부를 때 범하기 쉬운 잘못을 좀 찾아봅시다.
한참 전에 5살 위의 집안 형님과 형의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형의 친구가 저를 “한 형”이라고 부릅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웬 형?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럴 때 부른 형이라는 뜻은 나이가 자신보다 많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년의 남자라는 의미가 됩니다. 아무리 친구의 동생이지만 나이가 이미 성년이 되었고 아직 초면이라 친근하게 이름을 부를 관계가 아니니 형이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낮추어 예의를 차린 것입니다.
가끔 이럴 때 사용하는 형이라는 호칭을 나이에 의한 존칭으로 잘못 이해하여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성씨 뒤에 형을 붙여 김형, 한형 하며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예의에 맞는 화법이 아닙니다. 즉 성씨 뒤에 붙이는 형의 의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 교분이 쌓이지 않은 동년배나 자신보다 어린 성년의 남자를 마땅하게 부를 호칭이 없을 때 사용하는 낮은 수준의 존칭입니다. 그러나 성씨 대신 이름자 다음에 붙이는 형이라는 호칭(영민이 형)은 어린 사람이 친근하게 지내고 있는 형 뻘의 사람에게 칭하는 사랑스러운 호칭이죠. 이렇게 형이라는 호칭이 성씨 뒤에 오는가 이름 뒤에 오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참 어려운 한국어 맞습니다.
또 한국어의 씨 라는 호칭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특정인을 부를 때는 누구 씨하며 부를 수 있지만 상대와 대화를 하며 상대를 누구 씨라고 부르는 것은 동년배가 아니면 결례를 저지르는 일이 됩니다. 상대를 마주하고 씨라고 부르는 소리는 결코 존칭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끔 나이 어린 신입 여직원이 마땅한 직책이 없는 선배에게 누구 씨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글쎄 결코 집안 교육을 잘 받은 규수로 보이지 않습니다.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죠. 씨나 형이라는 호칭은 한국어에서 진정한 존칭이 아닙니다. 오히려 낮은 수준의 호칭입니다.
직장이나 단체에서는 주로 직책을 호칭대신 사용합니다. 김 사장님 혹은 한 이사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회사에서 직원이 사장을 부를 때 성씨를 붙이는 것 역시 결례인 것 아십니까? 그 회사에 사장이 하나뿐인데도 사족같이 성씨를 붙이면 좀 다른 의미가 생겨납니다. 즉 그런 호칭을 사용하여 자신의 사장을 부르는 사람은 자신을 사장과 위아래 관계가 없는 동등한 위치로 서겠다는 의사 표현이 됩니다. 그 회사 직원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의 타인이 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게 몇 번 잘못된 호칭을 사용한다면 조만간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대화란 소통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니 소통만 잘된다면 어떤 대화법을 쓰든지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에는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상대에게 호칭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역시 제대로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겠죠. 특히 외국에 나와서 수많은 타인 만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가벼운 잘못으로 자신의 인격과 교양이 저울질 된다면 좀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자신이 사용하는 대화에 인지하지 못하는 실수는 없는지 한번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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