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영민

kimswed 2009.06.07 08:10 조회 수 : 1332 추천:417



感性(감성)의 국민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것은 바로 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한다. 국어 사전을 보면 이성(理性)이란 사리를 분별하고 진위, 선악 또는 미추(美醜)를 식별하는 동물과 다른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했다. 즉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하는 말이지만 철학적으로는 감성과 대치되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성(理性)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한자 풀이를 보면 된다. 이성은 다스릴 理 와 성품 性 자를 쓴다. 즉 다스리는 성품을 말한다. 반면 감성(感性)은 느낄 感 자를 쓴다. 즉, 외부 자극에 오감으로 반응하여 느끼는 성품을 감성이라고 한다면 그 감성을 다스리는 것이 이성(理性)이다.
예를 들어 한참 자고 있는 새벽시간에 어디선가 요란한 밴드소리가 나서 잠을 깨면 새벽부터 어떤 인간이 밴드를 불고 난리인가 하며 울화가 치미는 것은 오감에 단순 반응하는 감성이고 이 밴드 소리가 장례 행렬을 이끄는 밴드라는 것을 인식하고 나면 누군가 명을 달리한 분의 명복을 비는 것이 인간만이 지닌 사리분별의 능력 중에 하나인 이성이다.

베트남에 와서 처음 놀란 것은 거리를 메운 자전거와 오토바이 행렬이다. 가끔 여왕개미가 일 개미들을 몰고가 듯 간간이 자동차가 다니긴 하지만 도로의 대부분은 이륜차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이륜 차들이 아무데서나 유턴에 가로 가기는 물론이고 역 주행도 서슴지 않으며 시도 때로 없이 자동차 앞뒤를 드나드는 무질서한 상황에도 아무 불평 없이 운전하는 기사의 인내심이 놀라웠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이 장면을 대하면 공통적으로 하는 소리가 있다. “참 대단하다. 우리 같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 멱살잡이를 할 것 같은데 아무도 뭐라 안 하네.” 한국 같으면 당장 차에서 내려 언성을 높이고 주먹질을 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장면이 끊임없이 연출되는데도 아무도 싸우기는커녕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그렁저렁 양보하고 피해가며 다들 제 갈 길을 찾아간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한국사람은 질서의식이 좋아서 그렇고 베트남 사람들은 아니라 그런가? 글쎄, 그렇게 간단히 단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성공적으로 전파된 곳이 한국이라 한다. 그래서 한국 행 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서울을 내려다 보면 교회를 나타내는 붉은 십자가 마크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만큼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한국인은 거의 다 종교를 갖고 산다. 아마도 집안에 종교를 가진 사람이 없는 집은 드물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종교에 몰입하는 심도가 깊다. 즉 독실한 신자가 많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한국인은 왜 종교에 매달리는가? 삶이 혼란스러워 그런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신심이 깊어서 그런가?  

한국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혹은 특정 정치인들을 따르는 모임이 많다. 누구누구를 사랑하는 팬클럽이 그렇고 특정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O사모라는 모임이 그렇다. 이런 모임의 특성은 철저히 배타적이라는 데 있다.
자신이 따르는 지지자는 무조건 옳고 그에 반하는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적의를 드러낸다.

물론 회원 개개인이 희망하는 모임의 지향점이 다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언행은 결코 포용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왜 그럴까?


왜 그들은 정책보다는 인물에 매달리며 배타적인 성향을 서슴없이 드러낼까? 맘에 드는 정당이 없어서? 그냥 좋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지 못하지만, 인간의 생에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은 감성과 이성의 대립으로 기인한다.
감성이 넘치는 사람과 이성의 통제가 잘된 사람과의 대화는 접점을 찾기 힘들다.

조건을 따지며 연인을 구하는 남자와 사랑이면 모든 게 다 된다는 여자가 만난다면 이들은 연인관계로 발전될 수 있을 까?    
어떤 한국의 작가는 술을 못 마시는 인간과는 상종을 안 한다고 방송에서 기세 좋게 떠들어 댄다. 술을 마셔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는데, 진정한 대화는 술로 이성이 마비되어야만 가능한가? 알코올 장애자인 필자는 술 먹은 인간과는 가능한 대화를 피한다. 이성적인 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 작가와 필자는 이렇게 대립을 하며 살아갈 게다.

서양과 동양의 사고 방식의 차이도 감성과 이성의 갭에서 드러난다.
흔히들 서양인들은 합리적이라는 말을 한다. 그들의 행동은 감성보다 이성을 근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몰인정하지만 합리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모양이다.

반면에 동양의 사고는 훨씬 감성적이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인간은 모두 不忍人之心,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며 측은지심, 겸손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 라고 단정했다. 철저히 감성을 바탕으로 한 삶의 철학이다. 바로 이것이 동양의 사고다.
동양은 워낙 소규모 공동체를 기본으로 형성된 지역이다 보니 특수한 인간관계에 의존한 감성적인 질서에 익숙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이기에 무조건 따라야 하고, 마을 어른이기에 고개 숙이고 복종하고, 같은 핏줄이기에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일단 포용하고 그것을 지적하는 상대를 적으로 치부하는 감성적인 관계에 익숙하다 보니 자연히 모든 점에서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 것이라 보인다.

베트남의 혼잡한 교통 사정에도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감성적이라는 말이 되고, 논리적인 사고로는 이해가 힘들 수 있는 종교에 온 국민이 몰입하는 것도 감성적인 성향이 크기 때문이고, 정치 지지자의 모임이 마치 종교단체의 그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한국인의 넘치는 감성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뜨거운 국민이다. 감성이 차고 넘쳐 적당히 그 감성을 자극하기만 하면 수백만이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거리를 메우고 여차하면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밤거리를 밝힌다. 감성은 자극에 민감하지만 또 자극이 사라지면 쉽게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냄비근성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국민성 탓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죽어서 세상을 떠남을 의미하는 사거(死去)의 높임말)로 한국은 혼란의 구덩이로 빠져 가고 있다. 그의 죽음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그전에 어떤 과정을 밟았는지, 그의 행동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안 된다. 단지 그의 죽음 자체가 화두로 남아있을 뿐이다. 감성의 회오리가 전국을 휘몰고 있다.

감성의 시간은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감성적인 연인관계를 즐겼다면 사랑이라는 상을 받겠고, 폭탄주로 감성적인 대화를 즐겼다면 다음 날 아픈 머리를 감싸 쥐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과연 한국은 이번 감성의 시간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치를지 정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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