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베양수 교수

kimswed 2012.01.29 08:10 조회 수 : 736 추천:218



베트남에서 전쟁과 관련된 문학작품을 찾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20세기의 4분의 3을 전쟁 속에서 지낸 나라가 베트남이다.





백미로 바오닝의 <전쟁의 슬픔>은 전쟁을 테마로 한 수많은 작품 중에서 백미로 꼽힌다. 이 소설은 당초 1991년 <사랑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그해 베트남 문인회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3년 후인 1994년에 영어 번역판 <전쟁의 슬픔(The Sorrow of War)>이 나오면서 외국에 널리 알려지고 호주에서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이 외국에 널리 알려지자 베트남에서는 오히려 심한 비판을 받게 되고 상당한 기간 동안 판매금지 조치를 당한다.








오랜 침묵의 시간이 지난 끝에 <사랑의 운명>의 재판이 나온 것은 2005년이다. 그 이듬해에는 제목을 <전쟁의 슬픔>으로 바꾼 3판이 나왔다. 원래 바오닝은 이 책의 제목을 <사랑의 운명>이라고 지었으나 출판사가 제목을 바꾼 것이다. 독자를 유인하기 위해서 바꾸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베트남 민족의 운명을 건 위대한 전쟁, 승리의 전쟁을 슬픔이라는 단어와 연관 지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바오닝에게 <전쟁의 슬픔>보다 더한 슬픔은 없다. 그 슬픔은 베트남의 서부 고원지대 울창한 삼림지대에 비가 내리면서 시작한다. 그 슬픔은 쯔엉선 산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무명용사들의 묘지로 흘러간다.



주인공 끼엔은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가 겪은 전쟁의 슬픔 외에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런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 그는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행동 때문에 자신이 지불한 대가 때문에 마음이 더욱 아프다. 그는 평화가 왔으니 죽은 자도 살아 돌아온다는 꿈을 꾸게 된다.



그는 현실에서 또 다른 현실을 만난다. 늘 전쟁의 추억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항상 상처로 남은 전쟁의 슬픔은 떠나지 않는다. 그는 밤새 자기의 인생과 자기의 세대를 회상하며 회한과 고통으로 베개를 눈물로 적신다. 그러한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방법이 없다. 마침내 그는 글을 쓰기로 작정한다.

테마는 전쟁에 관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자기의 감정을 글 속에 녹여낼 것인가 고민하고, 결국은 사랑과 전쟁의 글을 써나간다. 그는 과거의 진술을 통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고자 하므로 그 글은 상상의 허구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을 진술하는 것이다. 병사의 마음속에 있는 전쟁의 슬픔은 사랑의 슬픔이며 고향에의 향수이다. 이제 어머니도 아버지도 갔다. 혼자 남았다. 그리고 새 시대가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식지 않는 슬픔이 남았다. 대대로 이어지는 슬픔이.



“정의가 승리했다. 인심이 승리했다. 그러나 악과 비인간적 폭력도 승리했다.” 이 때문에 전쟁은 슬픈 것이라고 주인공 끼엔은 가슴 저려한다.



바오닝은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피해자일 수 있다는 반전의 메시지를 이 작품에 담고 있다. 바오닝의 메시지는 베트남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전쟁에 대한 영웅성과 낙관성과는 전혀 다른 심어주게 되었다. 이것으로 인해서 그는 한 때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베트남 문학 연구자들은 바오닝이 이 소설에 자신의 혼과 정열을 다 쏟아 부었기 때문에 다른 작품을 쓰지 못한다고 말한다. 바오닝은 이 소설 외에 제대로 된 다른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주 가끔씩 단편소설을 썼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이 작품의 불어판을 번역한 것이 1999년에 출판됐다.






<작가소개>


바오닝은 1952년 10월 예안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호앙어우프엉이고 필명인 바오닝은 그의 고향인 꽝빙성 바오닝면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1969년 17살 어린 나이에 군에 입대하여, 중서부 지역에 주둔하던 10사단 24연대 5중대 보병 소총수로 복무했다.



1975년 제대한 후 하노이종합대학교 생물학과에 들어가 1981년에 졸업했다. 베트남 사회과학원에 근무하던 중 ‘응웬주 문인학교’ 2기로 졸업한 후 <젊은 문예>지 편집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1987년 <일곱 난장이 캠프>로 등단한 후 1991년 <사랑의 운명>, 즉 <전쟁의 슬픔>으로 1992년 문인회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단편으로 <각주구검>, <0시의 하노이> 등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직에 있다가 은퇴한 부인과 미국에서 대학교를 나와 결혼한 아들 하나가 있다.






[내가 만난 바오닝]

하노이에서 바오닝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신문사 기자나 작가에게 물어보면 바로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1999년 8월 중순 하노이 투이케 거리에 있는 바오닝의 집을 찾았다. 약속된 시간에 쎄옴을 타고 찾아갔다. 대문을 열어주는 그는 팔에 검은 완장을 차고 있었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의 아버지 호앙뚜에 교수는 베트남 초대 언어학회장을 지낸 언어학자였다.



그는 곧바로 조니워커 한 병을 가지고 내려와 잔을 채우고 권했다. 말수가 아주 적은 편이었으며 술을 잘하는 것 같았다. 첫 만남에서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신변잡기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1999년 10월 그는 번역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고 나는 그의 통역을 맡았다. 그때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고 그날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2004년 10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세미나에 참석했고 그 후에는 1년에 몇 차례씩 만났다. 그는 술을 정말 좋아하고 잘 마셨다. 취한 듯 보이지만 심하게 취한 적은 없었다. 술이 좀 들어가면 가끔씩 그는 정색을 하고 “너는 모른다. 너는 몰라!” 했다. 뭘 모르냐고 물으면 대답이 없었다. 아마도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다른 전쟁 소설들은 전쟁을 구경한 작가들에 의해서 씌어졌지만 이 책은 직접 전투에서 적과 싸운 ‘증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전쟁을 구경하는 것과 직접 총을 쏘며 겪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는 자주 한국 여성들이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그가 만난 한국의 작가들 특히 여성 작가들에게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






[필자 약력]

현 부산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 교수

하노이사범대학교 어문학 박사

역서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 <하얀 아오자이>

베트남어 역서 <춘향전> <미스 사이공>

논문 <응웬비엣하의 신의기회에 대한 연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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