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형 AVN 시스템으로 3,000억 원 벤처 신화
디젠 : 한무경 회장
여성 경영인이 드문 자동차 전장 업계에서 디젠 한무경 회장(57세)은 올해 3,50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보이면서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무경 회장이 거느린 계열사 4개를 모두 합치면 8,000억 원 규모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자동차 부품 사업에 뛰어든 지 18년 만의 일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차량용 LCD 모듈을 생산하는 디젠의 매출 증가세는 놀라울 정도이다. 2005년 113억 원이었던 매출액은 2012년 1,113억 원으로 ‘벤처 1,000억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2,979억 원으로 3,000억 원대로 올라섰다. 올해 예상 매출은 3,500억 원으로 자동차 업계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두 자릿수 이상의 증가율을 예상하고 있다.
교수에서 자동차 회사 대표로 변신
디젠의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차량용 LCD 모듈은 주로 현대모비스를 통해 현대·기아차에 납품된다. 현대·기아차가 중국에 수출하거나 현지 생산하는 차량에도 디젠의 내비게이션 통합모듈과 후방카메라가 대부분 장착되고 있다.
여성 경영인이 드문 자동차 전장 업계에서 디젠의 한무경 회장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자동차 부품 사업에 뛰어든 지 불과 18년 만에 자동차 부품그룹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2005년 인수했지만 가장 빠른 성장으로 그룹의 주력이 된 디젠을 비롯해 효림산업, 효림정공, 효림하이포징 등 계열사 매출을 모두 합치면 8,000억 원 규모에 달한다.
한 회장의 인생 목표는 자동차와는 거리가 먼 교수였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석사를 따자마자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박사학위도 받고 안정적인 자리를 굳힐 무렵 IMF 외환위기가 닥쳤고, 때마침 지인으로부터 자동차 부품 업체를 인수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자동차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부친의 도움을 받아가며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더니 외환위기의 정점을 넘어서면 자동차 산업도 좋아질 것 같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감(感)만 갖고 밀어붙였지요.”
1998년 섀시 부품 등을 생산하는 효림산업을 인수하면서 자동차 부품 업계에 뛰어들었다. 인수 당시에는 직원 20여 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었다. 문헌정보학에서 자동차라는 ‘다른 세상’으로 갑자기 들어오니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현장에서 쓰이는 자동차 용어는 일본식 영어가 많아요. 직원과 대화한 이후 잘 모르는 용어는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후에 자동차사전, 영한사전, 일한사전을 번갈아 찾아가면서 공부했어요. 저희가 생산하는 차 부품도 왼쪽, 오른쪽이 다른데 처음에는 그것조차 구분이 어려워서 고생했지요.”
2년간의 노력 끝에 첫 수출 성공
인수 후 6개월이 지나자 자동차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잘될 것이라는 한 회장의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인수하자마자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장을 365일 주·야간으로 풀가동해야 할 정도였다.
안정적인 성장세였지만 수출로 눈을 돌렸다. 당시 주력으로 납품하던 쌍용자동차 한 곳에만 집중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코트라와 시장개척단을 통해 해외시장을 돌아본 끝에 내린 결론은 가공 업체 이외에도 소재 업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3대 트럭 메이커인 나비스타와 접촉하는 한편 단조소재 업체인 효림하이포징을 인수했다. 문제는 수출이었다. 2년간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비스타와의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적자 기업이던 효림하이포징을 인수한 의미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공을 들인 끝에 나비스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일이 지연됐던 것이다.
“성과가 없다고 중단했다면 나비스타와의 거래도 무산됐을 겁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밀어붙이는 인내력도 필요해요.”
첫 미국 수출은 순조롭지 않았다. 꼼꼼한 품질 관리에도 불구하고 불량이 발생했다. 불량 사례를 상세히 기록해서 같은 상황이 생겼을 때 참고하도록 했다.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품질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신뢰를 얻었다.
한 회장이 디젠(옛 대경인터컴)을 인수한 것은 2005년의 일이다. 자동차 시장이 전장화 쪽으로 간다고 예측하고 이를 위한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디젠은 차량용 LCD 모듈을 국내 최초로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다. 차량용 LCD 모듈 등을 현대·기아차에 OEM 방식으로 납품했지만 거치형 내비게이션(PND) 시장에 참여하면서 적자가 쌓여 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 내비게이션은 자동차 대시보드 위에 올리는 PND 방식이 주종을 이뤘고 매립형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매립형으로 결론을 내렸어요. 기존에 없었던 생태계를 만들어야만 경쟁에서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지요.”
중국, 인도 등에 2,000만 달러 수출
때마침 현대차에 납품하는 기업으로부터 매립형 AVN(Audio Video Navigation)을 개발해보라는 권유를 받은 터였다. 부품 사업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만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개발 과정은 험난했다.
“각 부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자동차에 장착하고 난 이후에 품질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효림산업 등 다른 계열사에서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스펙을 바꾸거나 재조립으로 해결 가능했는데 내비게이션은 달랐어요. 하드웨어 안에 각종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만큼 훨씬 더 까다로웠습니다. ‘앞으로 거래하지 않겠다’는 모진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부품을 하나하나 새로 만드는 등 품질 개선에 매달렸습니다.”
한 회장은 디젠을 경영한 지 만 10년이 지난 현재도 “언제가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초기에 내비게이션을 개발하던 시기를 꼽을 정도이다. 다행히 1년 만에 결점을 모두 잡아냈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현대차에 납품하면서 매출도 날개를 달았다.
디젠의 지난해 매출은 2,979억 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25배나 커졌다. 수출도 374억 원으로 지난해 연말 2,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중국 수출 물량은 대부분 현대차에 납품되는 로컬 수출이며, 인도 자동차 업체에는 직접 수출하고 있다. 2017년 초부터는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와도 거래를 할 예정이다.
“자동차용 매립형 내비게이션 시장은 선점 효과가 커서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디젠은 매립형인 AVN 시장에 일찍 진출해서 안심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미국에서 발표된 자료에 ‘앞으로 없어지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내비게이션이 꼽힌 걸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휴대폰의 진화에 따라 자동차 전장 부품도 영향을 받겠다는 예상을 했지만 사업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안심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한 회장은 디젠의 발전 로드맵을 새로 세우는 한편 적극적인 R&D 투자와 기술 접목으로 시장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자동차 레이더나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에서 디젠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 중이다. 이 가운데 자동차용 레이더는 내년 연말 쌍용자동차에 장착돼 시중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디스크 브레이크와 연동되는 전방 레이더는 글로벌 기업들의 영역인 만큼 저희는 우선 후방 레이더 분야에서 독일의 연구전문 기업과 손잡고 기술 개발 중입니다. 앞으로 멀티미디어 전장 종합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갈 계획이에요.”
다만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한 분야에는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다. 과열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가격을 낮추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많지 않고, 그렇게 되면 수익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블랙박스 시장에 참여했다가 포기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제조업은 디테일해야 한다” 소신
2005년 계열사 가운데 가장 늦게 인수했지만 발 빠른 성장으로 주력 기업이 된 디젠을 비롯해 효림산업, 효림정공, 효림하이포징 등 4개 계열사를 모두 합친 매출은 8,000억 원에 달한다. ‘OOOO년에 그룹 1조 원 매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 만도 하건만 한 회장은 목표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주위에서 1조 원 클럽에 언제 가입하느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그런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그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목표를 세워서 얼마까지 키우겠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더니 어느덧 이만큼 성장한 게 아닌가 싶네요.”
한 회장은 그룹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올해부터 각 계열사의 책임경영제를 강화했다. 그 일환으로 정연국 전 기아자동차 부사장을 디젠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한 회장은 디젠 대표이사를 내려놓고 회장 직함으로 전략적인 결정을 주로 한다는 계획이다.
한 회장은 매년 새해에 그룹 전체에 화두를 제시하고, 각 계열사 회의실에 붙여둔다. 올해의 화두는 일본전산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의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는 것이며,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치열함이 없는 것이며,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정이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선택했다. 나가모리 사장은 직원 3명으로 창업해 30년 만에 매출 8조 원의 그룹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또한 “제조업은 디테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이공계 출신을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테일을 챙기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관리자부터 디테일해져야 원가 절감이나 공정 개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제조업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중국은 턱밑까지 따라오고 있어요. 여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관리자들부터 디테일해져야만 더 좋은 방법이 나올 것 같아요.”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회사로 기억에 남고 싶다”는 한 회장은 “10년이 지나면 힘이 되고, 20년이 지나면 더 큰 힘이 되고, 30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는 말을 즐겨 한다. 자동차 사업을 시작한 지 만 17년. 더 큰 힘을 모아 ‘역사’를 만들기 위해 한 회장은 오늘도 최선을 다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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