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TRA 글로벌 마케팅 인턴 프로그램’은 KOTRA가 K-Move 센터를 통해 수행했던 초기 일자리 사업 중 하나다. 2014년과 2015년에 두 번 시행했는데 베트남은 호치민 무역관에서 전담했다. 프로그램 별로 6개월 동안 현지화 교육과 인턴십을 실시했고 호치민 K-Move 센터는 참가자들이 베트남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호치민 무역관은 이 프로그램 참가자 가운데 현재 베트남에 정착해 활동 중인 ‘미옥 스튜디오’의 정미옥 대표를 인터뷰했다.
- 베트남에 머물게 된 계기는?
▲ 베트남은 2014년에 처음 왔다. KOTRA 베트남 글로벌 마케팅 인턴 프로그램 1기 지원자로서 호찌민에 처음 발을 디뎠고 그때의 인연으로 디자인 스튜디오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4년 전 참가했던 인턴 프로그램 기간은 총 6개월로, 첫 3개월은 베트남어와 현지화 교육을 받고 이후 3개월 동안 현지 홈쇼핑 유통벤더 T사에서 인턴 과정을 거쳤다. KOTRA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인턴을 했던 곳에 취업해 약 1년 6개월 간 근무했다. T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전공인 패션과 시각 디자인은 홈쇼핑 벤더 업무에 활용했고 베트남 시장 조사, 바이어 발굴, 미팅 주선 등 다양한 업무도 맡았다.
- 베트남 취업을 계획하기 전과 실제 취업 후 달랐던 것이 있다면?
▲ 베트남 직장은 한국보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더 잘 지켜지지만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분위기는 한국만큼 젊지 않다. 부정적인 뜻은 아니다. 베트남에서 사업하거나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 가운데 10~20년 전부터 현지에서 자리 잡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 베트남에서 1인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 퇴사 계기는 소소했다. 어느 날 뎅기열 때문에 일주일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운신이 어려우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그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년 반 동안 근무했던 회사를 관둔 2016년 스위스에 있는 베트남 친구들의 제안을 받아 잠시 그곳에 머문 적도 있지만 현지의 취업비자 문제가 까다로워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됐다.
그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기술벤처재단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에 참여해 ‘MIOK 디자인 스튜디오’를 창업했다. 현재는 이를 기반으로 베트남에서 활동 중이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상품은 서비스이므로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다. 현지에서 좀 더 원활하게 활동하기 위해 베트남 사업자 등록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스튜디오는 여느 디자인 스튜디오와 같다. 브랜드 아이덴티티, 로고, 브로슈어, 판촉물을 제작하며 인테리어 콘셉트, 잡지, 광고 등 다양한 디자인 서비스도 제공한다. 고객의 60~70%는 베트남에 소재한 우리 기업이다. 베트남 내 한국 업체들은 주로 포장 디자인이나 제품소개서를 의뢰하는데 베트남이 공급한 자원을 상품화하고자 하는 분들이 이같은 브랜딩 작업을 맡기신다.
- 베트남 취업이나 창업을 계획하는 이들의 주요 질문 중 하나는 언어다. 베트남어가 취업과 창업에 걸림돌이 되나?
▲ 직종에 따라 다르다. 호찌민에서 디자인 스튜디오 사업을 하는 내 경우는 베트남어를 못해도 큰 불편이 없다. 내 베트남어 실력은 KOTRA 글로벌 인턴 프로그램에서 배운 3개월이 전부다. 주변을 둘러봐도 상급 베트남어를 필수로 요구하는 ‘시티잡’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반면 제조업은 베트남어가 기본 요건인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 베트남에서 근무하는 데 따른 장점은?
▲ 첫째 워라밸이다. 베트남 기업은 한국에 비해 추가근로나 야간근로에 대한 압박이 덜한 편이다. 가족과 함께 해외생활을 하면 좁은 테두리 안에서 서로 더 가까워지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 또한 한국인 직장상사의 워라밸에 기여하는 것 같다. 휴일을 이용해 태국이나 캄보디아 같은 베트남 주변 국가로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둘째 유연하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를 돌이켜보면 당시 내 직급과 경력에 비해 상급 고객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많았다. 한국은 그 나이대에 똑같이 겪는 과정이 있고 사회주류로 분류되는 전형적인 기준도 있다. 반면 베트남은 그 틀이 유연하다. 같은 이유로 베트남에서는 경력과 직급에 비해 맡는 업무의 수준이 더 높고 그만큼 권한도 크다. 이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일을 더 빨리 배울 수 있다.
내가 전혀 모르던 산업분야를 접할 기회가 다양해서 좋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동안 만난 대표님들께서는 당신의 성공이력과 사업 이야기를 호의적으로 들려주고 베트남에서 운영 중인 사업장 견학도 권해주시곤 했다.
- 베트남에서 근무하면서 아쉬운 점은?
▲ 협업할 만한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나처럼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이나 외국인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있을 텐데 현지 사회에 특별한 접점이 없다 보니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대학 동문이나 지인의 소개로 동종업계 종사자를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베트남에서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협업할 기회가 부족하다.
인건비 저렴한 베트남 인력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베트남에서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역할을 분담할 현지 직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렴한 인건비만큼 작업의 품질도 높은 수준을 기대하기 힘들다. 디자인 스튜디오 운영자로서 직접 고객을 상대하고 영업하고 의뢰받은 일을 베트남 직원들에게 분배해도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않아 내가 다시 작업한 경험이 많다. 디자인 색상이나 배치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해도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힘들다. 지금은 현지 직원들에게 간단한 작업만 시킨다.
- 한국과 비교했을 때 소득은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 소득수준을 구분하는 것은 애매하다. 베트남에 오기 전 한국에서 내 경력은 3년에 불과했다. 주로 베트남에서 디자인 의뢰를 받는 지금 내 경력은 7년차다. 그때와 지금의 소득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내 또래의 프리랜서들과 비교하면 그들이 한국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동종업계 네트워크를 더 쉽게 구축할 수 있고 한국인으로서 한국 시장의 수요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베트남 취업이나 창업을 계획하는 또래 청년을 위한 제언은?
▲ 베트남에서 스쳤던 내 또래 청년들 중에는 베트남에 뼈를 묻겠다거나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강한 열정을 보인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큰 포부를 가졌던 이들 대부분은 1년 안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들에게 그 이유를 직접 듣지 못했으므로 주관적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베트남이 ‘넥스트 차이나’로 불리며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우리 청년들에게 베트남이 야망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성공은 오히려 한국이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청년 지원 프로그램이 베트남보다 훨씬 다양하게 마련돼 있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인력과 업무 인프라도 잘 준비돼 있다.
결국 베트남도 사람 사는 곳이다. 외국이지만 이곳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일상적이고 지루한 일을 감내해야 한다. 특히 베트남에서 한국인 구직자는 도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공단에 취업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럴 경우 여행이나 특별한 여가 같은 해외취업의 장점을 생각만큼 누리지 못할 수 있다. 한국에 비춰지는 베트남은 과도한 기대감이 투영된 모습일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 또한 베트남어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현지 언어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한다. 또한 창업하는 경우라면 한국인 커뮤니티에 속하는 것만큼 현지인 친구를 사귀고 그들 사회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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