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군에 위치한 (주)디앤에이치아이의 유압브레이커 공장. [사진=디앤에이치아이 제공] |
세계 최고의 유압브레이커를 향해 가는 ‘무소의 뿔’
충북 진천군에 있는 유압브레이커 생산업체 (주)디앤에이치아이는 여러 면에서 남다르다.
우선 제품의 99%를 해외에 파는 순도 높은 수출기업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디앤에이치아이는 전 세계 30개 나라에 수출을 한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개발한 무게 14톤, 툴 지름 235mm의 초대형 전유압 브레이커 ‘D500lls’를 국내에 판매한 것을 제외하면, 그동안 제품 모두를 해외에 수출했다.
두 번째는 중소기업이면서 자가브랜드를 고집하고 있다는 점. 이 회사의 고유브랜드 ‘DNB’는 세계 20여 개 나라에 등록돼 있다.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했다면 회사가 더 빨리 일어섰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과 미래를 보고 고집스럽게 고유브랜드를 유지해 왔다.
세 번째는 남성들도 하기 힘들다는 이 건설중장비 업체의 최고경영자(CEO)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 회사의 대표는 여성 CEO라고 따로 구분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지만, 건설중장비 업계에서 여성 CEO가 드문 것은 사실이다.
지난 5월 러시아 바이어가 (주)디앤에이치아이 공장을 방문해 제품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디앤에이치아이 제공] |
건설중장비 업계에서 여성 CEO란?
디앤에치아이의 진갑선 대표는 오랫동안 무역회사에서 섬유 오퍼업무를 담당했다. 덕분에 무역에 대해 일찌감치 눈을 떴다. 하지만 섬유 오퍼업무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진 대표는 사업, 그것도 제조업을 하고 싶었다. 어느 날 이업종교류회에 나갔다가, 진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쇳덩어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엔 유압브레이커가 뭔지도 몰랐어요. 직원 5~6명 정도 되는, 쇳덩어리 깎는 작은 공장 하나 갖고 싶었는데 우연히 이 회사의 전신인 대농중공업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고 덜컥 인수를 결정했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진 대표의 대답이었다.
2008년, 창업한 지 불과 2년 된 회사를 인수하고 경영을 시작했다. 각오는 했지만, 회사는 예상보다 훨씬 부실 덩어리였다. 금융거래가 막혀 자금은 전혀 돌지 않았고 채권자들끼리 다투는 바람에 채권과 상표권 등의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 여파는 고스란히 회사로 되돌아와 직원들과 거래처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진 대표는 새 출발을 알린다는 의미에서 우선 상호를 디앤에이치아이(DNHI Co., Ltd.)로 바꿨다. 또 유압브레이커만 빼고 10여 개의 나머지 사업 아이템을 모두 매각하는 등 경영정상화에 매진했다. 상표권과 채권 관련 문제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유브랜드인 DNB lls 시리즈의 개발에 나섰다. 이와 함께 해외 고객들을 찾아다니며 반드시 재기할 테니 믿어달라고 ‘읍소’했다. 이듬해인 2009년 수출 100만불탑을 받았다. ISO 9001, 14001 인증도 획득했다. 2012년 DNB 상표권을 획득했고, CE(유럽인증)마크도 땄으며, 기업부설연구소도 만들었다.
진갑선 (주)디앤에이치아이 대표가 호주 바이어 회사의 야드에서 14톤짜리 최신제품인 D500lls를 배경으로 바이어(가운데)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디엔에이치아이 제공] |
바이어처럼 보이면 무작정 들이댔다
“헝그리 정신으로 버텼죠, 뭐.” 진 대표는 사업초기 그 많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다 지난 얘기”라며 이렇게 대답했다. 회사 인수 후 5년 동안 정말 정신없이 뛰었고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진 대표는 2가지에 집중했다. 하나는 거래처 발굴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술 및 제품개발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았다.
“레드오션인 국내 시장에 숟가락 하나 더 얹기보다,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인 해외로 가자는 생각이었는데, 돈이 없었어요. 바이어를 찾기 위해 한국무역협회, KOTRA, 건설기계협회 등에서 제공하는 거래알선 사이트를 기웃거리다 안 되겠다 싶어 바이어를 직접 찾아다니기로 했습니다.” 2013년 진 대표는 회사와 제품을 소개하는 자료가 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해외전시회가 열리는 도시로 날아갔다.
전시회에 참가할 돈이 없어 출품은 못하고, 대신 근처에 민박을 잡아 전시회장을 기웃거렸다. 전시부스에 카탈로그도 돌리고 바이어로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무조건 들이댔다. “그 땐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어요.” 바이어들도 중장비 업계의 여성 CEO가 낯설었는지 이렇게 묻곤 했다. “정말로 여성분이 이런 걸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런 호기심은 어느 새 호감으로 바뀌었다.
호주에서 열린 전시회에 (주)디앤에이치아이의 유압브레이커가 전시돼 있다. 바이어가 참가한 이 전시회에 진갑선 대표도 함께해 공동마케팅을 진행했다. [사진=디앤에이치아이 제공] |
기존 바이어들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설득한 시간들
기존 바이어들에게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회사의 재기를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많은 바이어들이 진 대표의 열정에 감동했고, 또 돌아왔다. 호주의 D바이어도 그 중 하나다. 이전까지 소량의 거래만 하다 하마터면 끊어질 뻔한 D바이어는 당시 한국까지 직접 날아와 자금도, 인력도, 공장규모도 초라했던 디앤에이치아이의 옛 공장을 둘러봤다.
어쩌면 많이 실망했을 그를, 진 대표는 설득했다. AS와 부품조달, 기술 등에 대해 그가 신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그녀가 이 회사와 비즈니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전했다. D바이어는 회사의 핸디캡을 보는 대신, 진 대표의 열정을 샀다. D바이어는 지금 디앤에이치아이의 가장 큰 바이어가 됐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영국의 K사 바이어를 찾아갔는데, 너무 긴장이 됐다. 점심식사를 겸한 미팅에서 긴장한 나머지 와인 한 병을 혼자서 다 마셨다. 그리고 다시 맥주를 시켜 2000cc가 넘게 마셨다. 그래도 정신은 말짱했다. 그런데, K사 바이어라고 술을 안 마셨겠는가. 술자리에서 20만 달러어치를 약속받았고 실제로 수출을 진행했다. K사 바이어는 지금도 매년 연말이면 진 대표에게 위스키를 선물로 보낸다.
이렇게 마케팅에 공을 들이면서 다른 한 편으론 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해 출시한 국내 최초이자 최대인 14톤짜리 초대형 브레이커는 그 결과물 중 하나였다. 이 제품은 초대형 설비임에도 디자인과 스타일이 뛰어나고 기계소음이 제로에 가까워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또 시연 현장에서 캐터필라 초대형 굴삭기 CAT385C에 장착돼 단 몇 번의 타격만으로 두껍고 거대한 암벽을 완벽하게 분쇄해 성능과 안정성까지 인정받았다.
진갑선 (주)디앤에이치아이 대표(왼쪽)가 팔레스타인을 방문, 바이어와 함께 DNB 브레이커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디앤에이치아이 제공] |
여성 CEO가 마주해야 했던 거대한 벽
하지만 이런 성과를 내기까지 진 대표가 겪어야 했던 난관은 한둘이 아니었다. 다 쓰러져가는 회사를 겨우 살려놓고 한숨을 돌릴 무렵, 기술개발을 위한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과 보증기관을 찾았다. 이 때 진 대표는 거대한 벽을 마주해야 했다. 여자가 어떻게 중장비 회사를 하느냐, 실제로는 남편이 사업을 하고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니냐, 아니면 남편이 신용 등에 문제가 있어 바지사장으로 있는 것은 아니냐는 물음에 답해야 했던 것이다. 결혼한 적도 없는 진 대표는 대출심사관들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껴야 했고 엄청난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회사를 위해 참아야 했다.
정부의 R&D 자금을 신청했다가도 유사한 좌절을 느껴야 했는데, 한 대학교와 산학연 연구협정을 맺어 겨우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지금은 어엿한 부설연구소를 설립해 기술개발에 힘을 실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는 홍수에 공장과 창고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큰 피해를 봤다. 다행이 유럽 물류센터에 있는 물량으로 예약된 수출품 인도는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구제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에 많은 실망해야 했다. 그래도 지금은 1000평짜리 어엿한 새 공장과 사무실을 마련했다.
예기치 못한 이란과 팔레스타인 비즈니스 중단
해외 비즈니스도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목을 잡았다. 이란 바이어는 초도물량을 가져간 이후 본격적인 주문에 나서기로 약속했는데, 갑자기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는 바람에 초도물량에 대한 대금 수취에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이후의 본격적인 거래는 허공에 매달린 신세가 됐다. 언제나 전장이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의 바이어와도 제법 큰 규모로 수출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미국이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이후 현지 상황 때문에 올스톱 상태가 됐다.
지난 9월 초 하노이우수상품전 (주)디앤에이치아이 부스에 찾아온 바이어. 이 바이어들은 10월 방한해 후속상담을 진행했다. 【사진=디앤에이치아이 제공】 |
그래도 진 대표는 실망하지 않는다. ‘소나기는 그치게 마련’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이란도, 팔레스타인도 언젠가 다시 비즈니스가 재개될 것이다. 그 사이 다른 비즈니스를 진행하면 된다. 지난 9월 초 디앤에이치아이는 신규 시장 개척을 위해 충북도와 무역협회 충북지역본부가 주관하는 하노이충북우수상품전에 참가했다. 이 상품전에서 7명의 바이어와 상담을 했는데 그 중 한 바이어가 10월 초 진천 본사를 방문해 후속상담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진 대표는 “일곱 개 복 중에서 한 개가 맞았다”며 기뻐했다. 낙천적이면서도 대범한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사실 디앤에이치아이의 유압브레이커들은 경쟁사 제품에 비해 부품이 훨씬 많이 들어가고 제조공정도 복잡하고 길다. 그만큼 성능도 뛰어나지만 가격이 20%쯤 비싸다. 그래도 바이어들이 디앤에이치아이를 찾는 것은 신뢰 때문이다. 진 대표는 바이어가 만족할 수 있도록 AS, 제품교육, 부품서비스 등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이런 점은 그녀의 꼼꼼함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100릿길 중 40리쯤 왔다
디앤에이치아이는 해외마케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충북도나 무역협회 같은 지자체와 유관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리플렛이나 외국어 카탈로그, 외국어 홍보동영상 제작부터 통번역 등 마케팅 툴에 대한 지원은 물론, 해외전시회나 바이어초청상담회 등에 참가해 새로운 바이어를 발굴할 수 있었다. 당연히 감사한 마음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압브레이커라는 제품 특성상 참가할 수 있는 해외전시회나 상담회 등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업체가 필요로 하는 개별전시회 참가에 대한 지원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진 대표는 말한다. “제가 가야할 길이 100리라면 지금 40리쯤 왔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계속 갈 겁니다. 무소의 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