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야만 젖을 물린다
라온코스주식회사_서란희 대표
화장품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국의 KPOP! 뛰어난 향과 맛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국 유자! 한국 유자는 또 하나의 KPOP입니다.’
우리 회사는 화장품을 제조·판매하는 회사입니다. 각 지역에서 재배·생산되는 특산품을 화장품의 원료로 하여 화장품을 개발하여 기업에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석류, 매실, 천궁, 황칠, 흑초, 어성초등 다양한 원료를 주력으로 하는 화장품은 물론 치약, 바디 워시, 샴푸,비누 등의 생필품도 개발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회사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화장품과 브랜드에 대한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 왔습니다.
자체 상품으로 유자 화장품 개발
새로운 상품을 런칭하고 신상품을 개발할 때마다 우리 회사만의 자체 브랜드와 상품에 대한 갈급함은 높아만 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회사가 화장품을 개발·생산해서 납품하는 것에서 끝났다면 이제부터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술력으로 자체 상품과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직원들과 결의를 하면서 새로운 화장품 소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유자 향기를 처음 맡아보았을 때 잊을 수 없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한국 유자에 대한 각종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유자에는 각종 유기산과 비타민, 헤스페리딘 등의 성분과 피부진정 효과, 리페어(Repair)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최고의 화장품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 유자로 화장품을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똑같은 기능의 화장품은 만들고 싶지 않아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였습니다. ‘어떤 컨셉으로 갈 것인가,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가, 고가형인가 저가형인가, 타깃 연령층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등을 고민하였고 유자의 성분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4가지 핵심 키워드를 정리했습니다.
가려움증 완화, 리페어(repair) 기능, 리프레싱(refreshing) 기능,보습 기능 입니다. 이중에서 리프레싱 기능은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요인이 발생하기 때문에 빼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크림을 발랐을 때 기분 좋고 즐거운 화장품 컨셉이 좋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추가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유자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특허 검색을 통해 ‘유자씨 오일의 착유 방법’과 ‘유자수의 생산 방법’을 분석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화장품 원료의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유자씨의 경우 다양한 추출 방식이 있지만 우리가 지정해 주는 건조 방법, 곡물의 온도, 저온 압착식 방법을 통해 나오는 유자씨 오일만이 우리 화장품의 원료로 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객을 불편하게 만들자’ 역발상
미스트의 경우 요즘 트렌드인 ‘올인원 오일 미스트’로 정했습니다. 유자씨 오일과 유자수를 희석할 수 있는 에멀젼 기술이 있지만 저희 영업부장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에멀젼으로 어떻게 고객들에게 ‘오일 미스트’임을 알릴 것인가? 결론은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흔들어서 사용함으로써 ‘오일 미스트라는 인식을 주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크림의 경우에는 50g의 용기에 넣어 손으로 펴 바르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때 뜨는 과정에서 크림이 오염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펌프의 형태로 개발하였고, 용량도 100ml로 늘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고품질 저가형으로 상품을 개발하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거래하던 화장품 용기업체가 우리에게 비싼 가격으로 납품했다는 사실을 알고 부터는 같은 품질이라도 조금이라도 저렴한 화장품 용기를 선택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몇 개월의 연구 끝에 우리는 드디어 유자 화장품을 개발하였습니다. 출시된 첫 달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통해서 불과 2개월 만에 1,000세트가 팔려나갔습니다. 자신감이 차고 넘쳤습니다. 이제는 우리 화장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대전에 있는 화장품회사 선배로부터 “중국으로 수출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국에 수출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왕초보였고, 수출절차와 과정을 제대로 모를뿐더러 언어 능력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수출은 무조건 된다는 희망과 믿음만을 가지고 수출용 상품을 일단 대량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중국으로의 수출과정에 있어서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의 바이어를 섭외하였고, 우리 화장품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체험하게 했으며, 그 결과 중국 바이어측에서는 우리 화장품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상품의 가격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실패로 끝난 중국 수출
시트러스(CITRUS) 계열의 원료는 가격이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유자 화장품의 원료는 추출하기가 어렵고 상대적으로 비싸기때문에 중국인들의 ‘비싼 한국 유자 화장품’이란 인식이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스크팩의 경우에는 수출가가 다른 마스크팩 제품에 비해 비싼 편이었으며, ‘한국의 유자는 먹는 식품’으로 인식한 중국인들의 이해 부족도 중국 진출에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유자 화장품에 대한 중국 위생허가(CFDA)를 추진하던 중에 여러 상황이 맞지 않아서 중도에 포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중국에서 한류 마케팅을 활용하는 수출 역시 대기업만 해당 되는 것이지 우리 같은 작은 업체는 꿈도 꾸지 못하는 허상이란 것을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대기업의 유명 브랜드를 찾기만 할 뿐 신생 브랜드로 스위칭하기 매우 어려운 시장이며, 한국산 화장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구매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겪어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드 보복 등 정치적 상황까지 더해져서 중국으로의 수출은 처참하게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의욕만 앞선 채 준비 없이 임한 중국 수출은 계약도 못해보고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지니 회사를 같이 시작하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전무님까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직원들 월급과 회사 운영비 충당을 위해 중국에 수출하려고 만들어 놓은 상품도 모두 헐값에 화장품 유통업자나 기업의 사은품으로 넘겨야 했습니다. 상품이 좋으면 무조건 수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빚은 참사였습니다.
실패 후 만난 Mr. 헬프미
아이가 울고 있는데 젖을 물리지 않을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중국 수출에 실패를 하고, 무역업무와 수출역량이 전혀 없었던 우리는 무역의 A, B, C부터 다시 공부를 하였고 모르는 것은 귀찮을 정도로 물어보고 또 물어봤습니다. 항상 배고프고 부족해서 자꾸 보채니까 무역협회 광주지역본부에서 H 위원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H 위원과의 만남을 통해서 무역의 전반적인 흐름과 바이어 발굴, 협상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위원님과의 만남은 거의 매일 통화를 할 정도로 많은 지도와 컨설팅으로 이어졌으며, 우리 직원들은 H 위원을 ‘미스터 헬프미(Mr. Help Me)’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무역협회에서 주관하는 광주 빅바이어 매칭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고, 말레이시아 2개 업체, 싱가포르, 베트남 등 모두 4개 업체의 매칭을 배정받아 오전과 오후에 걸쳐 열정적으로 우리 상품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제품을 접한 바이어측은 반응이 신통치 않았고 오히려 유자를 식품 쪽으로 관심을 보였습니다.
기운이 빠졌지만 마지막으로 온 베트남 바이어에게도 우리 화장품을 소개했습니다. 베트남 바이어는 우리 화장품에 굉장한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자 향기가 너무 좋고 흡수가 빨리 되면서도 보습력도 좋다는 의견과 함께 MOQ(최소 주문수량)와 가격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복잡한 과정 거쳐 3만8천 달러 수주
자료를 잘 준비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냈는데, 베트남에서 첫 번째 답장이 왔습니다. 우리 쪽에서 제시한 가격을 좀 더 내려 줄 수있냐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즉시 H 위원께 물어보았고 5% 안팎으로 가격 조정을 해 보자는 말씀에 따라 가격 조정을 했습니다. 구매 담당에서 수입 담당으로 업무가 이관되었고 다음과 같은 등록 서류를 요청하는 메일이 왔습니다.
① 제품등록신청서
② 화장품협회, 식약청 등의 판매증명서(CFS, Certificate for Free Sales)
③ 품질 명세서 및 제품 분석보고서
④ 디자인과 포장(Artworks)
⑤ 물류관리 정보용 견적(Quotation of Logistic Data)
⑥ 원산지증명서(C/O, Certificate of Origin)
⑦ 위임장(POA/Owner, POA/Manufacturer)
⑧ 성분분석서(Ingredient)
처음 보는 문서도 있었고 복잡하고 많은 양의 서류였지만, 기쁜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특히 7번 항목의 경우 H 위원님은 시장의 독점권에 대한 부분이니 신중히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고, 이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베트남에서 요구하는 서류들과 요구 사항들을 충실히 이행하고, 추가적인 메일을 몇 번 주고받은 후에서야 마침내 베트남 회사와 3만8,000 달러 수출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계약 후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품질 조건, 수량 조건, 가격 조건, 포장 조건, 선적 조건, 결제 조건 등을 세세히 파악하고 대응 방침을 세워 놓았습니다.
바이어 매칭부터 수출 이행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처럼 우리 회사는 ‘바이어 매칭’부터 시작해서 ‘수출’까지 모든 것을 무역협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베트남과 수출 협상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무역협회의 다양한 지원을 받으면서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무역현장 자문위원 컨설팅 제도는 가장 추천할 만한 제도였으며, 번역지원, 바이어 매칭, 해외 오퍼 정보, 바이어 타깃 마케팅, 빅 바이어 거래알선, 바이어 매칭 서비스 등 다양한 지원을 활용하였고, 또 이를 토대로 수출을 준비하다 보니 뜻하지 않게 대만에서 오퍼메일이 와서 지금은 협상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협상과 수출 과정, 수출 후 결제, 협상 과정에서 주고받은 이메일 등의 프로세스를 우리 회사만의 ‘수출 매뉴얼’로 작성하여 실무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업무를 교육하고 활용할 수 있는 수출 매뉴얼이며, 우리 회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는 수출에 대해서는 갓난아기와 같았습니다. 엄마가 젖을 줄 때까지 물어보고 또 부족하면 울고, 보채면서 무역을 공부했고 마침내 베트남으로 수출을 성사시켰습니다. 아기가 생긋 웃고 있으면 엄마는 젖을 주지 않습니다. 울어야만 배가 고파서 우는 줄 알고 젖을 물립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모르면서 알고 있는 척 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또 다른 시장에 도전
‘이제 겨우 베트남에 소량 수출 계약해 놓고 너무 자만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작은 발걸음으로 시작하여 뚜벅뚜벅 세계를 향해 걸어간다면, 분명 풍성한 열매가 돌아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새로운 신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분명 즐겁고 신나는 일이지만 무역이라는 것도 매우 즐거운 직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역에 있어서 어린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장성하여 어른이 된다면 이 또한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는 우리의 가슴을 쓰라리게 했던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 도전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만,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도 함께 바라봅니다. 초보지만 무역인으로서 사는 것은 무척 신나고 즐거운 일입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계를 향해 걸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