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B/L 받으면 계약서와 다른 점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계약서의 어떠한 조항도 누군가의 이해관계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한국무역협회가 4월 2일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개최한 ‘수출입계약서 작성 및 분쟁관리 설명회’에서 강두웅 국제변호사는 이렇게 밝히고 무역업체들이 계약서 작성 단계에서 신중을 기해 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이날 설명회는 협회의 분야별 전문가 무역상담 서비스인 ‘Trade SOS’에서 의뢰받은 사례들을 중심으로 수출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과 우리 기업의 대응방법 등을 전달했다.
무역분쟁 컨설턴트인 김범구 변호사는 발표에서 물류 분쟁사례, 운송인의 권리와 의무, 효과적인 손해배상 청구방법 등을 소개했다. 그는 “분쟁해결조항은 계약서 작성 당시 삽입해야 한다”며 계약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카피비엘을 받으면 계약서와 대조해 다른 점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안 그러면 나중에 책임져야 할 소지가 있다”고도 당부했다.
선하증권(B/L)의 분실에 대해서는 “B/L은 돈이자 화물”이라며 “잃어버린 B/L이 다시 오지 말란 법이 없기에 재발행은 없다”고 말했다. 또 “B/L을 잃어버린 경우 각서를 받아 물건을 가져가거나 법원으로부터 B/L의 제권판결을 받고 해당 B/L을 무효로 해야 한다”면서도 “시간이 6개월 이상 걸리기에 개설은행 등이 연서로 보증하는 화물선취보증장(L/G)을 발급받아 화물인도를 청구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보증도에 대해 운송인 A가 바쁜 나머지 L/G의 진정성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입화물을 선하증권 소지인이 아닌 제3자에게 교부한 사례를 들었다. 이때 선하증권 소지인이 나타나서 책임을 묻자, A는 신용장이 개설은행의 명의로 발행되었다는 이유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보증도가 매우 변칙적이고 예외적인 것이라며 운송인 A의 주장을 거절했다. 대법원판례는 보증도가 권리가 아님을 주지하며 보증도의 관행은 운송인이 수하인의 편의를 위해 시혜적으로 수하인의 요청에 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귀사가 운영하는 수출계약이 하주적입이라 하면 컨테이너 안의 적입 사진을 찍어야 운송인 사고에 대한 귀책을 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주적입(Shipper’s Load & Count)’에서는 컨테이너 적입(積入, Stuffing) 과정을 운송인이 아닌 하주(荷主)가 직접 하기에 이 과정에서 수출자의 과실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외관상 양호한 상태로 선적됐다는 기재가 있다고 해도 컨테이너 안의 내용물까지 양호한 상태로 추정할 수는 없다”며 “이런 경우 양호한 상태로 인도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수금 확대 예방을 위해서는 “일정액 미수 정도 도달 시점에는 추가발주를 금지하는 사항을 계약서에 삽입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전체금액 기준 내지 비율로 정하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또 분쟁이 있을 때 상대에게 귀책이 있어도 장기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함께하기 위해 면책을 해 주고 싶은 경우 “상대의 귀책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사항을 서류로 남겨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국제계약 컨설턴트인 강두웅 미국변호사 또한 계약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심지어는 이메일 무역사기도 계약서를 통해 예방할 수 있다고 주지했다. 계약서에 ‘이메일로 계좌가 변경됐다는 연락을 받으면 돈을 보내지 않는다’는 조항을 삽입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계약서 작성은 증거자료, 실행 매뉴얼, 분쟁해결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계약서는 구체적인 실행매뉴얼인데 자세한 사항은 추후 합의한다는 말이 너무 많다”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얘기가 다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분쟁해결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려면 제3자가 봐도 이해를 할 수 있게 써야 한다”며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계약서가 가장 좋은 계약서”라고 말했다. 또 한편으로는 “좋은 계약서는 자세할수록 좋다”며 “간단한 계약서는 법적 해석이 어려울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계약서가 중요한 이유로 분쟁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꼽았다. 많은 수출기업들이 비용 문제로 계약서 작성에 꼼꼼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며 “계약서 작성 비용은 계약서 검토의 2~3배, 소송은 그 10배 이상, 중재는 그 15배 이상 든다”고 말했다. 또 “형편이 어려우시면 소송이나 중재 감당 못하니 계약서라도 잘 쓰셔야 한다”며 “결론은 예방”이라고 강조했다.
강 변호사는 계약서의 모든 문구가 갑을 간 이해관계를 조율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그는 “진짜 잘 쓴 계약서는 내게 유리한 계약서”라며 “공평한 계약서(Fair Contract)는 한번도 본 적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계약서를 어떻게 써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좋은 계약서에는 정의(Definition)가 있다”며 “의미를 규정하고 제한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클레임에서는 “명확하게 하자의 기준을 규정해야 한다”며 “외국의 사례에서는 ‘이 계약서에 보장하는 것 외에는 보장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는다”고 예를 들었다.
또 “논웨이버(non-waiver)는 수출자 입장에서 아주 좋은 조항”이라며 “그 당시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해도 나중에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과거의 하자를 빌미로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계약서의 ‘constitutes the entire agreement’라는 문구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며 “이 계약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지금까지 한 계약을 거짓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무서운 조항’이라고 평했다.
품질보증(Warranty)의 경우 내용을 포괄적으로 쓸수록 딜러(수입자)에게 유리. 제한적으로 쓸수록 프린시펄(수출자)에게 유리하며 기간(Duration)은 길면 길수록 딜러에게 유리, 짧을수록 프린시펄에게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해지와 연장의 경우도 해지를 쉽게 하면 프린시펄에게, 연장을 쉽게 하면 딜러에게 유리하다고 평했다.
계약서 검토의 마지막 사항으로는 “계약서에 사인한 자에게 회사를 대표해서 사인할 권한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며 “계약의 유효 날짜는 사인한 날로부터 하도록 연동”할 것을 권했다.
한편으로 강 변호사는 분쟁해결방식으로 ‘중재’를 권했다. 국제적으로 강제성이 있는 뉴욕협약에 의해 실효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는 분쟁해결에 있어 우선 “준거법과 관할지를 규정해야 한다”며 가까운 곳이 가장 유리하다고 귀뜸했다.
그는 “작은 기업일수록 계약서 작성단계에서부터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돈을 들여서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수출입계약서의 기본 구성요소인 계약 당사자, 대금 지불 및 물품 인도, 품질, 계약기간 및 해지, 분쟁해결 관련 조항은 절대 빠뜨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무역협회 허덕진 회원지원본부장은 “수출입 거래 시에는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기업의 비용으로 직결되므로 거래 초기단계부터 분쟁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설명회에 강연한 전문가들은 ‘TradeSOS’ 서비스의 상담위원들로 구성됐다. 이는 무역협회가 무료로 운영하는 수출입 실무, 통관, 해외규격, 국제계약 등 분야별 전문가의 상담 서비스로, 홈페이지(tradesos.kita.net) 또는 콜센터(1566-5114)로 신청할 수 있다.
김영채 기자
한국무역신문 wtrade07@gmail.com